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플렛포옴을 지나 아무런 표정없이 우두커니 서서 개찰을 하는 역무원 곁을 역시 아무 표정없이 지나고....
산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특이한 그 3층 건물
택시를 타고 검문소를 지나 매표소에 도착할 무렵 걸려온 한통의 전화
갈등과 고민이 교차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산으로 갈 것인가? 도움을 요청하는 곳을 갈 것인가?
아무래도 도움을 요청하는 곳으로 가야겠다
그래........... 가자~~~~
청량리행 무궁화호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 기차는 한동안 창밖의 풍광을 가두어 버렸다
답답하다
열차 안에 침묵이 흐르고 멍하니 캄캄한 창밖만을 주시한다.
빛이 나타나기를...
또아리굴
위로 지나온 철길이 보인다
낙엽이 단풍이 눈처럼 바람을 타고 계곡과 골짜기의 집위로 날린다
죽령역......
그 집은 그대로 있다.
단성역
역시 한 사람의 승객이 그 황량한 플렛포옴을 걷고 있다
역시 한 사람의 역무원
바람이 일고 있다
도로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길을 걷는다.
노란 단풍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찬바람은 손을 주머니를 찾게 하고...
가슴속까지 파고들어 걷는 걸음이 자꾸만 종종걸음이 된다
언덕을 오르고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내려다 보이는 충주호와 구단양의 모습들....
노선버스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걷자....
기암괴석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골골의 단풍들...
걸음이 빨라진다....
동료와의 만남
그리고 차디찬 소주잔 기울이며 안부를 묻고 일정을 의논한다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 까?
충주호반의 골짜기에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간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10월 28일
낯선 잠자리의 그 기분에 일찍 잠을 깼다.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귀를 에는 듯한 찬바람
아침 햇살을 받은 호수는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마치 목욕탕처럼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이 아침에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주안고 서 있다
10시
늦은 아침으로 시작된 일주일간의 일정
청풍문화재 단지로 가는 길....
굽이 굽이 돌아가는 골짜기마다 곱게 피어난 단풍의 절정
93년 겨울이었던가
스키캠프를 마치고 후배들과 들렀던 곳
주차장에 즐비한 버스들과 고급 승용차들
양지바른 곳에 둘러앉아 맛난 먹거리를 펼쳐놓고 특유한 리듬의 그 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추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산수유 열매를 한 주머니 가득 따고선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얼큰한 얼굴로 버스를 향하시는 할머니
버스들이 속속 도착하고 아이들을 마중한다
아이들만의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단지 입구를 메워놓고 손에 손에 들고있는 비닐 봉투 속의 그 점심거리...
그리곤 자기들만의 친구들끼리 손을 잡고 뿔뿔히 흩어져 그 김밥 도시락을 꺼내놓고 .. 김밥에.. 초밥에... 흰밥 위에 올려진 그 납작해진 계란....
나무 밑에 앉아있는 아이... 바위 위에 앉아있는 아이... 비석 위에 걸터앉은 아이... 친구의 입에 자기 김밥을 먹여주는 아이... 서서,, 걸어다니며 먹는 아이..
머리카락 붙잡고 싸우는 아이... 우는 아이.. 여학생 머리 잡아 당기고 도망가는 남학생...작은 돌 던지곤 모른 척 돌아서 있는 아이...
여학생에게 맞아 코피터진 남학생
그 먹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즐겁고 웃음이 난다
팔짱을 끼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내 앞에 불쑥 뛰어나와 김밥 한 덩이를 입에 넣어주고는 다시 뛰어 가는 꼬마...
그 모습이 참 좋다
입안 가득 남아있는 그 맛!
아이들의 그 김밥을 하나 집어먹는 할아버지, 할머니....
"너네들... 어디서 왔냐? 어디 김밥하나 먹어볼까?"
장회나루터
흙먼지 날리는 그 넓은 주차장에 수십대의 버스들이 있고 그 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장사꾼의 승용차
세워지는 버스마다 몸에 좋다는 정체불명의 약을 팔고 있다
술기운이 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3,4학년 420여명 그리고 20대의 젊은 청춘들이 그 사이를 헤매고 있다.
그 아이들....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다 하여 이 늙은(?)은 청춘을 몹시도 따돌린다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어인일인지
줄을 서보라 하니 이어지는 그 꾸불꾸불하고 희얀한 줄.....
