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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기술부가 해체되어야 했는가?
격동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 지옥 같았던 23일 간의 국회의사당 앞 시위 -
과우회 국립과천과학관
과우봉사단 이수웅
<박근혜 대통령당선인님께>
과학기술인의 명예회복과 아울러 숙원을 해결해 주신 박근혜 대통령당선
인에게 축하와 함께 머리 숙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2013년 1월 15일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를 보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신설로 R&D 등 중요기능이 제자리를 찾게 해 주시는 등 국가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에 힘입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후배 공직자들은 더욱 열심히 직무에 임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 5년을 회고하면서>
41년 역사의 과학기술부가 해체된 지 오늘로서 만 5년이 되었다.
그 길고 긴 아픈 세월이 지나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야후보가 모두 과학기술부 부활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인정했고, 공약사항으로 국민과 약속을 했던 사항이 박근혜 대통령당선인께서 1월중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정부조직개편안”을 보면서 실로 감개가 무량하였다. 과학기술부 해체에 반대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본인에게 특히 충격이 컸다. 모든 과학기술인 그리고 그때 고생했던 동지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근자에 이르러 행정학회의 발제문에서도 행정조직의 개편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①국가발전의 효과성, ②행정업무의 효율성, ③국민의 생활 만족도의 증가 등 타당한 논리에 의거 신중하게 접근할 사항이라는 점이 언급된 바 있다.
행정조직 개편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매몰비용”이다. 기존의 부처조직에 수술을 가하는 것은 “기존에 축적되어 온 조직자산의 근간을 흔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인수위원회에서 과학기술부를 해체하여 유실된 매몰비용과 과학기술력 파손 등 엄청난 국가손실 보전은 항후 어떻게 할 것인가?
5년간 집권기 과학기술부 해체로 인한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지향점 상실, 중소기업 기술낙후 등 국가적 손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들에게 소상히 보고하고 떠나야 하는 것 아닌지?
이 정권이 쇠퇴하기까지 5년의 긴 세월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 간 지금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당선인께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는 대국민 공약과 함께 발표된 정부조직개편안이 인수위원회에서 추진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통치권자가 중앙행정부처를 해체하고 또 복원하는 것이 정권적 차원에서 역사를 통해 간혹 있어온 일이긴 하지만, 이는 정부구성의 스케일이나 국정기조에 따라 통치권자의 안목에서 크게 좌우될 것이기 때문에 많은 기대도 해 본다.
과학기술부가 노무현정부에서는 부총리 부처가 되어 혁신본부를 두고, 전 부처의 과학기술R&D부문을 종합 조정하였고,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첨단기술부문에서부터 기초과학부문에 이르기까지 종합조정력(과학기술컨트롤타워 역할)으로 국가 R&D비전과 전략 등을 제시해 왔다. 그런데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모범적인 행정체제로 국내외를 통해 평가를 받아온 과학기술부가 왜 하루아침에 이명박 인수위원회에서 해체수순을 받게 된 것인지, 어느 누구의 짓인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점이 매우 궁금하고 또한 알고 싶다.
우리 국민과 과학기술인은 그때 그 순간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직시하며 5년을 살아왔다.
다음 글은 필자가 5년 전 직접 참여하고 체험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자료들이다. 과학기술부가 망가져가는 그 역사적 순간들의 실체를 증언코자 기술했다. 그리고 그 숱한 세월 속에서 다시금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에 의해 비극적인 순간에서 소생하는 “빛과 그림자”같은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암울했던 그간의 느낌을 중심으로 쓴 글임을 밝혀 둔다.
2007년 11월 1일
10시 10분 KIST 존슨강당에서 전직 과학기술인 그리고 정치인, 연구기관장 및 간부들이 과학기술육성ㆍ발전에 대한 차기대통령후보의 과학기술비전과 통치철학 등을 듣기위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였다.
본인도 과학기술부 전직동료들과 함께 그곳 중앙 통로 쪽에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다들 공통된 기대와 바람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후보를 기다렸다.
