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과 PPM의 세계 — 아주 작고도 놀라운 가능성에 대하여
“만일(if) 네가 그때 거기 있었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꿨을지도 몰라.”
이 얼마나 아련하고도 설레는 문장인가.
영어에서 ‘if’로 시작되는 가정법 문장은, 현실에 없었던 일을 그려보는 상상력의 입구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를 담아내는 언어의 작은 기적. 우리말의 ‘만일’도 그런
뜻이다. 말 그대로, 만에 하나. 1/10,000의 확률,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에 마음을 걸어보는 것. 언어는
그렇게 작은 가능성에도 마음을 실어준다.
이제 전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자. PPM, parts per million. 백만 분의 일이라는 아주 미세한 단위.
우리는 공기의 질, 바닷물의 염분,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들을 이야기할 때 이 단위를 쓴다. 감각
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그 존재는 분명히 현실을 바꾼다.
마치 사람 사이의 마음처럼.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아주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한때 바다 위를 달리는 대형 유조선에서 일하던 기관사였다. 그 배의 심장을 움직이는 것은 스팀터빈
이었고, 터빈을 돌리는 보일러 안의 물은 늘 정직하고 순수해야만 했다. 그 물속의 염분 농도는 20ppm을
넘어서면 안 되었다. 너무 미세해서 사람의 혀로는 감지조차 되지 않지만, 그 미세한 염분이 보일러를 망가
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염분을 측정했고, 때론 물을 흘려보내고 다시 채웠다. 단지 20ppm 때문
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관계도 이와 닮았다.
사랑이 깨지는 이유는 언제나 큰 사건이 아니었다. 단지 아주 미세한 오해, 말 한 마디, 늦은 사과 하나.
그 작은 차이들, 마치 1ppm 단위의 감정이 쌓이고 흐트러지면서 결국 마음의 엔진이 멈추기도 한다.
문장 속의 ‘if’처럼, 사람의 마음도 늘 가정을 품고 산다.
“만일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네가 내 마음을 조금만 더 알아줬더라면…”
그 ‘만일’의 확률이 1/10,000이든, 1/1,000,000이든,
그건 여전히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현실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 ‘확실한 것’을 좇으며 살아가지만,
사실 인생을 움직이는 건, 아주 작고 보이지 않는 그 1ppm의 차이, 혹은 **그 ‘만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확률이 낮다고 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1ppm의 가능성에도 마음을 걸어보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 인생을 조용히 바꾸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