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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은 나에게 그저 평상시와 같은 날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모든 감각과 대비되어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몇 가지 물체들이 있었다. 원래는 가족들이 앉는 의자의 자리엔 파란색 캐리어가 올려져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외의 모든 가족들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방에서 책상에 앉아 할아버지가 주로 하는 것들(책 읽기, 중국어 공부 등)을 하고 계셨고,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전자 성경을 읽고 계셨다. 저절로 몸이 쳐지는 일요일 오후인지라 모두들 그렇게 달가운 기분들은 아니었겠지만 모두 각자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내 할일을 하며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공항에 가는 도중 어딘가를 잠시 들렀다. 여행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곳. 도서관이었다. 길다란 곡선의 계단을 올라가 책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 조금 책을 둘러보고 있자 어느세 엄마가 빌려야 할 책을 모두 빌렸다며 이제 가자고 말했다. 나는 일주일 후에나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을 뒤로하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탔다. 몸은 이제 차에 올라탔지만 정신은 이미 공항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곧 정신뿐만 아니라 몸도 공항에 도달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1 – 공항
얼마 후, 나는 눈을 뜨고 차들이 줄지어 늘어진 거대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족 6명과 더불어 캐리어와 가방들이 트렁크에서 쏟아져 나왔다. 짐도 사람 수와 같이 6개였다. 동생과 나는 옷을 제외하고 다른 짐들은 전혀 들고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짐이 무려 6개나 된다는 건 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짐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외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이유가 가장 크다. 내가 기억하는 한도(4살 이후)내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이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근 30분을 걸어 공항 내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공항과 가장 먼 자리에 주차를 한 탓이었다. 후끈한 공기 대신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풍경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항인 이유가 있는 듯했다. 매끈한 바닥을 바라보자 바닥은 거꾸로 나를 비쳤고 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조금 추운 날씨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반팔과 반바지뿐이었다. 가장 간단한 옷차림이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가족 모두들 그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지금 보다는 몇시간 후를 생각하는 듯했다.
여행은 과정을 중시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것들은 극소수인데, 여행은 이러하다. 사람들이 여행을 치켜세우는 이유가 이런 것들 아닐까?
어느세 나의 눈 앞에는 작년과 변화된 공항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로, 큰 극장이 생겼다. 사람들에게 공항은 여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공항을 조금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려는 의도로 생각되었다.
공항에서의 가장 지루한 시간이 지나갔다. 예약했던 비행기를 확인하고 비행기 수송을 하였다. 그 후 짐이 잘 들어가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는 출국장에 입장하기 위한 긴 시간을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출국장에 들어가면 구경할 것도 많고 여행에 한 걸음 다가온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공항은 그저 여행을 위한 준비운동이라 생각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주인공이 아닌, 하지만 없어선 안되는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공항 벤치에서 보냈다. 공항 벤치를 중심으로 마치 원을 그리듯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기다리다가 시계의 작은 바늘이 7에 도달하자 나는 드디어 출국장으로 입성했다.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 작은 검사를 받았다. 출국장이 창문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가방과 몸을 검사받고 나서야 출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출국장은 공항보다는 훨씬 시끄러웠다. 출국장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적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공항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러나 뭔가 여유로운 분위기에 출국장 밖보다는 더 활발한 느낌이었다. 모서리 선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상점들에선 각기 다른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상인들은 자신의 물건을 팔기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애썼다. 하지만 출국장이 시끄러운 이유는 이런 것들이 아닌 듯했다. 시끄러운 소리의 원인은 사람들의 소리였다. 여행에 앞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출국장과 공항 바깥쪽과의 엄연한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확실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출국장에서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벌써 시간은 6시 반이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려 주위를 돌아다녔지만 먹을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수제 햄버거를 시켰다. 출국장의 물가가 유독 비싼 건지 이 햄버거 집의 햄버거가 유독 비싼 건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여하튼 햄버거 5개를 시키는데 엄청난 가격이 나왔다. 조금 큰 햄버거 한 개와 감자튀김 몇 개가 나오는 데 8000원이 넘어가니 말이다. 그렇게 45000이라는 큰 돈을 여행전부터 쓰고 시작했다.