나는 그 분(대통령후보 이명박)의 공약강연을 경청했고, 지금은 지워버렸지만 핸드폰으로 강연모습을 찍어 고이 간직했다. 그리고 퇴장 시 나는 운 좋게 통로근처에서 그분과 악수할 기회가 있어서 “부디 건강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처음 한 악수였지만 손이 크고 손마디가 굵게 느껴졌다. 당시 생각으로는 이분이면 지금 장관이 부총리 급으로 되어 있는 과학기술부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는 확신 비슷한 희망을 갖고 KIST에서 나왔다. 1시간 동안 과학기술에 관한 공약과 과학기술 정책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뿌듯한 기분이었다. 어찌 이런 느낌이 나 만이었겠는가?
참석자 대부분 이 같은 느낌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신문방송은 연일 후보자들의 정책발표로 2007년의 가을이 뜨겁게 달구어진 선거유세전으로 돌입하였다. 삽시간에 대망의 12월 19일 선거일이 닥쳤으며, 선거결과는 오후 6시 투표종료 즉시 예상발표가 나왔다. 오후 8시경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품격 있고 번영하는 선진사회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과학 기술인들이 이명박 정부탄생에 큰 힘을 모아주었다고 본다. 곧바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족되었다는 신문보도가 나왔다.(부위원장에 김형오 의원이 지명되었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은 그 기대치가 엄청났다. 그리고 인수위원회에서의 활동이 언론보도를 통해 매일 보도되었는데, 때로는 국민의 갈채를 받기도 했고, 때로는 걱정이 앞서는 결정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가 저물었다.
2008년 1월 8일 10시
신년인사회가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과학기술인 500명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과우회에서도 12명이 참석하였는데 과학기술부 김우식, 오명, 최순달 전장관 등 수많은 전직주요인사가 모였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당선인이 참석치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ㆍㆍㆍ
2008년 1월 1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의 과학기술부 해체결정! 왜 일가?
1월 11일 과우회 신년인사회 첫 정기모임이 팔레스호텔 1층 대연회장에서 11시에 개최되었다. 10시 30분경 과총회장(채영복 전 과학기술부장관)께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다녀온 결과내용을 발표했다.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께서는 매우 낙담하신 표정으로 “과학기술부 해체”라는 신년사를 무겁게 하셨다. 모두들 큰 충격에 웅성웅성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과학기술부의 위상이나 기능이 더 달라지고 확대될 것으로 생각을 많이 하였다. 많은 기대도 했었고ㆍㆍㆍ
본인은 즉시 이광영(암협회 부회장)씨를 찾아서 정진익 교수와 함께 과학기술부 해체반대 성명서를 작성했고, 12시경 동 성명서를 이승구 과우회부회장께서 낭독,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로 보냈다.(이 때만 해도 “설마 이러다가 말겠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께서는 2007년 11월1일 KIST에서 정책발표 시 “과학기술발전만이 한국 미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말씀과 “당선 시 적극지원을 약속하신 것”을 많은 과학기술인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기에 인수위원회의 결정에 정말 허망함과 실의를 금치 못하였다. 과학기술부에 근무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상상을 못 했으리라.
1967년 4월 21일 정부조직법에 설치근거를 두고 탄생한 과학기술처는 그동안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엄청난 기여를 한 부처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ㆍㆍㆍ
후진국 탈피를 위해 직ㆍ간접적인 과학기술정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그 근본이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과학입국정책에 기초하여 과학정책을 다년간 펄쳐온 결과다」
○ 연구인력 및 대학교수요원 양성ㆍ확충ㆍ공급 및 고급인력 저변확대 - 인력고급화에 크게 기여(과학기술원 석사졸업자 군 면제 등)
- 산업인력 육성ㆍ공급에 기여(산업인력 군 면제)
- 연구비 및 연구시설기자재의 원활화(감세 등) 등,
- 산업계연구소 발족 및 확충, 특히 민간연구소 설립추진에 기여
○ 국가선진화 궤도진입
- 과학기술력 향상 등으로 선진기술개발 체제구축
- 산업기술개발에 이르기까지 분야별ㆍ단계별 육성발전, 기술 확산
- 원자력안전규제 확보로 국민의 전력안전 공급 확충 및 이용다원화 촉진
(국민생활 향상 도모)
- 출연연구기관의 기초과학기술력 향상(기초, 응용, 산업화에 육성 기여)
○ 과학기술력 향상으로 경제기틀 마련 주도
- IT, ET, NT 등 첨단전략산업 육성 및 항공우주산업 특히 IT의 기초 기틀 마련
- 미래성장 동력산업 추진 등 기반 확충
○ 과학기술컨트롤타워 역할 등 크게 기여
- 첨단기술 개발 보급 등
이런 업적을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크게 기여해 오던 정부행정부처가 하루아침에 강경한 수단과 제재로 분해ㆍ해체 되는 등 개편이 강행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얻게 되는 국가의 실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2008년 1월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정부조직을 18부 4처를 13부 2처로 축소한다고 발표하였다.
