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오스탕드2 - 북해의 오스탕드에서 해변을 보고는 오래된 성당을 구경하다!
2022년 4월 29일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게(브뤼헤) Brugge 에서 기찰르 타고 서쪽으로 달려서
20여분만에 북해에 자리한 항구도시 오스탕드 Ostende (네델란드어로는 오스텐데) 에 도착합니다.
오스탕드 Ostende 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는 100 km 로 하루 2회 있는 IC 기차로
한시간이 걸리고 브뤼헤에서는 30 km 이니 로컬 기차로 20분쯤 걸리는 가까운 곳
으로 항구에는 요트의 마스트가 숲을 이루고 페리 를 타면 영국이 2시간 거리라고 합니다.
오스탕드 Ostende 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기간 독일군에 의해 점령돼 대서양 방벽 의 일부를 건설했던
곳이니 거대한 해안 방어 구조물은 스페인 국경에서 부터 스칸디나비아 까지 뻗어 있었으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본부로 사용된 다각형 요새를 나폴레온 요새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기간 미국에는 2만 1000명의 백만· 억만장자 가 생겼으니
영국과 프랑스등 연합국에 전쟁물자를 공급하거나 전쟁자금 을 빌려 주고
수익을 챙긴 결과였다는데 큰 돈을 번 대표적인 기업이 금융재벌 JP모건 이라고 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의대를 다니던 게르하르트 도마크 는 벨에포크
시절 인지라......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또는 영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싸우면 금세 승리할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에 들뜬 상태로 친구들과 자원입대 했습니다.
벨 에포크 는 “아름다운・좋은 시절” 이란 뜻이니 19세기 말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프랑스
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 데에 회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 입니다.
이 표현은 1930년대에 전쟁 전 15년간을 일컫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으니 앙드레 알레오 가
1940년 11월 라디오 파리에서 진행한 "아 좋은 시절! 1900년의 음악 크로키" 라는
이름의 라디오 방송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꿈같던 시절을 회상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낭만적인 생각에 들뜬 상태로 친구들과 자원입대한 독일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척탄병으로 서부전선
에 배치됐는데 전쟁은 교착상태 에 빠지고 북해에서 남쪽 스위스까지 길게 이어지는
참호 속에서 굶주리고 지쳐가던 어느날 그는 벨기에 해안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철모가
날아가면서 쓰러졌는데 머리가 찢어진 상처여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뇌 손상 이 염려됐습니다.
베를린으로 후송된 도마크는 치료받은후 이번에는 동부전선에 투입됐으니 의대에 다닌 경력으로 의무병
으로 바뀌었으니 폴란드 크라쿠프를 거쳐 우크라이나에 있는 야전병원 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부상병
을 돌보는 임무를 맡아 의사의 수술을 거들었으니 전쟁으로 넘쳐나는 환자들 속에 쉴 틈 없이 일했습니다.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돌면 손을 쓸 수가 없었는데 가장 심한 것은 가스괴저 였으니 절단 수술후 감염으로
가스괴저 에 걸리면 근육 조직이 썩었으니 그러면 썩은 피가 심한 악취를 내며 새어 나오면서 가스가
발생했고 또다시 절단 수술을 해야했으며 심하면 죽고 말았는데 원인은 세균 ‘클로스트리듐’ 이었습니다.
전쟁 후에 도마크는 몸속에 들어온 세균을 없애는 연구를 했으니 색깔을 내는 염료와 설폰아마이드
라는 화합물을 합친 물질의 약효를 실험했는데 프론토실이라는 염료 가 연쇄상구균에 감염된
쥐를 치료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 약은 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설파제 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동물실험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효능을 보이자 세균감염증 치료 에 자신을 가지게 됐는데
1935년 도마크의 6살 난 딸이 세균에 감염된 자수바늘에 손을 찔리는 사고가 일어나 감염은
급속도로 퍼졌고 혈액 독성이 심각했으니 의사는 생명이 위급하니 딸의 팔을 절단 해야 한다고
말하자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도마크는 프론토실을 딸에게 주사 했고 그러자 기적적으로 회복 됐습니다.