잠시 후 저번 여행에서 큰 힘을 주었던 로봇이 보였다. 직접 움직여서 공항의 모든 길을 알려주는 로봇이었는데 저번에는 이 로봇이 저번에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대려다준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로봇에게 다가갔지만 로봇은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밥을 먹기에 같은 처지였다. 그래도 로봇은 45000을 날리지 않기 때문에 명백히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우리는 면세점 여러가지 물건들을 샀다. 선물할 물건들과 더불어 우리 가족의 생필품도 샀다. 그렇게 물건들을 사고 드디어 땡땡번 게이트로 갔다. 게이트 앞에서 난 잠시 기다렸다. 비행기가 게이트 통로와 연결되고 드디어 우리가 들어갈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찬 줄 맨 뒤에 가서 서야 했다. 그렇게 10분정도 기다려 우리가 줄 가장 앞에 있게 되었다. 공항의 직원들은 우리의 표를 검사하고 비행기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생각보다 긴 길을 따라 어느세 비행기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좌석 위에있는 짐칸에 짐을 넣고 자리에 착석했다. 해는 졌고 시간은 이미 잘 시간이 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세 비행기는 움직이고 있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 동선을 맞추기 위해 안내요원들을 따라 정결하게 움직였다. 아주 느리게. 하늘에서 비행기의 속도에 비하면 매우 대조적이었다. 하늘에선 작은 네모 모양의 창문 만으론 비행기의 진정한 속도를 느낄 수 없지만 땅에서의 지금 이 속도보다는 빠르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10분동안 비행기 이륙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고 드디어 엔진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부터 머리까지 올라오는 진동을 느낀 순간 비행기가 출발했다.
2 – 도착
몸이 뒤로 쏠리면서 피가 뒤로 쏠리는 경험을 했다. 그런 즉 동시에 귀가 먹먹해지고 서서히 비행기의 앞 바퀴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 몸이 아래로 쏠리더니 비행기가 이륙했다. 올라가는 동안 머리가 어지러웠고 비행기가 방향을 틀 땐 더욱 그러하였다. 비행기가 방향을 틀 때 몸은 체감상 바로 서 있는 것 같았지만 밖을 내다보니 서울의 도심이 보였다. 체감과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직접 느껴본 사람만 아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어느세 똑바로 서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조금씩 하늘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후 구름을 통과했다. 창문 밖으론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조금 전에 미동도 없이 날아가던 비행기는 어느세 상하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난기류를 부딛힌 듯, 드릴이 바닥을 뚫는 듯한 진동이 몸에 퍼졌다. 비행기는 이러한 충격을 견딘 뒤 구름을 피해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비행기가 매우 높은 곳까지 도달하자 마치 공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이 고요하게 날아갔다. 곧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고 모두들 자게 되었다. 비행기가 자라고 말하듯이 모든 불이 꺼지고 비행기는 수면 유도등처럼 보이는 노란색의 불이 켜졌다. 모두들 잠이 들었고 나도 잠을 청했지만 그다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계속 뒤척였지만 어떻게 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잠을 청하지 못했다.
다음날까지 나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어느덧 하루가 지나고 시간은 1시 30분이었다. 거의 4시간 30분동안 10분만을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일어나 밖을 바라봤을 때 밖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망망대해 위에 검은 하늘에 작은 별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서울의 밤하늘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치도 잠시, 구름과 비가 별들을 가렸고 결국 다시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못 찾았지만)
잠시 후 기내방송에서 이제 착륙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예상보다 30분이상 빨리 도착하였기에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하였는지 궁금했다. 많은 구름과 거센 빗속을 뚫고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 정말 신기했다.