2008년 1월 18일
정부조직법개정 공청회가 민주당 손학규 대표주관으로 국회의사당 귀빈식당에서 개최되었다.(본인 외 과우회 회원 다수가 참석)
엄청난 정부조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많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갑자기 모든 기존 상황들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혼미 속에서 교수형 당하는 죄수처럼 심판의 시계에 동공을 고정시켰고, 우리는 벙어리가 되었다.
며칠 후 과우회 연락을 받고 2008년 1월 21일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것이 직접 과학기술부 해체반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1인 시위를 위해 경복궁역에서 하차 삼청동 감사원 가는 길로 약 1.5㎞쯤 걸어가며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정부시책이나 방침에 반대하거나 선동을 해보지 못한 본인으로서는 인수위원회 도착시간이 20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엄청난 분노와 고뇌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기면서 가다보니ㆍㆍㆍ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는 간판이 결려있고, 그 정문 앞에는 경찰과 바리케이드 등 삼엄한 경비로 진을 치고 있었다. 본인은 “과학기술부 해체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좌우로 또는 상하로 흔들며 계속 고함을 쳤다. 그 때 KBS TV 기자가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왜 반대시위를 하느냐고 취재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본인은,
첫째, 과학기술부 존립의 필요성, 그간의 정부기능과 역할을 피력하고,
둘째, 해체 시 국가 미래에 미칠 중대한 우려 등을 호소했다.
다음 날 KBS2 시사만평에서 TV를 본 사람들은 할 말 잘하더라는 평이었다.
이때의 추위는 엄청나서 영하 10도 정도였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가 넘었다. 2시간 서서 있기가 정말 힘들었다.(군대에서도 체험하지 못했던ㆍㆍㆍ)
2008년 1월 22일
국회의사당 정문으로 옮겨 1인 시위를 계속했다. 오전 10시부터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이날따라 진눈개비가 몹시 날리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여의도의 겨울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하로 느껴졌고, 발도 얼고 손도 시렸다. 엄청나게 매서운 추운 날씨로 기억된다.
고희(古稀)를 막 넘은 나이에 왜 이래야 하느냐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과학기술부 퇴직공무원이라는 사실 말고도 이 길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분이 대충 6~7명 정도이었는데 본인과 최응태, 김홍석, 김영식.이세용, 이종옥, 이상덕, 유범식 회원 등으로 기억되었다. (그 외에도 한두 분 더 잠시 참여한 것 같다.)
그리고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직원 2명도 매일 참여하였으며, 그 분들도 우리 팀과는 별도로 1인 시위를 하였다.
바로 이 팀들이 지금 과천과학관 봉사활동에도 주축을 이루고 있고 현재도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다.
2008년 1월 23일
이날도 국회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공무원 노조원(약 60여명)이 나와서 집단으로 시위하다가 국회경비대로 하여금 강제 진압되는 등 삼엄한 경비로 오후 내내 혼란스러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인 시위는 시위허가 없이 가능하나 집단시위는 허가사항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1인 시위대는 계속 자리를 지켰고 과학기술부 노조위원장도 나와서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그때 우리들의 대화는 “과학기술부는 어떤 운명에 처할 까? 정말 해체될 까? 라는 독백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음날도 1인 시위는 계속되었다. 허허벌판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는 겨울 한파 속에 눈보라를 직접 맞는 곳이라 추위가 제일 괴로웠다. 2시간 이상 서 있기가 힘들 정도이었다.
2008년 1월 24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국회공청회 개최>
이날은 아침부터 과우회회원인 김홍석, 최응태, 이세용, 이종옥, 김영식.이수웅 등 6명이 교대로 피켓을 들고 시위에 임했고, 여러 사람이 참여하니 잠시나마 교대로 몸을 녹일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느꼈다.
