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뒤 20년을 더 살면서 두 번에 걸쳐 10년 동안 수렴청정. 왕후의 청정은 몇 가지 특징과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된다. 우선 그녀는 정치의 전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신하들과의 협력 관계 속에서 정국을 운영하려고 했다. 그 까닭은 안동김씨는 물론이고 아버지 김조순과 가까운 지기들이 이미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 봉조하 남공철, 영중추부사 이상황, 영의정 심상규, 김유근(판중추부사)·김난순(우참찬)·김이재(이조판서) 등 왕후는 세도정치 여파 속에서도 왕실권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효명세자에게 사후에 왕을 칭호를 내리고 종묘를 확장해 순조와 익종을 세실(종묘의 정전에 안치한 신위)로 모신 것 종묘가 현재 규모로 확장된 시기는 순원왕후 수렴청정 때였다. 아울러 그녀는 안동 김씨 출신이었지만, 외척 가문 간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 예컨대 안동 김씨 대표인물.,김유근 풍양 조씨를 대표하는 인물인.,조만영. 어영대장과 호위대장에 번갈아가며 임명했다. 이조판서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를 교대로 제수. 이는 조선의 '병권과 정권'의 편중을 막기 위한 조치. 왕후가 수렴청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현안은 민생.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에게 조세를 탕감해주고, 부족한 국가재정은 왕실의 내탕과 다른 지방 곡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당시 근본적인 문제점은 안동김씨 세도정치 구조적 폐단 때문에 민생시책은 부분적인 성과 뿐이었다. 순원왕후는 1850년(철종 1) 국모로 임어(臨御)한지 50년, 그 한해뒤 두 번째 수렴청정을 끝내고 역사 뒤로 물러났다.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년 6월 8일/음력 5월 15일 ~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 23대 순조의 정비이자 문조(효명세자)의 어머니이자, 헌종의 할머니, 본관은 안동(安東). 김조순과 청양부부인 심씨(沈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조 최측근이자 시파 계열 아버지 김조순 영향으로 당시 왕세자였던 순조의 유력한 세자빈으로 떠올랐고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 사실상 세자빈으로 확정되었다.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미루어진 최종 삼간택. 결국, 순조가 즉위한지 2년 뒤인 180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05년, 대왕대비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의 친정이 선포되자 순원왕후의 아버지 김조순은 김관주를 비롯한 경주 김씨의 벽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김이익(金履翼)과 김이도(金履度) 등 안동 김씨 시파를 등용. 이들 안동김씨 시파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기에 정순왕후 집권 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는 다소 완화된다. 그러나, 대규모 벽파 숙청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발점. 이후 순원왕후는 1809년에 맏아들 효명세자를 낳았는데 세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해 순조의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당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19년,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 훗날, 고종 때 4년간 수렴청정을 한.,익종비 신정왕후. 1827년, 순조는 효명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한다. 이 대리청정 기간 동안에 효명세자는 현재(賢材)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1830년 급서. 대리청정 4년 만에 갑작스럽게 급서하였고 1834년 순조마저 승하하자 헌종이 즉위한다. 당시 8세 헌종은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고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게되며 '자신의 친천' 김조근의 딸을 며느리로서 맞아들인다. '안동김씨' 김조근의 딸이 곧, 헌종의 정비 효현왕후. 그러나 1849년 헌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그녀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사도(장헌)세자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 원범(元範)을 덕완군으로 책봉. 자신과 순조의 양자로 입적해 즉위한 25대 철종 그녀는 철종을 즉위시킨 뒤, 철종의 왕비를 김문근의 딸(철인왕후)로 맞아들여 세도정치.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이어나가게 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절정이던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에 창덕궁 양심각(養心閣)에서 69세 승하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인릉(仁陵)으로 남편인 순조와 합장. 이후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년)에 남편 순조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로 추존되자 그녀도 함께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존되었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에는 '대한 순조숙황제 인릉 순원숙황후 부좌 '大韓 純祖肅皇帝 仁陵 純元肅皇后 祔左)'.,묘비 순원왕후가 남긴 33통의 한글편지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封書) 가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당대 정치에 대한 관심 등을 표현 궁체로 쓴 19세기 한글 편지.,문화재. ................................................. 순원왕후의 한글 편지
순원왕후 거소 수강재에서 바라본.,낙선재 후원.
순원왕후가 사후에 순조와 합장된.,인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