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올해 안에 써야 할 공무원 복지 포인트가 29만원이 남아 있다며
연말까지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말하고 출근을 했다.
난 아들이 켜 놓은 복지포인트 몰을 여기저기 뒤지며 뭘 사야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무디어진 부엌칼을 다시 살까?
겨울철에 달여 마실 인삼을 살까?
마당에 둘 예쁜 정원용품이 있나?"
사야할 물품이 있어서 쇼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모할 포인트가 있어서 써야하니 목적없는 항해처럼 몇 시간째 인터넷을 표류했다.
여기저기 헤매다니며 처음엔 건설적인 물건을 돌아 보는데
의외로 복지 몰이 대체로 비싸고 할인율이 거의 없어 갈등만 증폭시키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엇다.
어떤 건 남은 포인트 보다 비싸고,
어설프게 썼다가 짜투리 돈을 또 만들어 결국 포기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29만원 복지포인트가 290만원 쓰기보다 더 심각한 고민을 불러 왔다.
오후내내 인터넷 바다를 떠돌다 큰애 골프 비옷을 살까 싶어 골프사이트에 진입,
그만 골프 가방들도 훑어 보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옷가방이 낡아 꼬질해진 게 생각나고
라커에서 남의 멋진 가방보다 좀 허접해 보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자 이제 꼭 그걸 바꿔야 할 것 같아졌다.
아무리 검소함으로 당당해지려해도
'골프장에서도 내 품위에 맞는 가방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나?'
하고 합리화까지 되며 유명 해외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조차 들었다.
그게 사단의 시작이다.
아들이
"마음에 드시면 사세요~"
했는데
"아빠가 비싸게 샀다고 한 말씀 하실 지 모르니 오시면 사야겠다. "
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들뜬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
"여보! 나 골프 가방 세트를 가브리엘이 남긴 포인트로 사려고...근데 좀 비싸."
"얼만데?"
해외 유명상표니 쌀 리가 없다.
여타 국내 상표보다 세 배는 되었다.
"진짜 비싸다. 백 만원이 넘잖아."
"그래도 나 그거 보고 나니 딴 게 전혀 눈에 안 차.
내 골프백세트가 이제 완전 후져보여서 이제 다시는 못 들고 다닐 것 같아.그거 살래. "
"그래도 너무 비싸다. "
"여보 가격을 말하는 게 아니고 마음에 든다구~"
그때쯤 난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꾹 참고 다시 인터넷을 켜고 같은 상품을 싸게 파는 곳이 있는지 둘러 보았다.
복지몰보다 조금 더 싸게 파는 곳이 있긴 했는데 그럼 복지포인트는?
'내가 평소에 비싼 것들을 좋아 하지도 않고
모처럼 마음에 드는 걸 사고 싶다는데 저래도 돼?'
그러나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얻어야 상황이 종료된다고 믿는다.
"여보! 나 너무 불쌍해.
맘에 드는 골프가방세트가 있어도 백 만원이 넘어서 살 수가 없네.
그것도 십 년 넘게 쓸 건데.... 진짜 너무 가난한가봐. "
혼잣말처럼 투덜거리자 그가 웃으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버티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건데도 이젠 마치 자존심이 걸린 것처럼 기분이 나빠졌다.
이제 내 자존심이 걸렸다.
'내가 백만원짜리 물건도 흔쾌히 못 사주는 남편과 산단 말이야?'
게다가 너무 마음에 드니 당장 안사면 그만 없어질 것만 같다.
남편은 내 초조함을 모른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여보~! 가방 사달라고 조르는 아내때문에 속 답답하겠다.
그래도 난 맘에 드니 할 수 없네.
아무래도 당신이 사 줘야 할 것 같아. "
"여보~ 나 아는 사람이 싸게 살 수 있다하니 거기서 주문해보자!"
그는 웃으며 한마디 하고 출근을 했다.
'진짜 그거 맘에 드는데.....'
어느 날 그 가방 사진이 매진 되면 어쩌지 싶어 걱정이다.
'내 쌈짓돈으로라도 살까?'
갈등 중인데 그래도 그를 설득해서 얻어내고 싶다.
머잖아 내 생일도 돌아 오고 또 메리크리스마스도 있긴 하다.
그때까지 남아 있기를~
없어지면? 정말 마음 상할 것 같은데.....
그 야단을 친 며칠후..
병원에 들렀다.
짜잔~골프백이 도착해 있었다.
난 못본 척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다.
속으론 알면서 모르는 척 그가 맘껏 생색을 내게 두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여니 현관앞에 골프백이 우뚝 서 있다.
그런데...으앙~
색깔이 다르다.
내가 본 건 보라에 핑크 테두리였는데
배달되어 온 건 와인색에 베이지 테두리다.
돌려 보내고 싶은데 그가 너무 신나서 포장지를 다 찢어 놓았다.
끄응~ 난 백프로 마음에 들지도 않은 가방을 마지 못해 사용해야만 한다.
앞으로 십년!
그러나 사연 가득한 이 골프가방을 100% 좋아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