내 시각에... 정서에 익어버린 그 반듯한 줄은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줄에 묻혀버렸다
"어린이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께 양보해주세요...."
"어린이 여러분.. 외국 관광객들에게 양보 좀 해주세요..."
그 안내방송에 아이들은 두 시간을 찬바람을 맞으며.. 흙먼지 마시며 기다려야 했다.
"왜???? 어린이가 양보해야 해요???"
"........................"
찬바람 가득한 나루터를 떠난 유람선은 산머너로 노을이 지고 있는 호수를 거슬러 사연이 깃든 기암절벽과 단풍들 사이를 누빈다
아이들....
그 두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생겨났던 그 마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씁씁한 마음 하나....
10월 29일
이틀째 아침
목소리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너무도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라 그런 지 아니면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서 시작한 탓인지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하여야 하는 일...
하루 종일 양지바른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우는 아이 달래면서... 싸우는 아이 말리면서....
집 떠난 지 겨우 하루만에 집에 가고 싶다고... 엄마보고 싶다고 공중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아이....
그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그 기다림의 줄....
10월 30일
넓은 소파에 신발 벗은 채 두다리 쭉 펴고 드러누워서 팔짱을 끼고 목을 잔뜩 웅크린 채
밤을 새웠다.
온갖 폼으로 잠을 자는 아이들
문밖으로 몸의 반이나 나온 아이... 이불을 둘둘말고 있는 아이... 친구의 배를 베고 있는 아이.... 거꾸로 자고 있는 아이... 엎어져 자고 있는 아이.... 잠꼬대하는 아이.. 온방을 몸부림으로 헤집고 다니는 아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 조금만 더 자게 해달라는 아이...
웃기는 모습이다..
귀여운 모습이다...
깨워야 하는 데....
그 꼬마들이 떠나고 또 다른 아이들이 들어온다
조금은 몸집이 더 큰 아이들....
어른의 몸집을 가진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유별나게 몸집이 컷다.
좁은 운동장에 수많은 아이들이 뒤엉켜 있고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육중한 몸체의 버스들...
떠나는 그 순간에 잠시 내 앞으로 몰려나와 그 작은 손으로 악수를 건넨다
그 작은 손으로....
버스에 오른 아이들이 창가에 얼굴을 대고 손을 흔든다
우는 아이도 있다
노을이 지는 냇가 그리고 호수....
3여년전....여름...
섬진강을 따라가는 여행길에서의 한 만남을 기억한다.
한 시인과의 만남...
나처럼 키가 작고 나처럼 적당히 나온 배......
동안의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그 시인을 기억한다....
시인 김용택............
팔짱을 끼고 지는 노을을 바라다 본다.
말없이.....
10월 31일....
다시 날씨가 풀렸다
산을 오르는 길
두 시간 가까이 걸어서 오른 작은 산... 편안한 산...
적성비와 적성산성...
그 시대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하는 사이 햇살은 따뜻하게 아이들의 등을 비추고 있다.
눈이 부신 태양이 있는 작은 잔디밭이다.
한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다.
그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을 보고있는 단발머리의 한 여학생의 눈엔 눈물이 고여있다.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며 놀린다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고 한다... 같이 벌을 서보라고 하니 나란히 서서 손을 들어 올린다
왜 서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서고 싶다고 했다,.친구가 혼자 벌을 서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같이 서고 싶다고 했다
부끄러운 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곱디고운 마음이다
얼굴처럼...
친구들의 수군거림과 놀림은 그 아이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은 듯 했다
햇살처럼 기분 좋은 두 사람의 마음이 보였다.
내 어리석은 그 농담과 행동이 그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았다
이 부끄러운 놈이다
두 아이의 손을 잡게하고 멀리 뒤에서 걸어오게 했다.
일행들과 떨어져서 손을 잡고서 단풍나무 사이로 난 신작로를 걸어오는 그 두 사람...
참으로 아름답다
"소나기"...
단발머리의 그 소녀와 까까머리의 그 소년...
그 소설 속의 그 두 아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아이들이 다가와 그들의 용돈으로 사는 과자며 아이스크림이며 쥐포구이며 껌이며 사탕이며..... 하나씩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하며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