오후 2시부터 국회의사당 귀빈식당에서 공청회가 개최되었고 우리들은 전원 참석하였다. 참석자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어서 본인은 과학기술부 해체반대의 이유와 R&D 사업이 지식경제부로 통합될 경우 국내업체지원 등으로 WTO제소 문제 등 국력에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고 과학기술력 분산에 따른 핵심기술(원자력분야) 등 선진기술개발의 체계적 주체성이 상실될 우려가 높아 국가장래를 위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들은 과학기술부 해체반대에 나서, 현재 과학기술부 퇴직자들이 비장한 마음으로 국회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달했다. 오늘 공청회가 폭발력을 갖는 뜻있는 모임이 되어 주기를 간곡히 당부했다.
이날 참석했던 분 중에서는 황경호 전 국립중앙과학관 관장(1급)과 변명섭 과우회 감사께서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셨다.
2008년 1월 25일
국회의사당 정문시위의 고통은 마음고생 뿐 만 아니라 추위에 떨어야 했다. 오늘 따라 여의도의 겨울날씨는 너무나 매섭다. 허허벌판인 여의도의 매서운 겨울 칼바람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내의와 여러 벌의 옷을 끼어 입어도 소용이 없었다.
오늘 따라 최응태 회원과 본인 단 둘이서 1시간씩 교대로 서 있어야 했기에 너무 힘든 날이었다. 춥고 힘들 때에는 눈에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욕만 해도 추위가 덜한 것 같았다.
과학기술부에서 퇴직한 분들이나 현재 재직하고 있는 분들이 어쩌면 코 빼기도 안 보이는지ㆍㆍㆍ(그들을 생각하며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넋두리도 생각해 보았다.
오후 되면서 눈보라치고 추운 날씨인데도 국회의사당 정문까지 방문 격려해주었던 민태식 회원, 류우식 회원에게 본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1인 시위는 계속되었다.
2008년 1월 28일
임시국회가 개최되는 날이다. 이날은 우리들 1인 시위 팀에 중대한 생사가 걸린 날이기도 하였다. 오늘은 “정부조직법 개정요구”에 따라 오후 2시부터 국회가 개최된다고 해서 우리들은 점심시간도 단축해 가면서 긴장하며 최선을 다했다. 최응태 회원은 전단을 나누어주고 본인과 이세용 회원은 피켓을 따로 따로 쥐고 국회의원 정문통과 시 차도까지 나가 피켓을 흔들면서 과학기술부 해체반대라고 목청껏 고함을 지르기를 수천 번이나 하였다.
다행히도 국회의사당 안쪽에 봉고차를 대기시켜 히터를 틀어서 잠시나마 교대하며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던 과학기술부 총무과 직원들께 감사하며 간혹 선배들 고생한다고 점심을 사 주기도 하였다. 그 다음날도 시위는 계속되고 ㆍㆍㆍ
2008년 1월 3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방문했던 전직 장관님들>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본인과 이상덕 회원 둘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오후에 전직 과학기술부 장관님 여섯 분이 인수위원회를 방문하신다기에 그 쪽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달려가 다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날씨는 영하 13℃로서 엄청나게 추웠다.
잠시 후 오후 2시경 회색 봉고차가 정문으로 들어오는데 전직 장관님들이 타고 계셨고, 우리들이 시위하는 것도 보셨다. 울컥 눈물이 나오는데 정말 꿈에도 이러한 상봉이 있으리라고 누가 예측이나 하였겠는가? 서글프고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옛날 같으면 존엄과 국가관으로 장관님들과 조직원 간에 존경과 신뢰 속에서 엄숙하게 국사를 논의하는 특수 관계자들이 만나야하는 장소가 인수위원회 정문이란 말인가?
