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회화(日本繪畵)와 특징
일본회화(日本繪畵)
겐지 이야기
9세기까지 일본 그림은 모두 중국 唐풍의 그림(가라에)이었다. 그러나 헤이안시대 이후 일본의 독특한 풍경, 풍속 등을 그리는 ‘야마토에’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야마토에’는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이다. 만화적인 요소가 많다. 만화의 원조로 꼽힌다. 야마토에는 섬세하고 우아하고 깨끗하다. 부채, 병풍 등에 많이 사용된다. 겐지이야기는 그림이 들어있는 두루마리로 된 일본만화의 시초이다.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키부(978~1016)가 지은 것으로 황자(皇子)이면서 수려한 용모와 재능을 겸비한 주인공 하카루 rps지의 일생과 그를 둘러싼 일족들의 생애를 서술한 54권으 대작이다. 3대에 걸친 귀족사회의 사랑과 고뇌, 이상과 현실, 예리한 인생비판과 구도정신을 나타낸 작품이다.
야마토에가 발전하여 대중화된 것이 우키요에이다. 일본의 무로마치시대부터 에도시대 말기(14~19세기)에 서민생활을 기조로하여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이다. 초기 우키요에는 부유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의뢰를 받고 제작한 육필화로 시작되었다. 대중적인 회화 수요층을 전제로 하였고 그에 걸맞는 다량생산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목판화라는 화법을 채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목판화를 뜻하며 그림내용은 대부분 풍속화이다. 그러나 우키요에라는 말은 일본으 역사적인 고유명사로, 보통명사로서의 풍속화와는 구별된다.
무로마치배
목판화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채택했다는 점이 다른 화파와 명백히 구별된다. 처음에는 흑백판화에서 채색판화로 더 나아가 다색 판화로 점점 발전하였다. 전국시대를 지나 평화가 정착되면서 신흥세력인 무사, 벼락부자, 상인, 일반대중 등을 배경으로 한 왕성한 사회풍속, 인간묘사 등을 주제로 삼았다.
메이지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진, 제판, 기계인쇄 등의 유입으로 쇠퇴하였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애호되어 프랑스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1853년 일본의 개항 후 유럽에 이본 미술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53년 일본으 개항 후 유럽에 일본 미술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56년 판화가인 펠릭스 브라크몽이 한 인쇄소에서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싸고 있던 카츠시카 호구사이의 《호쿠사이 만화》를 발견하면서 호쿠사이 목판화가 처음으로 파리에 진출한다.
사계절 화조도-16세기
1876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19세기 중엽 파리에서는 자포니즘의 열품이 대단했다. 새로운 표현 양식에 굶주려있던 프랑스 인상파 화단은 우키요에의 표현양식과 세계 감각에 있는 신선한 영향을 받았다. 강렬하고 공간 구성은 비대칭적이고, 대각 선이나 사선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불륨감이 풍부하다. 일상적 생활의 정경, 삶으 경관, 노동, 풍경을 재현하려는 열망이 강화되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가메이도의 매화》를 빈센트 반 고흐가 모사하여 1887년에 《플럼 꽃이 피는 나무》라는 작품을 그렸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그림에는 반드시 자연과 인간의 함께 나와, 서로 반응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어 서정적인 평범한 일본으 자연과 그 곳을 여행할 범속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란 작품에 매료된 고흐가 《비 내리는 다리》라는 작품을 똑같이 모사하고 그 둘레에 한자까지 그려놓았다.
일본의 회화(日本繪畵) 특징
일본의 회화는 대륙에서 전해진 불교를 주제로 한 회화에서 싹텄다. 선사시대의 유품에 인간의 생활이나 풍속을 다룬 소박한 그림은 있지만, 이는 고고학적인 대상은 될지언정 회화의 자료로서는 불충분하다. 6세기 중엽의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시대의 회화는 어느 것이나 불교와 관계가 깊고, 대륙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것은 불교사원의 예배 대상으로 그려진 것과, 사원건축의 장식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기술적으로는 중국이나 고구려 ·백제에서 건너간 화공이나 그 자손들에 의한 것이 많다. 불교의 융성은 대륙 회화의 이식을 더욱더 활발하게 했으나, 점차로 대륙회화를 직접 모방하는 태도에서 일본인의 독특한 감각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것은 7~8세기 초기의 다마무시 노즈시[玉虫厨子]의 판화와 8세기 말에 그려진 호류사[法隆寺] 금당벽화를 비교해 보면 잘 이해된다.
