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추억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하는
농번기
아버지
심부름으로
노랑 주전자 들고
막걸리 사러 간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
한 주전자 가득
꾹꾹 눌러 담아준다
날씨는 덥고
땀은 비 오듯
목은 타들어 가고
입은 자연히
주전자 주둥이로 간다
한 모금 두 모금
빨다 보니
알딸딸
정신이 혼미하다
아버지께
혼날까 봐
개울물이라도
채워야지
막걸릿잔 앞에 놓고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멘다
○글(詩) :이문조
○음악 : 막걸리 한잔
/ 영탁
○편집 : 송 운 (松韻)
막걸리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 글(詩) :천상병
(1930-1993)
○ 음악 : 막걸리 한잔
○ 편집 : 송 운 (松韻)
막걸리의 유래
한국의 전통술 막 걸러낸 술이라고 하여‘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민속주로서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해서 탁주(濁酒), 농주(農酒), 회주(灰酒)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는 6∼7도이고,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만 제조되고 있다. 만드는 법은 찹쌀, 멥쌀, 보리쌀, 밀가루 등을 찐 다음 수분을 건조시키는데 이것을 지에밥이라고 한다. 여기에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후 청주를 따로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짜낸다
『조선 양조사』에 보면 “중국에서 전래된 막걸리는 처음에는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 국토의 구석구석에까지 퍼졌다”고 하나 그 진위를 가리기는 어려운 형편이다(조선 후기,1837년 이전으로 추정)
막걸리는 문헌상 1837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양주방(釀酒方)』에 혼돈주(混沌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것은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은 뒤 숙성되면 술밑을 체에 밭아 버무려 걸러낸 것이다. 그러면 쌀알이 부서져서 뿌옇게 흐린 술이 된다
그후 한말에 주세법이 제정됨에 따라 막걸리 빚기가 규격화되었다. 1964년부터 막걸리에 쌀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밀가루 80퍼센트, 옥수수 20퍼센트의 도입 양곡을 섞어 빚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밀가루를 사용하자 주질이 떨어지게 되어 서민층은 소주로 기울어지고 중산층 이상은 맥주와 양주를 찾게 되었다. 그후 쌀 생산량이 늘고 소비량은 줄어 쌀이 남아돌게 되자 1971년 쌀막걸리를 다시 허가했다
[편집:송운 사랑방]
막걸리 한 잔 / 영탁
온 동네 소문 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막걸리 한잔
첫댓글 막걸리
/ 임권
비는 내리고
하늘에 뜨지 못한 달이
작은 그릇 속에 떴다
달이 되고 싶은 나는
반쯤 가라앉은 달을
휘저어 마셨다
얼마나 온 걸까
찌그러진 주전자 끝에
눈물 맛이 나는 하루
막걸리
/ 이생진
인사동 골목에 끼여
막걸리를 마시며 술 이야기를 했다
술이라는 게 뭐냐고
송상욱*이 눈치채고 말했다
막걸리는 누룩내가 약간 섞여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당신의 냄새가 누룩내 아니냐고
하지만 나도 그도 막걸리를 찾는 것은
아직도 놓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젖꼭지라고
* 송상욱: 인사동에서 시지
<시詩>를 만드는 시인
서울막걸리
/ 정연복
홀로 마시는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