기내에서 내리고 베트남 공항으로 입성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뜨거운 공기의 인사와 안내판을 보니 베트남 공항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베트남 공항의 안내판에는 많은 언어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언어는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점이 여행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공기의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캐리어를 기다렸다. 잠시 후 캐리어가 하나씩 천천히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그 캐리어를 마치 회전 초밥집에서 초밥을 집어먹듯이 하나씩 집어 모두 한 곳에 모아두었다. 우리는 그 캐리어들을 하나씩 끌고 호텔로 향하는 봉고차에 탑승했다. 베트남에서의 첫 경치는 이 봉고차에서 보았기에 시간이 지나도 이 봉고차는 계속 생각에 남는다. 이 차를 타고 호텔까지 30분정도를 달렸다. 베트남쪽 시계로는 2시였지만 한국시계는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이런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별로 잠이 오지 않았다. 밖은 짙은 어둠으로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밖을 계속 보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 어느세 나의 눈 앞에는 앞으로 쭉 뻗은 2차선 도로가 펼쳐졌다. 차 두대가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런 논리 따윈 지천에 널려있는 바닥에 모래 한줌과도 같았다. 이곳에서 바닥에 나있는 하얀선은 자동차가 몰고가는 선과 같았다. 이 선들에게 눈이 있다면 자동차의 밑면은 후회없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자동차는 선을 물고가며 앞에 차가 나오면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며 모든 교통 법규를 어기며 차를 추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자동차는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5,6대의 차를 추월했다. 그렇게 우리는 호텔까지 갔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방 500미터 정도부터는 으스스한 골목길과 여러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얼마 후 호텔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어두운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자동차 운전사는 우리를 수많은 골목길 중 하나의 골목길에 내려주었다. 그 골목길을 따라 10걸음 정도 걷자 왼쪽 편에 계단이 보였다. 우리는 그 계단을 올라가 호텔 로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소파 여러 개와 통 유리로 만들어진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두명이 있었다. 우리는 카운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피드백을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4층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5층이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층에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늦었기에 대충 씻고 양치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호텔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하얗고 푹신한 시트위에 누워있는 것 말이다. 하얗고 푹신한 시트위에서 하얗고 푹신한 이불을 덮으면 몸을 감싸 느낌이 좋았다. 침대속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 빠지는 것과 비슷했다. 다음날이 되기 전 미리 준비 운동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는 미리 예고를 했었던 것이다.
3 – 오토바이의 도시, 베트남
그날, 나는 단 4시간 만에 일어났다. 한번도 깨지 않았고 푹 잠들었다. 이런 밤은 드물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날이 몸이 좀 더 힘들었다. 어깨가 좀 뻐근했고 발이 아팠다. 하지만 일어나서 빨리 나갈 준비를 했다. 아침에는 호텔에서 나오는 조식을 먹어야 했다. 이 호텔에서는 첫 조식이기 때문에 무슨 음식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체 무작정 여러가지를 담아서 먹었다. 그중 대부분은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조식은 조금만 먹고 로비로 나왔다.
많은 인터넷 카페에는 여행 첫날에 관광을 하면 모두 지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말들을 무시하체 그냥 첫날을 관광날짜로 잡았다. 그러나 곧 하면 안될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포나가르 사원”에 가기 위해 그랩을 잡았다. 그랩은 여행자들을 위해 마련한 베트남에 교통수단이었다. 그랩을 잡는 것 조차도 힘들었지만 잡고 나니 편한 이동이 시작되었다. 밖은 밤과는 정말 다른 풍경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 천에 가려져 있던 밤과는 달리 숨겨왔던 진귀한 보물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하나같이 뒤에 짐칸이 있는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 같은 오토바이도 있었다. 그런 오토바이들 샇이에 차들은 억지로 껴서 오토바이 운전사들에 따가운 시선과 구타를 받으며 나아가야 했다. 우리도 그런 종류에 속했다. 잠시 후 거리에는 경적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그 경적 소리는 우리를 향한 것이었으며 따가운 시선은 우리대신 차가 받아냈다. 차를 타고 긴 다리를 건넜다. 밑은 물로 가득차 있었다. 바다보다는 강에 가까운 편이었다. 그 다리를 지나며 나는 운전수의 어깨너머로 황토색 건축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원 모양의 땅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마치 도시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 같았다.