7~8세기 무렵의 회화로서 중국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뛰어난 유품은 현재 찾아볼 수 없지만, 오히려 일본의 상대(上代) 회화 가운데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그것들은 중국회화를 이어받으면서 일본의 풍토 ·민족성, 그 밖에 일본인의 정취를 담아 섬세한 감각과 세련된 기법에 의해 일본회화를 창조해내고 있다. 대륙회화의 전래로 일본적인 것이 일깨워져서 대륙회화에서 볼 수 없는 정서가 보태진 것이다. 인물화이건 산수화이건 중국회화가 대상(對象)으로 하는 목석(木石)을 엄격하게 추구하고, 정서를 배제하는 데 회화의 본질을 구하고 있는 데 비하면, 비교적 일본화된 작품이 이 상대의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 민족성에 맞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비단 회화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미술을 고찰하는 데 있어 그 점은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가 있다. 섬세한 감각과 숙련된 기교를 중요시하는 회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회화를 낳는 원천이 되는 자연이 다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대륙에 비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자연에 둘러싸인 일본은 회화의 제작에서도 자연의 그러한 모습을 즐겨 그린 것이다.
따라서 양식(樣式)이나 채색법에서도 이러한 자연에 적합한 것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것을 야마토에[大和繪:倭繪]라 부른다. ‘야마토에’는 문학에서 말하는 와카[和歌]와 같은 것이며 일본인의 마음 속에 있는 자연을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일본인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인간의 마음의 모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회화는 풍경화와 함께 비롯되었다 할 수 있고, ‘야마토에’의 성행에 따라 일본적인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이 활발해졌다. 헤이안[平安] 후기가 되자, 두루마리그림, 즉 에마키[繪卷]의 제작 ·감상이 성행하게 되는데, 문학적 ·불교적 그 어느 주제이든 ‘야마토에’의 수법을 써서 그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야마토에’는 자연을 치밀하게 묘사한다기보다는 선과 제한된 안료로 간략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도의 기교와 세련된 조형감각을 필요로 했다.
선(線)이 일본회화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의의는 ‘야마토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랜 동양화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선의 아름다움에 광택(光澤)을 중시하여 화면에 살린 것이 ‘야마토에’라 할 수 있다. 또 근세에 이르러 금벽화(金碧畵)가 성행하게 되는데, 그 장식화(裝飾畵)로서의 성격은 ‘야마토에’의 상징적인 일면을 발전시킨 것이다. 한편 수묵화(水墨畵)는 본래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지만, 일본의 자연풍토에 융합되어 풍부한 정취가 담긴 수묵화를 낳고 있다.
우키요에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
일본회화는 중국의 그것을 모체로 하면서, 일본적인 기법과 표현을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깊이를 더하면서 현대 일본화에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江戶, 1603~1867)에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 우키요에의 ‘우키요’는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로 미인, 기녀, 광대 등 풍속을 중심 제재로 한다. 목판화를 주된 형식으로 대량 생산하여 서민의 수요를 충당했다. 근대 풍속화의 시작이라고 할 17세기 후반,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는 출판 문화의 흥행에 따라 소설 삽화에 판화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삽화에서 점차 목판화로 독립, 단일색의 수미주리(墨摺)는 목판화의 각선이 갖는 견고함과 더불어 대중적인 취향 때문에 서민에게 환영을 받았다. 우키요에는 붉은색의 간결한 채색과 역동적인 탄에(丹繪), 검정색에 광채의 금속분을 첨가한 우루시에(漆繪), 그리고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는 목판 채색의 베니주리에(紅摺繪) 등으로 발전해 갔다. 1765년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가 다색 목판화인 니시키에(錦繪)의 기법을 개발한 뒤 우키요에의 판화 기법은 정점에 달했다. 목판에 의한 명쾌한 색면 배치와 조각도의 생생한 각선의 표현은 일본의 미니어처라 불릴 만한 독특한 미적 형식을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