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에 껄떡대는가 첫번째
스물한살 채임의 변 : 그것은 5번을 만들기 위함이다.
내가 묵호 고등학교 2학년 1반 3번으로 재학중이던 시절의 일이다. 2학기 중간고사 윤리시험에서 4지선다형 객관식 문제가 출제되었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한 답으로 문항에는 없던 5번을 답으로 적어 제출하였다. 그 연유로 인해, 자신의 친구중에 조폭이 있음을 일삼아 자랑하던 박씨 성의 윤리교사는 조폭의 친구를 얄로 본 댓가로 나에게 연타성 따귀를 거침없이 작렬하였다.
"3번하고 4번나와."
"아가리 꽉 물어라. 턱 돌아간다."
'사시미와 문신은 남자의 로망' 임을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던 윤리교사에게 폭력은 어떠한 경우로라도 정당화 될 수 있는 힘의 원리인 동시에 신성불가침한 완전체였으리라. 개깡하나 믿고서 설치는 양아치들을 낭만과 의리로 변조시킨 조폭영화의 붐이 막 불기 시작한 시대가, 시대인지라 윤리교사의 손목은 더욱 자신감에 찬 위풍당당으로 허공을 아치로 갈라 놓았다. 아무 생각없이 내 답안지를 컨닝했음이 분명한 4번녀석과 난, 평소 배드민턴을 즐긴다는 윤리교사의 손목스냅에 탄복하며 휘청이는 반동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그리고 그 뜨끔한 따귀를 맞으면서 뜬금없이 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저 병신때문에 오늘 똥 제대로 밟았다는 표정의 4번녀석(여기서 말하는 저 병신은 물론 나다) 과 도대체 뭘보고 5번을 적었는지 시험지를 뒤적이는 아이들과 내 턱관절을 걱정하여 아가리 꽉 물라는 안전수칙까지 친히 고지해주는 윤리교사, 그 사이에서 나는. 인류가 고안해낸 형식의 데이터에서 누락된 5번을 만들고 싶다는 창작욕에, 내 인생최초의 영감에 몸을 부르르 떨은 것이다.
후덜덜, 하고.
왜 있지도 않은 5번을 적었지? 착각했거나 실수했거나. 뻔하지 않나, 아무생각 없었겠지.
혹은,
객관식 4개의 문항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과 그래서 새로운 답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그리하여 답은 5번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잠시, 가볍게 했을지도 모를일이다.
5번일수도 있지 않나. 아무렴 어떠나. 어차피 지나온 모든 과거는 꿈보다 해몽인데 말이다.
어쨌꺼나 그 덕분에 새로움을 거부하는 세력은 체제를 장악한 실세임을 알았고 새로움에 대한 진압또한 연타성의 따귀처럼 권위를 앞세운 용의주도함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별 시덥지도 않은 체제유지의 진실을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아.-
식자층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각종 문학상을 휩쓰는 저력있는 작가는 못되더라도, 대중의 기호를 캐취해 베스트셀러를 양산해내는 인기작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문체와 철학으로 독자적 세계관을 정립하여 소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한 그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행여 그리 되지 못하더라도, 5번을 적었던 옛날처럼 생각없이 별 시덥지도 않은 이야기를 소설이랍시고 쓰고서는 시니컬한 철학자처럼 미간을 모아 심오한 표정을 짓는다면, 별 생각없이 내 답안지를 베껴적은 4번녀석처럼 별 생각없는 몇몇의 병신들은 금세기 최고의 작가라 칭송하며 소수의 추종세력을 형성하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그들만의 울타리안에서라도 작가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오늘 이순간, 버림받은 5번을 구원하리라. 따귀의 수모를 예술로 승화시킬 텍스트 5번을 구현해 내리라.
-아, 작가 채임선생님 아니십니까. 선생님을 이런데서 뵐 줄이야. 실례지만 사진 한장만 찍어도 되겠습니까,
- 죄송합니다. 초상권관련에서 시비가 있을 수 있어서요, 싸인으로 대신하죠. 괜찮으시겠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그리하다면 그런거지요,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온 소설, [네 겨털에선 레몬맛이 나]는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현대사회의 삐뚤어진 성의식의 발로가 인간의 사회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집단의 모순과 집착을 조곤조곤 짚어내며 종국에 성이란 사회를 구성한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란 결말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마침표 하나도 쉬 버릴 수 없는 명작이라는 느낌입니다!
-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하네요. 요즘 너무 호평일색이라 나쁜 말들이 더 감사하긴 하지만요.
-요즘 일간지에 연재 중이신 후속작 [네 똥꼬에선 초코맛이 나] 는 언제쯤 발행될 예정입니까?
-글쎄요, 그런 공적 질문에 관련해선 제가 이런 자리에서 답변해 드릴 수 가 없네요,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 선생님! 선생님 잠시만요!
나는 왜 문학에 껄떡대는가 두번째
서른한살 채임의 변 : 그것은 정신이 행하는 자위행위다.
