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그리고 음모 ( 48회 )
제 48장,
이 여인은 경희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본다.
얼마나 애지중지 기른 맏자식이던가?
“이것아!
어미 간장을 이렇게 녹여 놓고 이제 오니?
네가 보고 싶어 밤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엄마!
정말 죄송해요.
수없이 오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에효, 야속한 것.
그래도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네 시누이를 통해서 들어 알고 있지만 어디 소식이 듣지 못해 그런 것이냐?
내 자식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운지..........“
이 여인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는다.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것이오?
이 아이들에게 어서 밥이라도 해 먹여야 할 것이 아니겠소?”
“아참, 내가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누?”
이 여인은 남편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방으로 간다.
“엄마!
가만히 계세요.
제가 차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와서 저녁을 준비할게요.“
경희는 부모님을 위해서 준비를 해 가지고 온 선물을 꺼내어 가지고 들어간다.
모처럼 만에 부모님께 드릴 최고급의 한우와 과일 그리고 어머니가 늘 좋아하시는 약식을 가져온 것이다.
“세상에 뭘 이런 것을 가져왔어?
그냥 오면 어때서 이렇게 비싼 것을 준비해 왔어?”
“엄마!
이 약식은 내가 직접 했어요.
지금도 이것을 좋아하시죠?“
”암!
좋아하고말고.
네가 언제 이런 것을 다 할 줄 아니?“
이여인은 약식을 잘라서 먹어본다.
참으로 맛이 좋고 기가 막힌 것이다.
“정말 맛있구나!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네 동생들을 불러야겠다.”
이여인은 전화기를 잡고 아들네와 작은 딸네를 부른다.
갑자기 집안은 잔치 집의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아들과 작은 딸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모두 모여든다.
그들은 한참을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집안은 활기를 띠운다.
쓸쓸하게 두 노인만 있던 집에 자식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던 맏딸과 함께 모든 자식들과 자손들 사이에서 경희의 부모님은 모처럼 만에 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경희는 그렇게 며칠을 친정에서 보낸다.
그동안 부산의 이곳저곳 추억이 깃든 곳을 찾아보기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기도 하면서 며칠이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모르게 보낸다.
“엄마!
이제 내일은 올라가 봐야 해요.“
며칠이 지나고 나서 경희는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그래! 가야겠지.
언제 또 다시 올 것이냐?“
이여인은 경희가 간다는 말에 서운함을 나타내며 묻는다.
“이제 자주 올게요.
그리고 오늘 용준이 아빠가 저희를 데리러 내려오는데..........“
“..............................”
이여인은 경희의 말을 못 들은 척 한다.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사위라고 대할 수가 있을 것인지 아직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엄마! 괜찮지요?“
”어쩔 수 있니?
그래도 제 식구라고 데리러 온다는데 어쩌겠니?“
그러면서 이여인은 박기홍을 위해 새롭게 음식을 준비한다.
처음으로 사위로서 맞이하게 될 사람이다.
딸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건너야 하는 것이다.
경희의 모습이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동안 경희와 함께 며칠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 이여인이다.
“엄마!
난 지금 용준이 아빠를 선택한 것이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이 다음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용준이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에요.“
“네가 그렇게 행복하다면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용준이 아빠의 나이가 조금만... 한 십년만이라도 덜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이 네 팔자려니 하고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련다.“
이여인은 경희를 위해서라도 성심을 다해서 대해주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경희는 이번 기회에 남편을 친정에서 사위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 내려오라는 전화를 한 것이다.
박기홍은 경희의 전화를 받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이제 아내를 위해서도 처갓집을 외면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해 온 아내를 생각하고 아들 용준이를 생각한다면 자신이 진즉에 아내를 위해 노력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아내가 친정에서 내침을 받지 않고 따뜻한 환영을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다.
자신은 어떤 대우를 받는다 해도 아내만 마음이 편안하고 허물없이 친정에 드나들 수 있다면 어떤 대우를 한다고 해도 모두 달게 받을 생각이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박기홍의 마음은 한결 가볍다.
