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04월27일(토요일) 강화도 [강화평화전망대&작성 돈대&구등곶 돈대&광암 돈대&인화돈대] 탐방일정 탐방지 : 강화도 [강화평화전망대&작성 돈대&구등곶 돈대&광암 돈대&인화돈대] 탐방코스: [강화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0.5km)~강화 평화전망대~(4.0km)~작성 돈대~(0.7km)~구등곶 돈대~(5.0km)~광암 돈대~(3.0km)~인화돈대~(0.8km)~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 (14.0km) 탐방일 : 2024년04월27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47분 소요) 07:00~07:20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으로 가서 합정역 6번 출구로 나옴 [20분 소요] 07:20~07:30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07:30~09:18 30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 [1시간 48분, 37개 정류장 이동] 09:18~09:30 강화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26번 버스 승차 대기 09:30~09:58 26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강화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8분, 22개 정류장 이동] * 09:58~10:08 인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 있는 강화 평화전망대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인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 번지에 있는 강화 평화전망대로 이동 * 10:08~11:00 강화 평화전망대 탐방 후 휴식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 양사면 제적봉에 있는 전망대이다.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이북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강화도의 명소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통선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삼달리까지의 거리는 2.3km로 해안가를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군사분계선이 인접해 있어 신분증 지참은 필수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12월~02월 09:00~17:00(매표마감 16:00) - 03월~11월 09:00~18:00(매표마감 17:00) ※ 시기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경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가능 유모차대여여부 : 가능 신용카드가능여부 : 가능 애완동물가능여부 : 불가 문의및안내 : 032-930-7062~3 상세정보 관람동선 : 1층 → 2층 → 3층 → 망배단 → 제적봉비 → 퇴장 입 장 료 [개인] - 성인 2,500원 - 청소년, 군인 1,7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20인 이상)] - 성인 2,200원 - 청소년, 군인 1,500원 - 어린이 800원 ※ 무료 : 만 6세 이하, 만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시설이용료 망원경 : 500원(1회 사용시간 2분) 이용가능시설 - 1층 : 관리실, 통일염원소, 휴게실, 기념품매장, 화장실 - 2층 : 전시실, 북한땅 조망실(시청각교실) - 3층 : 북한땅 조망실(시청각교실), 옥외 전망대 - 지하1층, 4층 : 군부대 전용시설 - 야외 : 망배단 ※ 전망대 입장 시에는 검문소를 거쳐야함 ※ 차량운전자의 경우 운전자 1인만 대표로 신분증 확인 후 출입통제증을 받은 후 입장 주차요금 : 무료 화장실 : 있음 ] * 11:00~12:00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에 위치한 작성 돈대(鵲城墩臺)로 이동 [강화도에 있었던 54개 돈대 중 가장 마지막에 쌓은 돈대가 작성돈(鵲城墩)이다. 작성돈대는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에 위치한다. 작성돈은 여장(女墻)만 없지 몸체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강화에 있는 52개 돈대 중에 원래의 몸체를 이만큼이나 보존하고 있는 돈대는 두 세 개 정도에 불과하니 작성돈은 돈대계의 귀한 오리지널이다. 멀쩡한 돈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설명판도 없어 더 썰렁하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돈대 탐방기나 관련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 작성돈에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는 듯하다. 작성돈은 최초 48개 돈대가 축성된 1679년으로부터 47년이 지난 1726년에 추가로 쌓은 마지막 돈대라서 초기의 축성 형식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초기 돈대의 정방형에 가까웠던 성돌의 형태가 장방형으로 바뀌고 사이즈도 좀 더 커졌다. 돌을 거칠게 마름질하여 엉성하나마 줄쌓기를 한 것 같은데 허튼층쌓기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막 쌓았다. 돌이 크니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영 성의가 없어 보인다. 돌틈 사이 사이마다 성역(城役)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둘레가 101m인 중형급 돈대인데 포좌가 두 개밖에 없다. 보통 돈대 당 3~4개의 포좌를 가지고 있는데 2포좌 돈대는 이 작성돈이 유일하다. 사실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돈대들은 강력한 화력을 투사하기 위한 포대라기 보다 경계, 경보가 주목적인 해안초소이므로 포좌의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성돈의 포좌도 다른 돈대들과 마찬가지로 4호 불랑기포 운영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불랑기포라는 명칭 때문에 강력한 화포를 떠올리지만 사실 지금의 기관총 정도의 전술적 위상을 가진 무기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거치된 불랑기포는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선인 예성강의 들머리쪽을 겨냥하고 있다. 