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따르면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이 거대한 불상을 새기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지어 덮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동불암 마애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불상 상단과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바로 이 목조 전실(누각)을 가로질러 세웠던 기둥 자국(가구 흔적)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마애불의 가슴 혹은 배꼽 부위에 '돌출된 부분'이 있고,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비밀 기록(비기, 秘記)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비기를 꺼내는 날 한양이 망하고 천지가 개벽한다"
조선 말기, 이 전설을 믿은 많은 이들이 비기를 꺼내려다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지만, 1892년 동학의 주요 지도자였던 손화중(孫華仲)이 동학군들과 함께 기어올라 가 마애불의 감실(복장)에서 이 비기를 무사히 꺼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도탄에 빠진 민초들에게 동학 세력이 '새 시대를 열 주역'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며 동학농민혁명의 거대한 불씨를 지핀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도솔암 마애불은 전체 높이가 약 13~15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로, 고려시대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파격적인 지방 양식을 아주 잘 보여준다. 사각형에 가까운 네모지고 평판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위로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매, 우뚝 솟은 코, 일자(一字)로 도드라지게 표현된 투박한 입술이 묘한 위엄과 함께 파격적인 미소를 자아낸다.
머리에 비해 목이 짧아 상체 위에 머리를 얹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가슴과 어깨 역시 부피감(양감)이 없이 넓고 판판하게 처리되어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가슴과 배 부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과, 그 아래 결가부좌한 자세로 드러난 두 발은 신체 대칭에 비해 유난히 크고 도식적으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등 고려 초기 거대 마애불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첫댓글 도솔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200호)은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이 깃든 이 거대한 미륵불에는 백제 위덕왕과 공중누각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이 거대한 불상을 새기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지어 덮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동불암 마애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불상 상단과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바로 이 목조 전실(누각)을 가로질러 세웠던 기둥 자국(가구 흔적)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마애불의 가슴 혹은 배꼽 부위에 '돌출된 부분'이 있고,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비밀 기록(비기, 秘記)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비기를 꺼내는 날 한양이 망하고 천지가 개벽한다"
조선 말기, 이 전설을 믿은 많은 이들이 비기를 꺼내려다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지만, 1892년 동학의 주요 지도자였던 손화중(孫華仲)이 동학군들과 함께 기어올라 가 마애불의 감실(복장)에서 이 비기를 무사히 꺼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당시 도탄에 빠진 민초들에게 동학 세력이 '새 시대를 열 주역'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며 동학농민혁명의 거대한 불씨를 지핀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도솔암 마애불은 전체 높이가 약 13~15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로, 고려시대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파격적인 지방 양식을 아주 잘 보여준다.
사각형에 가까운 네모지고 평판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위로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매, 우뚝 솟은 코, 일자(一字)로 도드라지게 표현된 투박한 입술이 묘한 위엄과 함께 파격적인 미소를 자아낸다.
머리에 비해 목이 짧아 상체 위에 머리를 얹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가슴과 어깨 역시 부피감(양감)이 없이 넓고 판판하게 처리되어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가슴과 배 부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과, 그 아래 결가부좌한 자세로 드러난 두 발은 신체 대칭에 비해 유난히 크고 도식적으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등 고려 초기 거대 마애불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어깨를 모두 감싼 옷(통견)의 주름은 입체적이지 않고 얕은 선으로 평면적으로 깎아 냈으며, 가슴 아래로는 군의(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한 가로선으로 지나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역시 매우 간략하고 형식화된 연꽃무늬(복련문)로 마무리되어 있다.
세련된 기교보다는 거대한 바위가 주는 압도적인 위엄과 민중의 투박한 예술성이 결합된,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민중 불교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