용준이가 외갓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고 싶을 때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외갓집이 있는 것이다.
박기홍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따뜻해 옴을 느낀다.
기차역에서 내리자 아내인 경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왜 나왔소?”
“그래도 처음으로 처가에 오시는데 혼자 들어가게 할 수는 없지요.
헌데, 뭘 그렇게 들고 와요?“
”허허허.........
당신 말대로 처음으로 처가에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니요?
마음 같아서는 세상에서 제일 좋고 비싼 것을 준비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뵙고 싶지만 내 수준을 생각하고 장인어른이 좋아하신다는 양주 한 병하고 갈비를 준비했소.“
”잘 하셨어요.
아마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헌데, 우리 용준이는?”
“용준이는 벌써 외사촌들과 친해져서 잠시도 내 곁에 있지 않고 사촌들과 어울리느라고 정신이 없답니다.”
“아무튼 성격은 당신을 닮아서 아주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좋소.”
경희는 박기홍과 함께 친정집 대문을 들어선다.
마침 마당에 간장을 뜨러 나온 이여인과 마주친다.
“장모님!
죽을 죄인이 왔습니다.“
박기홍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이여인은 당황하면서 마주 인사를 한다.
“경희야! 뭐하고 있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여인은 어색한 자리를 피하고 싶어 경희를 보면서 말을 한다.
“어서 들어가세요.
지금 경희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답니다.“
“장모님!
사위로서 편안하게 말씀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네!”
경희는 어머니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기홍을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어서 들어가요.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박기홍은 경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시오.”
경희 아버지 또한 말을 함부로 놓지 못하고 인사를 한다.
“장인어른!
이렇게 찾아뵙게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사이 이여인이 거실로 나온다.
박기홍은 경희의 부모에게 큰 절을 한다.
두 부부 역시 같은 맞절로 박기홍의 절을 받는다.
“장인어른! 장모님!
이렇게 허락해주시고 찾아뵙게 해 주심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옹졸해서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해 자식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 정말 죄스럽소.“
”장인어른!
저를 사위로 받아주시고 말씀을 편안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차........
그러하도록 합시다.“
이여인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술상을 준비한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외모가 아니어서 큰 한숨을 내 쉰다.
“엄마! 죄송해요.“
“아니다!
용준아빠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 된다.
네가 생각보다 남편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 같아 더 이상은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 같다.“
“엄마! 고마워요!
용준이 아빠가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리고 저한테 맞추느라 본인도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요.“
“그래! 그렇게 네가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어서 술상을 내 가자.“
박기홍의 출현으로 그 집의 자손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처음의 어색함과는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들 박기홍을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그들을 이해한다.
박기홍의 따뜻하고 넓은 이해와 가족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이 그들 가족들이 안심하고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하룻밤을 지내고 경희는 서울로 출발할 준비를 한다.
“엄마!
일간 서울 저희 집에 오세요.
아버지와 두 분이서 오셔서 마음 놓으시고 푹 쉬셨다 오세요.“
“그래!
이제 우리도 마음 편안하게 큰 딸네 집에도 다녀보고 싶다.
그리고 용준이가 보고 싶어서라도 아마 자주 갈지도 모르겠다.“
이여인의 부부는 진심으로 그들을 배웅한다.
참으로 오랜 세월 그리움을 참고 보지 못하던 딸이었다.
이제 그들 가족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니 비로소 안심이 되면서 딸의 행복한 모습이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것을 믿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제가 방학을 할 때면 꼭 오겠습니다.“
용준이는 며칠 동안 정이 푹 들었다는 듯이 두분의 가슴에 안기면서 인사를 한다.
“용준아!
가거든 전화 자주 할 거지?“
”네! 매일 같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자주 전화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어서들 가거라!“
”엄마! 사랑합니다.“
경희는 엄마를 꼭 안아준다.
이제 엄마의 품에 안기기보다는 엄마를 안아주어야 할 정도로 엄마는 자꾸만 작아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알지?“
”그럼요!
엄마의 바람대로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경희는 남편에게 핸들을 맡기고 차를 탄다.
경희의 차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부부는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