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시점촌인 도문시 량수진 남대촌에 가본다
도문―훈춘 국도길을 따라 한참 차를 달리느라면 길량측으로 산뜻한 채색기와를 얹은 새집들이 양지바른 언덕에 줄지어 늘어서있는것이 한눈에 띄인다. 이 마을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성급시점촌인 도문시 량수진 남대촌이다. 조, 한족 190여세대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이 촌의 세대주 김동길촌장은 올해만으로도 110만원이라는 자금을 얻어다 마을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마을길을 전부 콩크리트길로 바꾸었고 2000메터에 달하는 배수구를 빼고 82세대에서 채색철기와며 도자기기와를 얹었고 총 3000메터되는 철바자를 세웠다. 초가집은 이미 종적을 감추었고 새집들이 오색단장을 하여 새 마을 새 기상을 떨치고있다.
누군가 김동길촌장은 성로력모범이라고 소개한적 있다. 그를 마주하는 순간 말그대로 일에 절은 순박한 농민의 전형적인 이미지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이런 순박한 이미지만으로 대체 어디서 어떻게 그 자금들을 끌어들였을가 의문이 가지 않을수 없었다.
편제없는 출근족
혹자는 《우에서 돈이 내려온다》고 할지도 모른다. 과연 《우에서 돈이 내려》오게 하기 위해 그는 시정부로 얼마나 다녔는지 모른다. 《휴식일은 그 사람들도 쉬니깐 나도 안 갔지. 기본상 매일 다녔습니다.》 느린 발음에 낮은 목소리.
김동길촌장은 워낙 여러해째 국과 촌의 도급관계(局保村)를 빌미로 시정부의 여러 부문에 매일같이 《출근》하면서 수리건설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해갔다. 그런 와중에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성급시점촌》 선정이 있게 된다는 소리를 엿들었다. 《귀신 듣게 떡소리》라고 결정권이 농업국에 있다는 정보까지 입수한 그는 기회를 놓칠세라 전문 《출근》을 하였다.
비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 《불청객》의 앞을 막고 국장의 허락이 없인 못들어간다고 잡아뗐다. 《국장과 금방 전화통화를 했는데 국장이 오라고 해서 왔다》고 얼려넘기고는 스스럼없이 국장실로 들어갔다.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무조건 《남대촌을 성시점촌에 넣어달라》고 사정하였다. 억지를 부리는 그에게 국장은 자료부터 해서 올려보내라고 하였다. 당장 마을로 돌아온 그는 선자리로 자료를 만들어냈다. 자료를 갖고 량수진에 올라가 도장을 박은 후 대바람에 농업국 국장한테 자료를 쥐여주고 돌아왔다.
《언덕》을 쌓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울》수는 없었다.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법》 아닌가? 20여년간 남대촌 촌장으로, 서기로 마을의 총목을 떠메고 수리건설을 비롯하여 선진촌건설을 주도해온 그로서는 이미 해놓은 일이 얼마든지 있었고 또 해야 할 일들이 언녕 프로그램되여있었다. 하여 자료작성에 문제될것 없었다. 남대촌은 드디여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성급시점촌으로 선정되였고 잇따라 새농촌건설 가동자금 50만원을 배당받을수 있었다.
도문시 박송렬시장이 직접 남대촌을 담당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는 또 두말없이 시장을 찾아갔다.
《우리 촌에서 배수구를 빼는데 콩크리트 50톤이 모자랍니다.》
《네. 무슨 방법을 대서든 꼭 해결하겠으니 기다려주십시오.》
그래도 그는 계속 찾아갔다. 《지도자들은 일이 많아서 쉽게 잊어버립니다. 때문에 자꾸 가야 합니다. 앉아 기려서는 누가 쓰라고 갖다주는 사람 없습니다.》
과연 그가 시장을 찾아가 세번째만에 박시장은 《아차!》 하더니 수리국, 방산국의 지도자들과 함께 콩크리트 50톤을 차에 싣고 직접 남대촌까지 찾아왔다.
