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 있는 에스더를 엑소더스 해 2시간 만에 원상 복귀 시키고 돌아올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겁니다. 줌으로 수업하는 걸 보고 가려했는데 어찌나 졸음이 쏟아지던지 접고 귀가 했어요. 예주보다 먼저 에스더가 유투브 수업을 준비해야 할 것 입니다. 바이든이 결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어요. 순전히 늙어서 당하는 수모라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나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운동하고 나를 닦는 체력관리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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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 조각이나 에니메이션에 대한 로망이 아주 어릴 적부터 있었어요.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시기다 온다면 내 이것들을 싹다 섭렵해버릴 작정입니다. 에예공! 니들의 꿈틀거리는 예술 혼이 아비의 DNA라는 걸 아니? 지젝 정도는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적습니다. 지젝은 코기토로 대변되는 자기완결적인 근대의 주체도 아닌, 완전히 해체되어 버려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체도 아닌 역동적이며 저항적인 주체를 새로 확립하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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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에 동원되는 사람은 헤겔, 마르크스, 라캉입니다. 지젝은 근대철학이 상정했던 자기완결적이고 충만한 주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주체란 균열, 틈새, 단절을 내장한, 내적 불화를 겪는 주체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주체는 말 그대로 “까다로운 주체”이지만 이 주체는 자신의 불완전 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행위를 책임지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 리오타르 지젝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사상과들과 대립해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저항의 거점 또한 해체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인식 주관자)로 대변되는 주체가 인간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과 구속에 빠뜨렸다 말하지만 지젝이 보기에 근대적 주체의 극복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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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정치 결정들이 정당화되는 방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방법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요. 사회 보장 프로그램이 감소되는 일이 정치적 담론을 위해 유효한 근거가 아니지만, 가끔 객관적 필요로서 사회에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지젝은 현재 늘어난 시민 참여에 대한 토론이나 문화적 부문에 의해서 제한된 정치적 목표는 결국 장기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실체적인 수단이 고안되지 않은 것만큼이나 효과 없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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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본의 자유를 제한 짓는 장치나 생산과정을 사회적 통제의 메커니즘에 종속시키는 수단들 또한 지젝은 해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이것들 또한 경제가 급진적으로 탈정치화 되는 것이라고 바요. 지젝은 오늘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시민들에 의한 정치 변화도, 역사사회주의에서 했던 것과 같은 통제 모두 해답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현재 지젝은 '경제의 정치화'를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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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늘날 자유 사회의 강령이 된 "관용에 의한" 다문화적 충동은 치명적인 질문을 억압해요. 그 질문은 “어떻게 우리는 세계화의 현재적 조건에 정치의 순수한 장을 다시 소개할 수 있을까?”이다. 그는 또한 후기정치학(post-politics)에 대한 균형세력으로 정치의 정치화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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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맥락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결정의 영역에서 지젝은 양당제를 비판해요. 양당제는 후기 정치학 시대에 일부 국가에서 지배적인 정치 형태입니다. 양당제는 실제적으로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로막는다고 본 것 같어요.
2024.7.2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