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에 비해
그 가운데서도 마태오 복음과 비교하여 평지를 강조하거나
산 위와 평지를 대조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에서는 그 유명한 행복 선언을 비롯하여
중요 가르침들을 주님께서 산 위에서 하시는 것으로 묘사하기에
그것을 특별히 일컬어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산상수훈과 병행하는 루카 복음이 오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도와 제자들을 뽑으시는 것은 산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치유해주시는 것은 평지에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 산에만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지에서도 만날 수 있어야지요.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오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제 주님께서 귀먹은 이를 데리고 나가 따로 만나주셨듯이
하느님과 나만을 위한 배타적인 시간과 은밀한 만남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의외로 우리는 주님과의 이런 배타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데 늘 누가 껴있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배타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밀애를 나누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방해 없이 안식을 취하고 힘을 듬뿍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주님처럼 평지에 와서 지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프란치스코가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고 한 말을 묵상합니다.
이것을 조금 바꾸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또 일하다 보면 정신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 정신이 없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또는 생각 없이 내뱉습니다.
정신없이 살면 안 되잖습니까?
정신 나간 사람이면 되겠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하는데,
먼저 차려야 할 정신이 기도의 정신/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랑이 올 때 등불을 들고 마중 나가는 것 곧 깨어 있음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헌신의 정신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정신으로 주님의 영/성령만 제대로 모시면
헌신의 정신은 따로 차리려고 들지 않아도 차리게 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기도의 정신으로 주님의 영만 모시게 되면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루카 복음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는 루카 복음 6장을 읽는데 4장 공생활 시작 부분을 이렇게 묘사하지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한 우리는 헌신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오늘 주님처럼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이웃에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쉬지 못해 지친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고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는 것이 잘 쉬는 것입니까?
하느님 안에서 쉬어야 잘 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쉬지 않아서 지친 것이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아 지치는 것임을 묵상하고 반성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첫댓글 아멘 💖💖💖
아멘 T 평화를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