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2chcopipe.com/archives/51528234.html
268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03:44:51 ID:Zx3d/AMg
기억상실을 겪은 사람이나, 주변에 기억상실을 겪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어떤 계기로 기억을 잃었는지,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
성격이나 인간관계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269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07:26:31 ID:sdkOYkcr
교통사고 때문에 사고 당일을 포함해서 전후 3일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어.
그 3일 동안의 기억은 끝내 되찾지 못했어.
내가 왜 그 장소에 갔는지도 모르겠어.
272 이름: 무명씨 \[\] 投稿日: 2010/09/08(水) 09:05:19 ID:+aQ1NgPu
>268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 넘어져서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기억을 잃었어.
교복은 여기저기 뜯어지고 무릎과 팔꿈치에서는 피가 흐르는 상태로 학교에 갔지.
그러다 선생님에게 발견돼서 그대로 학교 근처 병원으로 실려 갔어.
지금도 어디서 넘어졌는지, 어떻게 넘어졌는지, 그 뒤에 어떻게 학교까지 갔는지, 어떤 선생님이 나를 발견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병원에서 유일하게 또렷이 기억나는 건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는 거야ㅋㅋ
아침에 집을 나선 뒤 거의 4~5시간 동안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날이 몇 월 며칠이었는지도 한동안 기억해 내지 못했고.
그래도 2박 3일 동안 입원했는데, 병원 생활은 정말 쾌적했어.
밥이 진짜 맛있었거든.
병원밥은 맛없다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던 가족들은 내 머릿속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진지하게 걱정하더라.
280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16:20:05 ID:wBrnT8Tt
나는 15살 전후의 기억이 없어.
범죄 피해자였기 때문에 사건의 계기나 피해 상황, 공포를 느꼈던 순간 같은 건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세세한 부분은 전부 희미해.
나중에 알게 된 사실들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때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 이전의 기억도 상당히 흐릿해.
동창을 만나도 이름을 모르겠고, 어릴 때 있었던 일은 전부 잊어버렸어.
내 과거가 전부 남의 일처럼 느껴져.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게 된 기억밖에 없는 셈이지.
기억상실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과거를 잊었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아.
282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18:27:49 ID:sdkOYkcr
>>280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린 시절,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이전의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아.
동창이나 담임 선생님도 기억나지 않고, 학교 행사나 추억도 사진을 보여 줘도 별로 실감이 안 나.
원래 발달장애 기질이 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참고로 >>269에 쓴 교통사고가 나기 전부터 그랬어.
283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21:42:06 ID:wBrnT8Tt
>>282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처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 과거의 기억 전반이 흐릿해지기도 한다고 하더라.
정확한 출처는 없으니까 틀린 이야기라면 미안해.
그래도 자기방어를 위해 기억을 마음속 깊이 묻어 버리는 일이 실제로 있는 것 같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사고 자체가 멈춰 버리는 느낌과 비슷하려나.
아마 나도 과거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사회에 나가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야.
285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22:28:10 ID:Z3eOIcP0
아,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
나도 초등학생 때 가정이 무너지는 일과 형제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일, 이른 초경이 한꺼번에 겹쳤거든.
그래서 대략적인 윤곽은 기억나지만, 세세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당시 친구가 누구였는지는 기억하는데, 정작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같은 구체적인 기억은 텅 비어 있어.
288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23:34:53 ID:/fJDyvWq
우리 삼촌 이야기인데, 어느 날 퇴근길에 실종되셨다가 일주일 뒤에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
숙모가 다급하게 경찰이 알려 준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그곳은 다른 현에 있는 병원이었고 삼촌은 기억상실 상태였어.
숙모는 물론이고, 끔찍이 아끼던 두 딸과 부모님까지 전부 기억하지 못하셨대.
한동안 입원하셨던 것 같은데 회복될 기미가 없어서 결국 퇴원한 뒤 집으로 돌아오셨어.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가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정작 삼촌 본인은 그곳이 자기 집이고 이 사람들이 자기 가족이라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
하지만 어딘가 남처럼 대하는 느낌이 있었어.
당시 아홉 살이었던 나한테도 존댓말을 쓰고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셨거든.
기억을 잃은 채로 2년 조금 넘게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갑자기 삼촌이 이런 말씀을 하셨대.
"여보, 내일 출장 준비는 다 해 놨어?"
여기서 '여보'는 숙모를 부르는 말이야.
실제로 삼촌은 실종된 날의 다음 날부터 2주 동안 출장을 갈 예정이셨다고 해.
무슨 계기로 기억이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상실 상태였던 2년 동안의 일은 완전히 잊어버리셨대.
아니, 아예 그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야.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만, 그 2년 동안의 일은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해.
처음에는 자신이 기억상실에 걸렸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하셨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중학생이었던 딸이 고등학생이 되어 있어서 깜짝 놀라셨다고 하더라.
할머니와 숙모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290 이름: 무명씨 \[sage\] 投稿日: 2010/09/08(水) 23:50:07 ID:f8YdlXyr
>288
그거 아마 '해리성 둔주'일 거야.
스위치가 전환되듯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리는 거지.
삼촌은 엄청 성실하고, 평소에 불평불만도 잘 늘어놓지 않는 타입 아니야?
그런 사람들이 그런 증상을 겪기 쉽다고 하더라고.
291 이름: 268 \[sage\] 投稿日: 2010/09/09(木) 00:59:46 ID:8GMLcl01
여러분, 많은 경험담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어떤 원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먼저 떠올렸는데,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모양이네요.
저도 술자리가 끝난 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던 적이 한 번 있는데, 그런 것도 비슷한 경우일까요?
흥미로웠던 건 >>280, >>282, >>285님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경우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이 희미해진 게 아니라, 특정 부분만 구멍이 뚫린 것처럼 기억이 없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는 점이요.
>>288님의 이야기는 제가 딱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떠올렸던 모습이었어요.
나라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예전처럼 잘 지내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무척 불안할 것 같네요….
첫댓글 헐..무슨 느낌일까.. 통째로 사라지는게..
이런 이야기 더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