수전에 약할 것 같던 만주족의 淸軍이 병자호란 때 수군을 운용했고 갑구지 상륙을 성공시켰던 바, 이는 이후 조선군부의 큰 트라우마가 되었으니 적의 예상 침공로를 단단히 겨누기 위해 이 일대에 작성돈과 초루돈, 철북돈 등을 나중에 추가로 보강한 것이다. 돈대 내부에는 대여섯평 정도 돼 보이는 막사 자리가 도드라져 있다. 남향으로 자리 잡았던 이 터에는 주춧돌, 기왓장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이렇게 돈사(墩舍)의 흔적이 남아있는 돈대가 거의 없었으니 여장까지 포함한 완벽한 돈대 세트의 모범답안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작성돈만한 돈대가 없을 듯 하다. 군사시설보호구역만 아니라면 인근의 제적봉 전망대와 어울어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돈대유적이다. 해안선 철책을 따라 서쪽으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아주 작은 동산에는 구등곶돈(龜登串墩)이 있다. 강화도 최북단 돌출부인 양사면 북성리에는 돈대가 네 개씩이나 있다. 양사면 전체로 보면 아홉 개가 된다.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돈대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여기가 강화도 방어의 요충지라는 뜻이다. 청나라의 위협을 받던 당시의 조선이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서 9개 돈대 중 5개는 현재도 해병대가 사용 중인 현역 돈대이다.] * 12:00~12:20 사진촬영 * 12:20~12:35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996번지에 위치한 구등곶(龜登串) 돈대로 이동 [구등곶 돈대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996번지 강화도 북서쪽 땅 끝, 북한 땅이 빤히 보이는 해안가 언덕에 위치한 구등곶돈대는 땅이름에서 나타나듯이 거북이가 기어오르는 듯한 매우 특이한 지형 위에 올라앉아 있다. 앞쪽과 좌우 옆면으로는 갯벌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어서 외적 방어에 매우 유리한 자연적인 방벽 기능을 한다. 이처럼 갯벌에 둘러싸인 낮은 언덕 위에 약 2m 높이로 쌓은 구등곶돈대는 조선 숙종 때인 1679년 강화도 해안선을 따라 48개 돈대들이 대거 축조될 때 함께 만들어진 돈대로, 현재 해병대 제2사단 해안 소초로 쓰이고 있다. 돈대 내부에 설치된 초소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해병대 장병들은 300년이 넘은 국방 요충지에서 조선군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라를 수호하고 있는 셈이다. 돈대 성곽 위에 오르면 해안을 270도로 경계와 감시가 용이한 천혜의 요충임을 실감하게 된다. 해협 건너 북한땅 연백군 접경지역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녁이면 일몰의 석양이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강석해협을 가로질러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의 이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구등곶돈대 서쪽으로는 광암돈대, 동쪽으로는 작성돈대(까치아래돈대)가 있다. 무태, 인화, 광암, 작성돈대와 함께 인화보에 소속되었던 구등곶돈대는 아직까지 석벽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는 편인데, 군사지역인 터라 그런 것 같다. 성곽은 약10단 높이로서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어지는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다. 석벽은 동북 모퉁이가 붕괴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외적 방어와 관측에 효율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겠다. 돈대는 동서(포좌부) 32m, 동서(출입구) 24m, 남북 41m로, 형태는 기본적으로 방형을 취하고 있으나, 북서향을 한 앞면이 뒷면에 비해 약간 넓은 사다리꼴의 평면을 가진 돈대이다. 바다를 향해 전면에 2좌, 양 측면에 1좌씩, 모두 4개 포좌를 설치했는데, 북쪽의 포좌는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사선으로 사격할 수 있는 포좌는 옆면에서 앞쪽을 향해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통 사격 방향이 석벽과 직각을 이루는 여느 돈대의 포좌와는 다른 점으로, 이 역시 방어전을 펼침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여러 요인을 감안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남쪽에 위치한 돈문은 원래의 형태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돈문 양쪽의 면석에 글자를 새긴 어지러운 흔적들이 보이는데, 아마 이름자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문지의 폭은 150㎝, 높이 180㎝, 깊이는 360㎝이다. 포좌는 높이 120~160㎝ 내외이고, 폭 140~160㎝ 내외, 깊이 3m 내외, 돈대 전체의 육축부 높이는 2.2~4m이다. 돈대의 둘레는 90보(139m)이다. 기록에 따르면 구등곶돈대의 성가퀴(여장)는 46개로 나와 있지만, 현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성곽 역시 부분적으로 상당히 훼손된 곳이 많지만, 그래도 전체로 보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돈문이 있는 남쪽 성벽은 거의 온전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 복원 사업이 실시된다면 원형을 복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등곶돈대가 완전히 복원되고 민간인 출입이 자유로워진다면 강화에서도 손꼽히는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에서 대대적인 돈대 축조에 투입된 석재들은 대체로 강화도 남쪽의 마니산, 서쪽의 별립산, 그리고 매음도 와 주변 섬에서 공급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재들을 가공하는 데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석수 400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복원등급 C. [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 * 12:35~12:50 사진촬영 * 12:50~14:05 강화군 양사면 인하리 산 32 번지에 있는 광암돈대(廣巖墩臺)로 이동 [조금 손대면 원형 되찾을 광암廣巖돈대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인하리 산32 양사면 인화리 최북단에 있는 광암돈대는 숙종 5년(1679) 축조된 48돈대 중 하나로, 강화도의 북서해안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다. 