인수위원회에 파견 나가 있던 간부들도 정문 앞에 나와 있었다. 날씨 탓인지 장시간 밖에서 있어서인지 얼굴들이 창백하고 긴장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전직 장관님들 오시는데 인수위원회 측에서 결례라도 하지 않을 가하는 노파심도 있었다. 그리고 기대도 했었다. 차가 인수위원회 정문을 통과하자 곧바로 하차하여 인수위원회 본관에 있는 위원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부재라는 이유로 입장이 저지되었고 그 곳에서 10분 이상 서서 계시다가 별관(행정동)에 잠시 들리시고 되돌아 가셔야만 했다.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본인은 이러한 숙명적 장면을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본인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계속했고, 이상덕 회원은 전단을 일일이 배포(인수위원회 직원 들 중식시간 출입 시 전단을 손에 쥐어 주었다.)하였다. 과학기술부 해체는 국가장래를 불행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2월 1일
오늘도 계속된 1인 피켓 시위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작되었고, 외로운 피켓시위는 계속되었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농촌진흥청에서는 10일 전부터 여의도공원 옆 운동장에 50여대의 버스로 상경해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시위공무원들도 몇 백 명이 되는 듯 꽹과리와 북을 치며 그 함성이 여의도를 떠나가도록 외쳐댔으니 그 울부짖음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의사당 정문 부근에도 길가에 천막을 쳐놓고 농촌진흥청 해체반대, 출연기관화 반대라는 슬로건을 붙여두고 나름대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며 반대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과학기술부 해체반대캠페인은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서 본인은 과학기술부 모 간부가 왔기에 우리도 장관님께서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멍석(돗자리)이라도 깔고 분명한 반대 입장의 성명서라도 발표해 주시면 좋겠다고 건의 했지만 전달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심지어 과우회 전직간부급공무원으로는 박승덕 회장 외에는 보질 못했다. 그래도 1인 시위는 계속되었다.
2008년 2월 4일
국회의사당 정문 시위는 날이 갈수록 과학기술부 존립이 어려워져가는 공기여서 분하고 억울한 생각으로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대로 접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영하의 추위 속에서 본인과 최응태, 이상덕 회원이 가세하여 1인 시위에 박차를 가했다.
유유히 흐르는 역사 앞에 너와 나, 우리 모두는 벌거벗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꼭 받으리라 확신한다. 세월의 시간은 오늘의 우리들을 잊지 않으리라.
어떤 것이 애국의 길인지를ㆍㆍㆍ
국회의사당 정문 시위를 하면서 많은 의문을 안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조직은 대단히 중요하고 그 비중이 크게는 국민의 삶의 질에서부터 국가흥망과 관계된다고 본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1년이고 2년이고 직접 국가를 운영해 보다가 통치권 차원에서 과학기술부가 존립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때 정비하여도 되는 일이고 그 당위성에 대한 올바른 판단으로 합법적인 민주절차에 의해 실시했다면 과학기술부 현직 또는 퇴직공무원들도 국가발전을 위한 일로 인식하여 동의하지 않았을 까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누구누구가 주동이 되었고, 후일 듣건대 아무개도 정부조직 기초골격에 참여했다는 등 소문에 소문이 무성했다. ㆍㆍㆍ믿거나 말거나ㆍㆍㆍ
여성부도 해체하고 통일부도 해체, 외교통상부로 합친다고 했는데 그 부처들은 현재도 존립하고 있으니 어찌된 연유인지ㆍㆍㆍ
2008년 2월 8일
이날도 우리 동료들은 맥없는 뉴스를 들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서 있었다. 구정 이틀째 되는 날 여ㆍ야는 12일까지 정부조직법 통과를 위한 협의내용이, 통일부는 원위치 존립 등으로 잘 되고 있다는 것과 기타 부처는 검토가 희망적이라고 하지만 낙관할 수 없고, 과학기술부는 교육부와 통합될 것이라는 저녁뉴스가 나왔다.
과학기술부 해체의 심각성은 정치권에서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이며,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 안하는 듯 아리송했다ㆍㆍㆍ
2008년 2월 11일
오늘도 여의도의 겨울 추위는 살을 에는 듯 추웠고, 우리들은 추위와의 전쟁을 하면서 간절한 바람 속에 많은 과학기술인의 뜻이 이룩되리라 믿어왔다. 그런데 오늘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신당과 한나라당이 협상하는데 통일부는 존치시키고, 나머지 부처는 원안대로 축소 또는 폐지시킨다는 방침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정말로 실망스럽고, 맥이 풀리는 뉴스들이었다.