“그랩”은 결국 도착했다. 사원은 내가 다리를 건너오면서 보았던 사원이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장소이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사원의 꼭대기는 매우 외로운듯한 문양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 사원 표면에 낡은 벽돌들은 세월의 주름을 연상시켰고 몇 군데 빠져버린 벽돌은 부식된 이 같았다. 이런 낡은 사원의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있어야 했다. 먼저 위에 하얀색의 가운을 걸치고 반팔, 반 바지여야 했고 운동화야 했다. 나는 모든 조건이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동생과 할아버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복장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영어를 읽지 못하고 그냥 나를 따라 들어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없었고 내가 허리를 펴고 거의 딱 맞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의 벽이 있었을 뿐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무더운 밖의 날씨와는 다르게 시원한 공기가 살을 때렸다. 한편 코로는 강력한 향 냄새가 쑤시고 들어오고 있었다. 향 여러 개가 흙에 꼳혀있었다. 향 냄새를 뚫고 들어가니 높은 천장과 중간에 서 있는 한 상이 있었다. 어떤 종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상이었다. 다른 동상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위로 길쭉한 모양이었다. 온통 금색으로 덮여 있었고, 주위에는 돈을 비롯하여 많은 예물들이 쌓여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동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웅장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별로 흥미롭지 않아 그 길로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오직 이 곳만을 내리쬐는 듯한 더위였다. 어느세 팔과 다리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태양의 열을 이어받는지 살은 뜨거운 물을 넣은 컵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기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었기에 우리 가족 모두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원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고개를 돌려보니 벽돌을 다듬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며 우리는 다시 차를 불렀다. 차는 우리를 베트남 시장으로 대려다 주었다. 차를 타고 갈 때 우리가 올 때 건너왔던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를 건너가진 않았지만 다리위로 올라오는 아지랑이만 보아도 온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장은 매우 가까웠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의 길도 모르고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갔다. 차로 3분정도 가자 바로 시장이 나왔다. 시장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중심 시장을 중심으로 야외에 진을 치고 둘러있는 시장들이었고 또다른 부류는 겉으로 보기엔 커다란 축구장 같은 곳에 둘러 쌓여 있었다. 밖은 주로 음식을 팔고 있었고 안은 의류와 생활용품들을 많이 팔았다. 우리가 원래 계획했던 곳은 안이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은 사람들의 말소리 덕분에 매우 귀가 아픈 장소 중 하나인데, 이곳은 특히 더 했다. 여기저기에서 비늘을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씩 소리를 지르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이런 소리들을 뚫고 우리는 어딘가로 향했다. 이 발걸음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발걸음이었다. 맞다. 우리는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자그마치 3000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 곳에서 우리는 마치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는 듯했다.
4 – 물속의 블랙홀
우리가 도착한 곳은 2층이었다. 2층 세번째 집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머리가 없고 베트남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이는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베트남 나트랑 여행자들샇이에서 유명한 이 집은 의외로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옷을 샀다. 그리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옷을 계산하고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이 집에서는 내가 별로 관심없는 옷들만 보았기 때문에 그다지 재미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오니 여러가지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많이 팔아 윗층보다는 재미있었다. 할아버지가 필요한 피부약을 사기 위해 우리 가족은 장사꾼과 흥정을 했다. 그리 박진감 넘치는 흥정은 아니었다. 그냥 1500원 정도를 깍아주는 것으로 끝났고 기대했던 만큼의 구경거리는 아닌듯 했다. 나는 아빠가 남은 동전들을 환전하러 간 동안 혼자서 인파로 가득 찬 시장을 혼자서 돌아다녔다. 나도 조금 걱적됬지만 별로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치고 밀쳐서 둥근 원 모양의 시장을 모두 돌고 어느세 가족앞에 와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는 우리나라말로 인력거와 굉장히 비슷하게 생긴 씨클로 여러대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인력거와 같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지만 다른 점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결정적인 차이점인 바퀴였다. 우리나라에 인력거와는 다르게 씨클로는 뒤에 자전거를 타고있는 사람이 앞에 손님을 두고 타고가는 형식이었다. 자전거는 의자에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이렇게 되면 씨클로의 주인은 최대 4명 정도의 사람의 무게를 견뎌내고 패달을 굴러야 했다. 이렇게 힘든 씨클로가 베트남엔 지천에 널려 있었다. 이것이 이곳에서는 괜찮은 돈벌이인듯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베트남에 유명한 바다로 향하는 시작점을 위한 준비과정인 것이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모두가 로비에 모였다. 6마리의 물고기가 매우 자유롭게 물속을 누볐다. 우리가 보기엔 작은 수족관이지만 그들에겐 자신들의 몸집에 5,6배가 넘는 깊이의 물이었다. 물밖에서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이지만 물속에서는 손까락 만한 물고기와 비교해도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승리은 그 자체의 능력보다는 때마다 환경이 변화시키는 듯했다.
