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앞에 이불장사가 전을 펴 놓았는데
아주 고운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자고 나면 목이 뻐근해서 베개가 안 맞나 싶어 바꾸려고 했던 차라
메밀이 들어 있는 자주색 원단에 노란 꽃무늬를 수놓은
작고 예쁜 베개를 하나 샀다.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하며 그놈을 베고 침대에 누웠는데
조금 높고 딱딱한 느낌이라 그냥 안고 자기로 하였다.
그놈을 안고 만지작 그리다 보니 마름모꼴 메밀이 만져졌다.
까만 별 같은 메밀,
나는 그 별을 따러 기억 속으로 아스라이 빠져들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해마다 메밀을 심었다.
마을에서 오리쯤 떨어진 땅골이라는 야산에 이백 평 남짓한 밭이 있었는데
그 밭에 늘 메밀을 심었다.
메밀을 수확하여 팔기도 했지만 주로 메밀묵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메밀묵은 집에서 가끔 해먹기도 했지만 거의 잔칫집 음식으로 만들었다.
당시 잔칫집에 가면 가장 흔한 음식이 메밀묵과 단술이었는데
잔칫집에 가서 상을 받아보면 떡국 한 그릇 단술 한 그릇
그리고 묵과 잡채 한 접시 그리고 도시락 한 개였다.
도시락에는 돼지고기와 부침 몇 점 명태살 그리고 삶은 계란 반쪽 (부잣집은 한 개)
빵 한 개 까스명수 한 병 담배 세가치 이렇게 들어 있었다.
잔치 음식 중 가장 인기가 좋은 음식이 잡채였는데(특히 아이들)
요리를 해야 하니 늘 부족하고 빨리 동이 나버려 상대적으로 후했던 음식이
묵과 단술이였다.
그렇다고 묵이 괄시받는 음식은 아니었다.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귀한 음식이었고 가장 많이 쓰이는 게 묵이었다.
만드는 과정이 힘도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잔치하는 집에서 그걸 다 만들지 못해
부조로 묵을 받았는데 단술보다 만들기가 어려워서인지 묵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잔치하는 집은 미리 친척이나 동네 이웃에게 연락하여 부탁하기도 하고
이전에 자기가 해줬던 부조 묵을 되돌려받는 식으로 필요한 양을 맞추었다.
팔 남매를 둔 우리 집은 보험용으로 해마다 메밀을 심어 묵을 해서는 여기저기 부조를
하였는데 동네나 가까운 곳도 있지만 몇십 리 떨어진 친척 집에 갈 때도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함지박에 끈을 만들어 짊어지고 갔는데
때로는 어머니가 머리에 하나 더 이고 갈 때도 있었다.
당시 시골 인심이 음식이 남으면 괜찮지만, 음식이 떨어지면 잔치 잘못한 것처럼 욕을 먹을 수
있기에 향상 여유 있게 음식을 준비하느라 조금이라도 더 부탁했던 것 같다.
잔칫집에 가면 음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 놀다가 오는데
중간에 미안해서 오려고 해도 놓아주지를 않았다.
추수가 다 끝난 늦가을이나 겨울에 잔치를 하므로 딱히 바쁜 일도 없기에
잔칫집에서 사나흘 보내기는 예사였던 것 같다.
그게 당시 시골 인심이기도 했고 잔치 한번 치르고 나면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집에서 메밀묵 만드는 과정과 정경은 이러했다.
메밀을 물에 씻어 말리고 나서 방앗간에서 가루를 내어 왔는데
방앗간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집에 디딜방아를 이용하였다.
헛간에 놓인 디딜방아는 Y자형의 긴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두 사람이 밟고 한 사람은 절구통에 손을 넣어 메밀을 뒤집어 주곤 했는데
쿵덕 쿵덕 떨어지는 절구를 보면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보였지만
절구가 들리는 그 순간 손을 넣어 메밀을 뒤집는 어머니의 손이 혹시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곤 하였다.
그렇게 가루를 낸 메밀가루는 커다란 양은 대야에 시렁을 걸치고 그 위에
동그란 체를 얹고는 메밀가루에 물을 부어 묵 물을 우려내었다.
때로는 가마솥에 바로 시렁과 체를 놓아 묵 물을 우려내기도 하였다.
하얀 우유 같은 묵 물이 가마솥 가득 채워지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얼마 뒤 김이 나기 시작하면 엄마는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묵을 저었다.
묵이 눋지 않도록 쉴새 없이 저어줘야 했는데 누나들이 교대로
저어 주기도 했고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을 때는 내가 하기도 했는데
더운 열기 속에 손을 뻗어 계속 저어 준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면 마치 용암이 끓듯이 여기저기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
나는데 그때는 아궁이 불을 얼른 빼내어야 했다.
잘못하면 묵이 타버려 화근내가 나서 먹지를 못하기에
불 조절이 아주 중요하였다.
묵이 풀처럼 걸쭉해지고 굳어진다 싶으면 얼른 양은 대야나 함지박에
묵을 퍼내 담아야 한다.
옮겨 담은 묵은 몇 시간 지나면 굳어지는데
칼로 잘라 맛을 봐야 묵이 제대로 된 지 알 수가 있다.
묵 물에 물을 잘 배합해야 묵이 제대로 되는데 때로 물이 너무 많아 묵이 묽다 싶을 때는
메밀가루를 조금 더 넣어야 하는데 메밀가루가 없을 때는 밀가루를 넣기도 하였다.
그런데 밀가루가 들어간 묵은 매끄럽지가 못하고 조금 텁텁한 맛이 있었다.
그래서 잔칫집 묵 맛은 함지박마다 다 조금씩 달랐는데
우리집에서 한 묵은 향상 맛이 좋고 잘 되었다고 사람들이 그랬는데
그래서 더 많은 주문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묵이 완성되고 나면 한 그릇씩 간장을 타서 죽처럼 먹었는데
따끈한 묵 죽은 또 다른 맛이다.
그리고 덤으로 솥에 남은 묵 누룽지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추운 겨울밤 온 가족 아랫목에 둘러앉아
장독대 위에 얼은 듯한 묵을 더운물에 데쳐 김치에 싸서 먹는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그때 생각이 나서 시중에 파는 묵을 사 먹곤 하는데 모두가 엉터리다.
들국화 지천으로 널려 있는 들길을 따라가면 메밀꽃이 하얀 눈처럼
일렁이던 우리 메밀밭, 그곳이 너무도 그립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내 부모님과 묵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언제가 그 밭에 메밀을 심어 형제들 모두 모여 묵을 만들어 먹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