부근의 작성-구등곶-무태-인화돈대와 함께 인화보에 속했던 광암돈대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기록에는 둘레가 42보, 치첩(성가퀴)가 38개로 나와 있는데, 다른 자료에는 둘레 121m로 나온 것을 보면 42보는 오기인 듯하다. 여기는 보는 약 1.1m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10보쯤 된다. 이 정도면 제법 큰 돈대 축에 든다. 그러나 현재 군 시설로 사용되고 있어, 출입구 철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둘레는 철조망을 뒤집어쓴 상태라 내부로 들어가 살펴볼 수가 없다. 따라서 기록에 나와 있는 3개의 포좌는 확인 불가다. 이 포좌들은 모두 북벽에 설치되어 있고, 좌우측으로는 포좌를 앉히지 않았다. 이것은 전면 방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돈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강화 북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편으로 북한의 연안과 마주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교동이, 우측으로는 예성강과 개풍군이 보인다. 돈대 문은 남벽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데, 문 앞에 차폐물이 서 있어 정면으로는 안을 살펴볼 수가 없다. 다행히 돈문의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출입구로는 사용하지 않고, 군인들은 다른 출입구로 드나드는 듯하다. 그 출입구를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니 군 시설물로 인해 내부가 변형된 상태다. 하지만 상태를 살펴보니 이미 용도폐기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시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자연적으로 붕괴된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비록 돈대 상단부의 여장(성첩)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돈대의 석재들은 거의 유실된 것이 없는 듯하다. 군에서 돈대를 관할한 덕분에 원형을 잘 보존한 것으로 사료된다. 군 당국과 협의하여 주변정리를 하고 탐방객들이 자유로이 답사, 관람할 수 있도록 손써준다면 퍽 고맙겠다. 군에서도 이제 자랑스런 우리 관방 문화유산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욕심을 좀 더 낸다면, 돈대 상태가 양호한 만큼 조금만 손을 대면 원형을 완전 회복할 수 있을 듯하니, 관계당국이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 하나를 되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B등급.(강화뉴스 게재) ] * 14:05~14:30 사진촬영 후 간식 * 14:30~15:15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982 번지에 있는 인화돈대(寅火墩臺)로 이동 * 15:15~15:30 사진촬영 [인화돈대(寅火墩臺) . 소재지 :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982 . 소속 : 광암돈대·구등곶돈대·작성돈대·무태돈대와 함께 인화보(寅火堡)의 관리하에 있었음 . 근처 돈대 : 2.3km 남쪽에 무태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광암돈대가 있음. . 크기 및 모양, 규모 : 형태는 원형이며, 크기는 98보, 44성첩으로 기록에 나옴. 실측 조사한 바에 의하면 둘레는 130m임. . 현재 상황 : 돈대의 가장자리 기단 석축만 군데군데 조금 남아 있을 뿐, 훼손이 심해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음. . 주변 편의시설 : 공용주차장 및 화장실 등 편의시설 없음. . 주의 사항 : 무태돈대에서 인화돈대까지는 민통선 지역이라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 촬영이 금지임. 군부대의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해 철책 주변 역시 접근 금지임.] * 15:30~15:45 인천 강화군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5:45~16:20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가는 18번 버스 승차 대기 16:20~16:54 18번 버스를 타고 인화성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 [34분, 31개 정류장] 16:54~17:00 강화터미널에서 김포 고촌역으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17:00~18:14 3000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김포 고촌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1시간 14분, 29개 정류장 이동] 18:14~18:25 고촌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가는 김포골드라인 전철 승차 대기 18:25~19:05 고촌역에서 김포골드라인 전철을 타고 김포공항역으로 가서 공항철도로 1차 환승하여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간 후 6호선으로 2차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40분 소요]
강화 평화전망대 위치도
강화도 돈대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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