라디오 수신기의 역사-진공관 라디오



1. 오디온
라디오 수신기의 역사는 현재의 전자산업계가 보여 주듯 초기부터 발명가, 과학자들의 특허 분쟁으로 화려하다. 1943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에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에게 라디오 방송과 관련된 대부분의 특허권을 잃은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의 또 다른 경쟁자, 리 드 포레스트(Lee De Forest)가 발명한 수많은 특허품 중의 하나가 바로 진공관이었다. 그가 발명한 첫번째 진공관(Vacuum Tube)을 오디온(Audion)이라고 부른다.
존 암브로즈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이 에디슨 효과(Edison Effect, 열전자 방출 효과)로 백열전구의 전극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응용한 플레밍관(Fleming valve)을 발명했다. 리 드 포레스트는 1905년 관련 문서를 읽고 1906년 1월, 2극 진공관 무선 검파 부품인 오디온의 특허권을 획득한다. 그는 다시 1907년에 3극 진공관을 발명하고 1908년에 특허권을 얻는다. 진공 유리관에 전기의 양극(Anode)이 걸리는 플레이트(plate) 금속과 음극(Cathode)이 걸리는 필라멘트(filament) 금속을 서로 약간 간격을 두고 만든 것이 2극 진공관인 오디온이며, 양극과 음극 사이에 다시 그리드(Grid)로 불리는 제3의 전극을 집어넣은 것이 3극 진공관인 트라이오드(Triode)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걸린 큰 전류를 그리드에 걸리는 약한 신호로 크게 움직일 수 있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내는 도르레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3극 진공관의 발명은 미국 횡단 전화 사업의 등장을 예고했다.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기 때문에 장거리 유선, 무선 통신과 방송을 다시 증폭해 들을 수 있다. 1948년 트랜지스터가 나올 때까지 진공관은 전자산업의 탄생을 가져온 혁명이었다.
진공관 오디온은 미약한 신호의 검출을 더욱 깨끗하게, 트라이오드는 작은 신호의 증폭을 크게 할 수 있다. 두 가지 부품이 라디오 수신기에 응용되어 라디오 수신음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먼 거리까지 방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진공관으로 크게 증폭된 음성 신호는 곧바로 코일과 종이로 만들어진 스피커를 진동시킬 만큼 강력했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동시에 여러 사람이 청취하는 라디오 수신기의 탄생을 예고했다.
2. 함께 듣는 라디오의 탄생
광석 라디오처럼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한두 명이 듣는 것이 아닌 스피커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의 탄생은 실시간으로 음성이 전국에 전해지는 진정한 의미의 매스미디어로 방송을 거듭나게 했다. 곧이어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의 장거리 무선통신에 대한 요구로 라디오 수신기의 발전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오토다인(Autodyne)에 이은, 슈퍼헤테로다인(Superheterodyne)이라는 이름의 수신기 방식이 개발되면서 AM에서 FM 라디오로의 발전은 1918년 에드윈 암스트롱(Edwin Armstrong)의 특허로 이어졌다. 1차 대전이 끝나고 한참 후인 1934년에 미국 뉴욕시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85층에서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의 주관으로 인류 사상 첫 FM 시험 방송이 시작된다.
3. 공공재, 해적방송, 그리고 국영방송
전파가 공중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전파는 국경, 영토, 사유지를 불문하고 가로질러 메시지를 전달했다. 라디오 시험 방송 초기에는 현재와 같이 주파수를 할당하고, 배분하는 국가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발명가들이 마음대로 정해 썼으며, 해적방송과 주파수 교란도 성행했다. 하지만 전파는 국민 대중의 공공재이며 국가를 기반으로 이에 대한 법적 규제를 행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어 세계 각국에서는 1934년에 설립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와 유사한 행정 부서를 세워 전파라는 공공재의 주파수 대역 관리에 나서게 된다.
흑백 TV가 등장하기까지 전 세계 라디오 방송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어, 광고와 마케팅 도구로서 자본주의 문화의 꽃인 매스미디어로 성장한다. 전 세계 주요 국영 방송사가 탄생한 것이 대부분 라디오의 보급과 시기를 같이 했다. 1922년 3월에는 미국에서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의 전신인 호출부호 WEAF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에서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의 전신이 만들어지고, 1925년 3월에는 BBC를 모델로 일본의 NHK(Nippon Hoso Kyokai, 일본방송협회)가 만들어졌으며, 1927년 2월에는 당시 식민 치하에 있던 한국에 KBS(Korean Broadcasting System, 한국방송)의 전신인 경성방송국이 세워져 각기 AM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4. 소설을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
1938년 10월 30일 허버트 조지 웰즈(Herbert George Wells)의 공상과학 작품인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을 라디오로 방송한 미국의 영화인 겸 프로듀서 조지 오손 웰즈(George Orson Welles)는 가상의 소설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뉴스 방송을 섞어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하는 시도를 했다. 앞부분의 소개를 듣지 못한 많은 라디오 청취자들이 실제로 화성인이 지구에 침공한 것으로 알고 집단 패닉 현상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독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대중 연설문에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테러로 등장하는 등 큰 명성을 얻게 된다.
라디오는 클래식과 유행 음악, 뉴스를 대중에게 가장 신속하게 전달하는 주요한 매스미디어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보 전달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중 선동과 심리전의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5. 휴대용 라디오의 등장
진공관 라디오는 초기에는 지금의 세탁기 정도의 크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휴대 가능한 여성용 핸드백 정도로 소형화되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지나간 1940년대 말에는 상용 전지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납축전지나 건전지를 사용해 들을 수 있는 본격적인 휴대용 라디오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휴대용 진공관 라디오는 트랜지스터 시대의 것과 많이 달랐다. 1948년에 발명되어 아직 상용화 단계를 거치기에 시기가 일렀던 트랜지스터 휴대용 라디오가 나오기까지, 진공관 휴대용 라디오는 배터리가 빨리 닳고, 무게도 가볍지 않았으며, 들고 다니면서 듣는 휴대용이라기보다 바닥에 놓고 듣기에 적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