2008년 2월 20일
오늘따라 매서운 칼 추위는 여의도를 강타했고 우리들을 더 춥게 했다.
오후 국회에서는 신당과 한나라당 협의를 통해 “정부조직법개정”방향에서 15부 2처로 합의 도출되었다고 했다.
(오늘은 과학기술부 후배들도 함께 나와 열심히 했고, 가슴에 젖어 내리는 눈물의 해단식을 하였다. 사나이의 눈물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 비통함을ㆍㆍㆍ ) 가거라. 세월아! 기다리마. 너의 모습들을
※ 과학기술부의 일부 기능은 지식경제부 그리고 나머지는 교육부로, 결국 교육과학부로 명칭을 바꾸어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고 말았다.
2008년 3월 1일
실질적 통합과 인력 배치에 따른 제2차관에 과학기술부혁신본부장을 유임시켰고, 농촌진흥청이나 여성부, 통일부는 건재했는데, 왜 건재했는지?
과거 과학기술처나 과학기술부가 어떻게 지도층에 인식되었기에(어떻게 과학기술정책을 이끌어 왔기에) 해체ㆍ흡수ㆍ통합된 것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 전직 장ㆍ차관님들이나 실ㆍ국장들께서는 말문을 닫고 계신다.
이날 이후 국회에서 임시국회나 정기국회 때 대정부 질의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질의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교육과학기술부 자체인사에서도 혼합시키려 노력하는 것 같이 보였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교육과학기술부(전 과학기술부 소속)직원을 만나 만약 다음 정권에서 과학기술부를 다시 부활시킨다면?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럴 턱도 없고ㆍㆍㆍ .
과학기능은 묻혀갔지만 현 교육과학기술부는 승진 등 조직의 대형화(지방조직)가 오히려 개인의 활성화로 연계되어 좋은 점이 많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총총히 사라진다.
<끝내면서>
2008년 1, 2월 겨울추위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실의와 분노를 가슴에 묻고, 지난 23일간의 국회의사당 및 인수위원회 시위에 참여했던 몇몇 동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많고 정의를 위해 투쟁해 주신 현 과우회 과천과학관 봉사대원에 대하여 삼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 결속되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자는 말씀을 아울러 드린다.
그 후 2008년 4월 9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낙선했다. 당시 국민들은 현 정부에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 까? 우리들은 다 같이 국가장래를 위한 과학기술인으로서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앞으로 과학기술의 육성발전과 번영을 위해 사려 깊은 반성과 성찰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바람이 있다면 MB정부에서는 2년여 통치권적 정부운영의 경험을 통해서 과학기술부의 기능 재창출로 선진과학기술 입국의 자립기반 확충 등 새로운 혁신적 조치가 이루어짐이 어떠한지 감히 건의 드리고자 한다.
<제언>
그 동안 이 글을 쓰면서 마무리까지 헌신적으로 감수해주셨던 이봉재 전
국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신종오 선생님께도 감수에 감사의 말씀을 드
립니다.
2008년 2월 25일 작성
<과학기술 40년사를 읽어보자>
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어!
과학 기술인들이 1967년 4월 21일부터 2008년 2월 29일까지 강제해체ㆍ편
입 시점까지 국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꿈
을 안고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그 꿈의 실현이 천직인양 사력을 다해 왔는
지를 통ㆍ폐합 당시에 고려하고 있었는가? 그대들이어!
※ 그동안 국회의사당 앞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1인 시위로 고생했던
동지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참여인사 : 최응태, 이상덕, 이수웅, 김홍석, 김영식.이종옥, 이세용, 유범식 등)
첫댓글 다시올렸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수웅 이시님이 과학기술부 해체를 반대했던 정신과 집념어린 부활노력이 오늘날 미래창조과학부의 부활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는 신설이라고 하는데 제가 부활이라고 하는것은, 이름이 뭘로 바뀌든 1967년도에 과학기술처 를 발족시켰던 취지와 정신, 그리고 과학기룰진흥법 의 정신과 취지는 일관되게 지금으로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산선생 수고하셨습니다.
과학기술부 독립운동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하며 그 때 함께 참여치 못했던 죄스러움으로 얼굴 들기가 부끄럽습니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기억력 좋습니다. 눈보라치던 강추위에 1인시위 했던 기억이 눈에선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