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론을 잘못 올렸습니다. 어제가 마르코 축일인줄 알았는데,
오늘이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이네요. 그래서 수요일 복음 묵상을 올립니다.
어제 현아 덕분에 표를 구해서 ‘파묘’를 봤습니다.
중국사람들은 파묘에 나오는 한국의 무속정서를 이해할까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혀 웃을 포인트가 아닌 곳에서 웃는 장면이 몇몇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에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입니다.
원한과 억울함 분노 등등의 이유로 인간을 괴롭힙니다.
파묘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민족적 차원의 악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귀신에 의한 정의 실현,
악령에 의한 악인의 처벌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바랬던 것은 귀신과 같은 힘을 가진 정의실현이었습니다.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력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하느님은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초능력의 힘으로 나쁜 이를 벌하는 귀신과 같은 능력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해 애쓰시는 분입니다.
오늘 나의 구원을 위해서도 애쓰고 계실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