당시에는 상처를 통해 침투한 세균이 몸에 병을 일으켜 죽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소독약은 세균 예방 에는
도움이 되지만, 감염된 상처에 바르면 세균뿐만 아니라 세균을 죽이는 백혈구까지 없애 상태가
더 나빠졌으니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람보다 상처를 입어 세균 감염으로 죽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연구가 진행돼 약효를 내는 것은 색소 가 아니라 “설파닐아마이드” 라는 것이 밝혀졌고 프론토실
을 주사하면 피부가 붉게 변했는데, 설파닐아마이드 만 사용해도 항균 효과가 있었고
피부색이 변하지 않았으니 설파제 개발로 도마크는 193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히틀러가 독일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금지 했던 시기였는데 1935년 스웨덴의
노벨위원회가 유대인 평화주의 작가 칼 오시에츠키를 평화상 수여자로 선정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으니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도마크를 감옥 에 넣고 노벨상을 거절할
것을 강요하자 어쩔수없이 포기사인을 한 도마크는 전쟁이 끝나고 1947년에 노벨상을 받습니다.
설파제는 감염병 으로 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니 1936년에는 설파닐아마이드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아들의 생명을 살렸고 또 다른 설파제 설파피리딘은 폐렴에 걸린 윈스턴 처칠 을 치료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미군에게 상처가 나면 뿌리는 가루약으로 지급돼 전장에서 감염 을 막았습니다.
세균에 감염되면 속수무책 인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니 젊은 시절 우크라이나에서의 생활이
귀중한 경험이 돼 페니실린 이 나오기 이전에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더 좋은
약이 많아 사용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설파제는 페니실린 이전의 명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다가 성 페트루스 & 파울루스 성당 이 보여 안으로 들어가는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장이 솟은 성당은 권위적 인지라 얼핏 싸늘한 적막감 이 감도는데....
왜 그런지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다른 성당들 처럼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
1905년에 네오 고딕양식 으로 지어졌으니 불과 100여년 남짓 된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페트루스 & 파울루스 성당의 아름답고 신비로은
장미창 은 수직 상승하는 고딕양식으로 거대한 창을 통한 색채의
신비를 탄생 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니 보면 볼수록 은은한 느낌 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 여행기에는 이 성당을 나와 골목을 돌다가 사람들이 드나드는 작은 성당 으로 발길이 이어
졌는데 사람들이 편안히 안길곳은 높은 첨탑으로 위압감을 주느 곳이 아니라 작지만 따뜻한
느낌이 드는 동네 성당 이니 성당 내부에 여기 탕크레드가가 항구이니 배가 공중에 걸려 있다나요?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아야하는 어촌 마을의 자연스런 표현물 이라 거대한 성당에 색바랜 장미창 보다 정감
어린 곳이라고 했는데... 기억을 더듬으니 십수년전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는중 몬트리올 의 노트르담
드 봉스쿠르 교회 Chapelle Notre-Dame de Bonsecours 에서 교회내에 매달린 배 를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스탕드도 벨기에 땅인지라 쵸코렛 상점 들이 눈에 뜨이는데 그 옆에 표현주의 화가인 엔소르 박물관
이 있으니 "여메스 엔소르 ( Ensor, James Sydeny)" 는 벨기에 화가로 이 도시 오스탕드 에서
태어나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당시의 사조인 아카데미즘적 경향에 반대하여 자퇴를 합니다.
화가 엔소르는 초기에는 드가· 고흐 등의 영향을 받고 인상주의로 출발하였으나, 1883년부터
는 독일의 표현주의에 가까운 환상·괴기·풍자 의 방향으로 바뀌면서 가면· 해골· 망령
등을 주요 주제로 삼아 작품활동을 했다고 하며 그의 생가에 엔소르 박물관 이 꾸며진 것입니다.
그러고는 과일가게 를 보는데 누구 여행기에 이곳 과일가게에서 스페인 복숭아 와 벨기에 체리
를 샀더니 천도 복숭아 라도 되는지 그리도 달고 맛있었다고 했는데.... 그 외에도
이 도시는 항구인지라 새우 같은 걸로 만든 크래미 스낵 은 게맛살 같은 맛이 난다고 합니다.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나와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항구 를 걸어 부두에 정박한 수많은
요트에 높이 솟은 마스트 들을 구경하면서 걸어서 탕크레드역 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부부에게 시간만 좀 있으면 여기 오스탕드역에서 트램 을 타고 "데 한" 이라는
항구 도시 로 갈수 있다지만.... 우린 오늘 밤에는 크로아티아 자그렙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라 다시 기차를 타고는 블뤼헤역을 지나 겐트역 에서 내립니다.
첫댓글 잘봤습니다
오스탕드의 해변을 보았으니.....
이제 오래된 도시 겐트로 갑니다!
인생은 현재의 연속이다.
살아야 할때는 지금밖에 없다.
인생이란 마음 속으로 그리는
미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삶으로서
진정한 미래의 삶을 살수 있다.
-R.W. 에머슨-
늘 즐겁고 健康 하시고 幸福 하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삶이라......
그렇지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