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베 담화에 '식민지 지배' '침략' '통절한 반성' '사죄' 등 무라야마 담화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담을지 말지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한국 채홍사(韓國採紅史)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웃의 강대국에 사대(事大)하지 않고 살 수 없었던 우리나라로서 여인의 성적 수탈사(性的收奪史) 또한 유구했다. 헌녀(獻女)라는 미명으로 이미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54년에 위(魏)나라로부터 강요받고 있고 보장왕(寶藏王) 4년에는 당나라 장군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침공, 7만여명의 고구려 사람을 잡아 갔는데 젊은 여인이 대부분으로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고려 때에는 원나라의 강요에 의한 채홍(採紅)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추별도감(推別都監)이란 것을 두어 팔도에서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처녀와 젊은 과부들을 차출하는 업무를 연례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고려 고종 42년 원나라의 침공 때 강릉(江陵) 호장(戶長) 김종연(金宗衍)의 젊은 아내도 납치돼 갔었다. 잡혀간 지 15년 후에야 북경에서 떨어진 천일채(天壹菜)란 곳에서 비녀살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나어린 아들 김해장(金海莊)이 엄마 찾아 3만리 길을 떠났던 것이다. 6년을 찾아 헤맨 끝에 어머니와 해후, 모시고 돌아오고 있다. 이같은 비극은 비일비재했다. 그리하여 충숙왕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 이곡(李穀)은 원나라 인종(仁宗)에게 이 채홍 폐단에 대해 대담한 상소문을 올리고 있다. <채홍하는 아전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동녀(童女) 찾아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는데 감추어두면 이들 친족을 잡아다 묶어놓고 매질하는 꼴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 고을에서 40~50명씩 어린 딸들을 끌고 나가면 그 부모들은 비통을 못 가누어 더러는 샘물에 빠지고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기도 합니다. 아 고려 사람 무슨 죄가 있어 이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 말입니까> 이 채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우리나라에 열 살도 안되어 시집보내는 조혼(早婚) 관행이 정착됐음을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납치돼간 수십만명의 조선 연인들인 나가사키와 만주 심양(㰂陽)의 노예시장에서 팔려나갔는데 고국에 돌아가 보아야 때묻었다 하여 받아들여 주지 않았기로 더러는 도처에 고려보(高麗堡)라는 집단촌을 만들고 벼 농사 짓고 김치 담가 먹으며 대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에 보면 15대를 몰려 사는 고려인이 있었다 했다. 이 수천년 성수탈(性收奪)의 채홍사(採紅史)를 근대까지 면치 못하고 일제 치하에 10만명 한국 처자들이 정신대(挺身隊)라는 미명으로 왜병들의 성 수탈에 희생되었다. 고려보의 고려 여인들처럼 피해자들은 그 치욕 때문에 말을 못하고 가해자는 입을 싹 씻고 있다. 이들이 60 후반이 되어서야 한두 사람 나타나 실상을 폭로하고 있어 치를 떨게 했다. 광복날 전후하여 전에 없던 열대야(熱帶夜)가 지속되고 있음은 아마도 이 여인들의 원혼 때문이 아닌가 싶어 진다.
?사진 ?上: 위안부 소녀상 ?下: 일본 나카시키(長崎) 원자폭탄 투하 70주기인 9일(현지시각)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원폭희생자 위령식' 이 열리는 동안, '안보법안(집단 자위권 법안)'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공원 인근에서 '전쟁하려는 아베 정권을 쓰러뜨리자' 라고 쓰여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첫댓글 친일파부타 척결 환수해서 독립유공자 가족분들에게 돌려주어야만합니다
힘약한 나라엔 절대로 사과 안하는 일본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국가의 힘을 키워야 해요
언니!!
아베는 치매인가벼...
오락가락~~~
맛이 갔나벼요~~
아베는 곧 죽어도 우리한테는 사과 하기 싫은듯 하네요
국력이 약한 나라엔 강하고
국력강한 나라에 한없이 약해지는 일본 입니다
이런 현실에 우리나라는 일치단결해서 국력을 키우는게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