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루카 21,5-11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때 종말이 오는 이유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기후 위기는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다만 해수면이 좀 높아져
오션뷰가 좋은 부동산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옳을까요?
저희가 살던 곳은 장마 때만 되면 물난리를 치러야 하는 시골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해에도 물난리가 나서 저는 포대기에 싸인 채 집 지붕을 뚫고 헬기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비행기를 타 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른들은 장마 때는 초긴장을 하셨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피난을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른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것보다도 냇가가 불어나서 그것이 제방을 무너뜨리면 큰일이었습니다.
동네에 비가 그쳤더라도 그 물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밤새 제방이 안전한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자정이 넘었는데 제방이 무너지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누군가가 계속 그 제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엔 제방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징조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과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상 멸망 이전에 올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세상엔 전쟁과 반란,
자연재해와 전염병, 하늘의 무서운 표징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표징은 왜 미리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표징을 보고 우리가 회개하고 뒤로 돌려놓을 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준비하며 희망을 품고 주님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표징을 보여줍니다. 표징이 거의 없는 병들이 무섭습니다.
아프면 거의 말기인 췌장암 같은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아픈 것이 표징입니다.
그러면 미리 대처할 수 있습니다.
큰 사고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제방이 한 번에 터지는 일은 없습니다.
조금씩 물이 새어 나오다가 그것이 더 커지면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틈이 생겨 물이 새어 나올 때 재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징후’라고 합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도 건물에서는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직원들은 그런 소리를 이미
여러 번 들었다고 합니다. 성수대교 사고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리가 갑자기 내려앉을 리는 없습니다.
누군가 작은 문제점이 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면 큰 사고는 면했을 것입니다.
우리 죽음과 세상 마지막 때도 표징을 잘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21,34)
우리는 왜 표징에 무관심할까요?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몸이 망가지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픈 것을 다시 술로 마취시키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이들도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과로로 사망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표징을 잘 인식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준비할 것은 준비할 방법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란 새로 태어남입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나에게 바란 몸과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세례는 그것을 알아채는 시간입니다. 세례를 받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나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바라던 모습의 원형을 간직하기에
조금만 이상해지면 바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한 밀러 대위는
죽어가며 “잘 살아야 해!”(“James, earn this…. earn it.”)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들의 죽음의 가치를 삶에 이용하라는 뜻입니다.
라이언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한 밀러 대위와 다른 대원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들이 자신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며 죽었는지를 묵상해야 했습니다.
세례는 밀러 대위가 피로 라이언 일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해 준 그 순간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면 라이언은 자주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그 본래의 모습과 어긋나는 표징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 밀러 대위의 무덤 앞에 경례를 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매일매일 당신이 그날 다리 위에서 나에게 했던 말을 생각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당신의 눈에는 나는 여러분 모두가 나를 위해 해준 희생을 낭비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I hope that, at least in your eyes, I've earned what all of you have done for me.)”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린 피 값으로 하느님 모상을 회복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자주 되돌아보며 주님 희생의 값을 허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은 아주 작은 잘못되어 가는 표징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과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실 때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자신과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어서 징조를 읽을 줄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