남대촌은 워낙 지난해부터 성민족단결선진 시점촌이였다. 당위 조룡호 전임 서기가 총책임을 맡고 그 명목으로 120만원 투자로 된 대통로공사를 벌여왔다. 그러던중 조서기가 후에 연변주로 전근되여가면서 25만원에 달하는 자금락착에 공백이 생겼다. 어떻게 할것인가? 새 지도자를 찾아 일일이 해석하여 확답을 얻기엔 시간이 수요된다. 차라리 조서기를 조르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는 조서기를 쫓아 연길로 올라갔다.
《조서기 계실 때 벌인 일을 마무려야 되겠습니다. 지금 대통로공사가 정지되였는데 시에서는 자기들은 모른다며 조서기를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는 은근 슬쩍 거짓말까지 보탰다. 《하던 일은 끝을 마쳐야지요.》 조룡호서기는 직접 나서서 해당 부문과 교섭하여 25만원의 자금을 락착시켰다.
새주택건설공사를 벌여온 근 4년간 남대촌에서는 이미 100여채의 초가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었다. 시에서 세대당 7000원, 촌에서 3000원씩 대주며 새주택건설을 동원하자 힘이 닿는 촌민들 치고 주택개선을 하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필생의 정력을 마을 촌민들에게 바쳐온 3세대의 로간부들은 올해까지도 기력이 없어 꼼짝 못하고있었다. 보고만 있을 촌장이 아니였다. 그는 오랜 도급관계로 친구처럼 지내온 시 민족사무위원회, 부련회, 교통수금소 등 단위의 지도자들께 실토정을 하였다. 그들은 발벗고 도와나섰다. 서로가 각기 벽돌, 콩크리트, 기와를 담당하였다. 하여 이 세 로간부가족도 남들 부럽지 않게 새집에 버젓이 이사할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그는 사실로 지원을 호소하여 성급 도급단위인 산아제한위원회에서도 10만원, 시민족사무위원회에서도 20만원 지원받았고 시당위 조직부는 촌사무실건설을, 민정국에서는 로인활동실 건설을 맡아나서도록 주위를 감화시켰다. 요즘엔 주, 시 산아제한위원회에서 컴퓨터며 록음기를 들고 문화건설에 보태라고 자진하여 찾아오기도 하였다. 사회 각계의 아낌없는 지원속에 힘을 얻은 김동길촌장은 래년에는 50만원 투자로 된 목욕탕까지 딸린 마을종합청사를 지을 타산을 하고있다.
《금맥》을 찾다
지원은 어디까지나 잠시적이고 보조적이다. 촌민이 주체가 되여 촌의 자원을 발굴하고 장기적인 소득을 올릴수 있는 《금맥》을 개발해야 한다. 김촌장은 밤을 패며 궁리하였다.
《근 30헥타르 되는 밭에서 잎담배농사를 짓고있지만 아무리 잘해봐야 수매시 등급을 눌러놓으면 농민들은 꼼짝 못하고 당하고만다. 하여 아예 담배밭을 세를 주고 농민들은 품삯으로 년 2000―5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있다.
지금 40헥타르 되는 밭에서 농민들은 이미 수박, 참외 규모화생산으로 헥타르당 2만원 소득을 올리고있다.
논이라야 악성토질이라 소출이 낮고 산이라야 산부업을 할만한 물목도 없고...》
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산에 묻혀있는 화강암석을 떠올렸다. 석장을 개발해야 한다! 장춘-훈춘 고속도로가 시공에 들어가게 되면 화강암석 수요량이 막대하다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그는 해당 부문과 련계를 달아 석장개발 준비를 다그쳤다. 그런데 군사용동굴이 화강석개발에 문제시되고있었다. 지체할세라 그는 성군구와의 교섭에 나섰다. 하여 성군구로부터 지도자가 직접 남대촌을 찾아와 여러 가지 협상을 하기도 하였다.
《100만원 투자로 화강암석장을 개발하기로 이미 등록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전 사회가 농촌발전을 중시하는 때라 촌장들의 말이 섭니다. 석장개발도 가능하다고 봐야지요.》 김동길촌장의 낮으나 저력있는 말소리였다.
인터넷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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