잠시 잠깐 문학에 대한 열병을 앓았던 때가 있었다. 불우한 유년과 기질적 병력조차도 운명일지 모른다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감당안되는 폭음과 일탈 또한 넘치는 예술적 감흥의 발로라 규정하고 으레 당연시하며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자 의무라 자진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노력엔 나태와 방종으로 일관하면서 왜 이 모양이냐 에 대한 답은 언제나 ‘나’보다는 내 ‘환경’이 문제라 생각했다. 알고보면 기질적 병력과 환경은 훼방자라기 보다는 내가 다하지 못한 노력에 대한 고마운 도피처에 가까웠다. 그럼 난 노력조차 하지 못 할 문학에 왜 껄떡댄 것일까. 어느 날이었던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조심스레 말을 건낸적이 있었다. “혹시 증상을 보아하니...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아무래도 맞는 거 같아서 말이지. 아는 처지끼리 모른체 하기가 그래서 꼭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행여 놀라지 않길 바라네만...”
지인의 한참된 설명 끝에 나는 문학에 대한 나의 욕망이 꿈이 아닌 질환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15세에 발병하나 늦은 나이에 발병되는 경우도 있으며 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자기객관화 결여로 인한 이상행동을 꾸준히 반복하고 다소의 과대망상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병을 일컫어 ‘중2병’ 이라 명하고 중2병환자들의 이상행동을 일컫어 ‘병신삽질’ 이라 명한다.
그렇다. 나는 중2병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문학에 대한 나의 욕망은 곧 넘치는 예술적 감흥을 해소할 매개로써의 선택이 아닌 중2병환자에게 나타나는 이상행동인 ‘병신삽질’에 다름아닌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다른것도 아닌 문학이라는 예술장르를 ‘병신삽질’의 이상행동으로 택한 것일까. 그것은 창조적 인간에 대한 동경과 텍스트에 대한 나의 믿음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문화산물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서로 양분되거나 그 둘의 역학반응과 함수관계로 인해 결정된다고 본다. 이게 뭔 개소리냐, 라고 묻는다면 좀 더 다른 형태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미지는 대중을 움직여 그룹을 형성하고 그안에 제도와 형식, 규율을 양산한다. 그 이미지는 지도계층, 혹은 지배계층에 의해 생성되고 그들, 이른 바 오피니언 리더들은 텍스트에 의해 형성된다. 올바른 철학을 가진 창조주체가 만든 텍스트만이 사회 문화의 선순환을 가져오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은 자명한 일. 자,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넘쳐나는 가짜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을 것인가, 텍스트를 읽고 창조하며 진짜 이미지를 생성할 것인가. 이것이 당시 나의 내적갈등에 대해서 나 자신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었으며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연히,
텍스트를 창조하며 이미지를 생성할 것. 이었다.
허나 나의 원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결국 나의 문학에 대한 욕망은 지적허영으로 가득한 자가 똥폼잡고자 제 몸에 휘감은 악세사리로 전락해버렸고 난 한권의 책보다 한잔의 술을 사랑하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버린지 오래다. 다만 그 안에 잠시 잠깐 맥박치던 심장만은 뜨거웠노라고, 변명처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도 텍스트를 위해 골방에서 돌머리를 쥐어잡고 자학하고 있을 이 땅의 일만이천 지망생들을 응원하며 시덥잖은 똥글에 마침표를 찍는 바이다. 오늘 밤은 좋은 무비나 한 편 감상하며 이루지 못한 나의 욕망들을 위안해야겠다. *오구라 나나가 나를 부른다. 또 다른 욕망을 찾아, 나는 가야겠다.
첫댓글 위트가 있네요 잘읽었습니다. 오구라 나낰ㅋㅋㅋ
오구라 나나가 모름직이, 쩝.
명배우라 생각합니다
다 비키세요. 전설의 사쿠야 유야를$&(@
이른 은퇴가 아쉽죠, 더 하고픈 말이 많다만 , 쿨럭;
이야 하하
음... 글을 읽을수록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릅니다. 마지막 오구라 나나에서 진정 가슴이 아파 숨을 쉴수가 없습니다. 아아..감동적인 글이였습니다. 중2병... 그토록 제가 찾고자했던 저의 병명 중2병... 아 전 중2병이였습니다. 저자신을 돌와보는 우물가의 자화상 같은 글이였습니다..
저의 본모습을 볼수 있는 거울이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이 글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신선했고, 그다음에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지금은 내 중2병이 어떤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미친듯이 궁금해집니다.
ㅎㅎㅎ어딘지 제 자신의 지적허영심을 잘 반영한 글인 것 같아요 그런데 교내에서 저런 식의 체벌이 가능했던 시기라면 연령대가 비슷할 거 같기도 하공 요즘은 저런 식으로 체벌 못 하지요. 정확하게 언제부터 체벌이 금지된 건지 잘 모르지만 그로 인해 중2병이 창궐한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ㅎ 마지막에 오구라 나나 ㅋ
책은 언제 돌려 주실건긴요.ㅎㅎ채임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