우리의 계획이 바뀐 것은 호텔로 향하는 그랩 안에서였다. 그랩 안에서 우리는 호텔에서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처음으로 베트남 마트를 접했다. 호텔 옆에 있는 마트였지만 꽤 컸다. 그 안에는 우리 나라의 마트와는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밖같과는 달리 마트에서는 매우 비싼 것들을 취급하고 있었다. 여행자들을 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쪽에서는 악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팔고 있었고 한쪽에는 오토바이 10댓개를 전시해놓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2층에 있는 식료품 마트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간단한 간식들과 요기를 달래줄 음식들을 사고 계산을 했다. 계산을 하고 있던 중 아빠가 달려와 망고 2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노랑색과 주황색이 섞여 조금의 연두색도 보였다.
우리는 이제 이 오토바이들의 천국에서 차를 부르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딘가를 갈 때 올 때 어떠한 작은 이동을 위해서도 차가 필요했다. 이 또한 환경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환경은 우리에게 손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그랩을 타고 바닷가까지 갈 수 있었다. 바닷가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었다. 그저 베트남에 다른 바다들처럼 해파리가 많지 않은 것이 꼭 특징을 하나 정하라고 말한다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수영장처럼 잔잔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그런 튜브에 기대어 반쯤 누워있었다. 우리도 튜브를 빌리러 해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 10분정도 계속 걸어다니다가 드디어 튜브를 팔고있는 장사꾼을 만났다. 이 사람은 정말 마트에가면 3000원정도에 살 만한 튜브를 2만원에 팔고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파는 것인지 대여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대답하고 돈을 내고 튜브를 빌려왔다. 나는 튜브가 너무 비싸서 이미 파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빌린 방갈로에 도착하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발을 벗은 것이다. 모래가 들어가 발의 특정부분이 따끔거렸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고나서 나는 어젯밤 침대와 이불이 예고했던 순간을 맞이했다. 이제 준비운동은 지나고 실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짜고 따끔한 물이 얼굴을 때렸지만 등 뒤로는 푹신하고 시원한 물이 나를 덮었다. 나는 물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땅이 꺼졌다. 파도가 치는 부분과 밀려 들어가는 부분이 정확히 만나는 것 같았다. 그 부분에서는 하체가 진동했다. 잠수를 통해 물속으로 들어가니 물안경이 빠질 것 간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왔다. 물의 깊이는 아까보다 훨씬 더 올라와 있었다. 파도도 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강한 파도를 제대로 맞은 사람들은 모두 튜브가 뒤집어지고 베트남 바다에 염분이 썩인 물을 먹고 있었다. 내 동생과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들 몽둥이에 머머리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한 채로 연달아 이어오는 파도에 떠내려가는 튜브를 향해 뛰어갔다. 손이 튜브에 닫는순간 튜브는 강한 파도를 맞고 해안으로 밀려났다. 튜브를 잡으려던 사람들은 앞으로 넘어졌다. 결국 물에 밀려 그렇게 원하던 튜브를 잡을 수 있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바닥이 매우 꺼진 곳이 나왔다. 금세 물이 목까지 올라왔다. 물속에서는 여러가지 물살이 다리를 때려댔다. 일정한 흐름이 없었고 매우 가지 각색의 온도와 속도가 오갔다. 이곳만 다른 공간인 것 같았다. 우주에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구멍에서는 걸음이 더뎠다. 3보정도 가자 다시 평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다리는 바닥에 닫지 않았다. 몸은 반쯤 기울어져 물위에 둥둥 떠있었다. 나는 해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좌우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족이 자리를 잡아놓았던 곳과는 매우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다. 이 현상은 물속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움직이고 있었기에 더욱 신기했다. 바다 전체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바다는 검고 작은 모래들로 덮여 있었다. 다른 동남아에서 보던 백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비늘을 뽐내며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자연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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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날그날의 일기처럼 써져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네요
여행을 즐기다 보면 그냥 평범하고 잊을 수 있을만한 것들도 자세히, 재미있게 풀었네요~~~ 이것두 재능인 것 같아요 ^^ 저는 주위가 산만한 편이라서 이런거 다 기억 못하고 먹은 것만 기억하더라고여...ㅎㅎ
ㅋㅋㅋㅋ 그러면 그걸 일기처럼 쓰면 어떨까요?
@문예강 그러면 뭐......어디서 뭐를 먹었는데 냄새가 어땟고 입에 넣는 순간 어땟으며........???//ㅋㅋㅋㅋㅋㅋㅋ 웃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