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신랑되신 예수께서(175장)
※말씀: 베드로후서 3장 10-18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11절)
■ 주님의 뜻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 1535년, 암흑기의 중세, 개혁자 "존 피셔"가 사형을 당하던 날, 중병에 걸린 그는 사형대의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가 사형대에 거의 올라갔을 무렵, 먹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때 "피셔"는 두 팔을 벌려 구경꾼들에게 시편 34편 5절 말씀을 크게 외쳤습니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어디 "피셔" 뿐이겠습니까. 주를 앙망하는 사람은 영원한 소망의 광채를 입습니다. 대부분 죽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피조물로서 인간다운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세상 끝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럼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소망을 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역사는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역사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을 실제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요즘 종말에 대한 말을 하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까지 받습니다. 또 하나 나왔다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절),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절). 다시 오실 예수님께 대한 소망, 예수님을 만날 것에 대한 기다림이 세상의 힘과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 가장 건강한 기다림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현실에 충실한 기다림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벧후3:11절). 그리고 •온전함을 향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절) •성장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 지어다”(벧후3:18절). 이탈되고 비정상적인 요소는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 현실에 충실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 한 점 흠도 없이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절). 경건함, 평강, 온전함, 이 모두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소망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은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든 것은 오직 그 하나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일생이 평가받게 될 날이 올 것이고, 그 날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을 굳건히 기다리게 하시고, 경건한 생활과 성숙하고 평안한 삶을 위해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