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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세 가지 전략
서안나
<지난 계절의 좋은 시>
최호일,「나의 과학」
우대식,「이순(耳順)」
이화은,「팬티를 삶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有才豈有不忙客(유재기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유희무재아독한)
-홍신유(洪愼猷·1724~?),「閒中(한중)」부분
이제 곧 봄이다. 매서운 겨울의 혹한과 추위를 열고 나무는 꽃을 피울 것이다. 홍신유의 “모두 재주가 있어 바쁜데 나는 재주가 없어 홀로 한가하다”라는 한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다. 무장한 겨울은 사람을 여유롭게 하여 시 읽기에 좋은 시간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카프카 역시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에서 독서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 부수는 도끼 같은 책. 이것이 나의 믿음이야.”라고 쓰지 않았던가.
시를 읽는 맛이란 시인이 보여주는 낯선 이미지와 상상력과 맞대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만난 세계를 동행 하는 것이며, 시인의 쓴 안경을 빌려 쓰고 시인과 함께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 계절의 시 읽기는 최호일, 우대식, 이화은 시인의 시 세계를 여행해본다. 최호일 시인이 몸을 통해 문명을 비판하고 속도의 시대를 저격한다면, 우대식의 시는 신체 일부인 “귀”를 통해 외부에서 내면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역동적 상상력을 맛볼 수 있으며, 이화은의 시에서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가부장적 시스템에 비수를 던지는 칼칼함을 만날 수 있다.
저 허공은 사물이 없는 곳에 두 번 나타난다 소년과 소녀들은 발레를 하고
나는 발레를 피한다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가 없다
스포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반대하고
치통을 앓는다
아직도 역사의 선반 위에서 불타는 사과
저녁이 유리 형제들처럼 투명한 과녁을 모두 빛낼 때
빗나간 바람은 달그락거린다
누군가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
곧 날아오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장밋빛이며 영리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모른다
열한 마리의 고양이와
열한 명의 축구선수들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벽의 세계에서는 벽을 들고 가
벽지에 붙인다
나의 과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불을 끄고 그 벽에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최호일, 「나의 과학」, 월간 《현대시》 2018년 10월호
최호일 시인은 시집 『바나나의 웃음』을 상재한 이후 시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 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최호일의 시는 독자들을 미지의 감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나의 과학」은 주체와 객체의 전도를 통해 물질문명의 폐해와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제목이 “나의 과학”이지만 시에서 과학에 관한 설명이나 진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질적인 사건의 배열과 돌연한 상황을 병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호일 시는 쫄깃한 식감을 지닌다. 신선함과 긴장감을 통해 낯선 세계를 우리 앞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호일 시는 읽을 때는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시를 분석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시의 행과 행 그리고 연과 연의 비약과 확장과 변주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정황을 따라가 보면, “허공-발레-오렌지-치통-역사-사과-유리창-바람-러닝머신-불행-고양이와 축구선수-벽과 벽지-과학-슬픔”으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행, 행과 행, 행과 연, 연과 연 사이가 비유기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돌연한 이미지들의 병렬식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 10연으로 이루어진 「나의 과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연은 1연과 3연, 6연과 8연이다. 4개의 연에 나타나는 정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1연의 발레와 3연의 스포츠, 8연의 러닝머신에서 시적 화자는 문화센터나 스포츠 센터를 중심으로 시적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시의 1연이 유독 눈길을 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 그리고 발레로 이어지는 내용은 돌연하고 폭력적이다. 아마도 “나”가 문화센터 유리창을 통해 발레 하는 한 무리의 소년과 소녀를 목격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은 발레의 동작 중 손을 머리 위로 둥글게 뻗어 허공을 만들어내는 동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발레 교실을 지나치는 과정을 “나는 발레를 피한다”라는 감각적인 진술로 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호일의 시는 하나의 행에도 여백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도 간극이 넓다. 독자들은 시인의 상상력 증폭을 따라가며 그 이질적인 결합에 신선함을 느낀다.
시의 후반에서야 유추할 수 있듯이, “나의 과학”은 “벽지를 들고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를 기여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불을 끄고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이때 “불”을 끈다는 행위 역시 시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다리는 폭탄처럼 터질 듯 위험하고, 고양이와 축구선수 모두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과 축구선수 등의 신체는 벽지 위에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 속에 결박된 육체이다. 과학과 문명으로 건설된 현대사회의 욕망의 구조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속도이다. 시적 화자는 속도 속으로 흡입되어 선택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과 현실의 모순된 시스템을 “나의 과학”을 통해 날카롭게 저격하고 있다.
최호일 시는 카프카의 「어느 투쟁의 기록」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뛰듯이 달렸다/ 달려가는 취객처럼/ 발로 공중을 구르면서”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된다
어떤 형식도 괜찮다
벌써 귀가 순해지는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나 부처님 이런 분들도 크게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내친 김에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낙화의 황홀에 굴복할지라도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도
쨍그렁 쨍그렁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다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꽃들이여
순백의 어느 한 날을
우리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
-우대식, 「이순(耳順)」. 월간 《시인동네》 2018년 10월호
우대식의 시 “이순(耳順)”은 신체의 일부인 “귀”와 “이순(耳順)”이 시의 중심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신체어가 지니는 다양한 표현 중 연령을 은유하는 “이순(耳順)”은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나이”를 이른다. 귀가 순해져 나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겸손해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순에 가까워진 나는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라고 의지를 드러내지만, 이내 “몇 합 겨루지 못하고/낙화의 황홀에 굴복”하고 만다. 이순이 되어 내가 자연이 주는 낙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고 굴복한다면, 이제껏 내가 세상을 향한 시선이 부드럽지 않고 대적하는 날카로움에 가까웠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순에 들어서서 그간 세상을 향해 휘둘러온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이 녹이 슬었으며, 이제는 순하게 다루고 싶어 한다. 이제껏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칼끝을 내 안으로 거두어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어한다. “낙화의 종년(終年)”을 바라는 이유는 세상을 향해 겨누던 칼끝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발적 내전 상황이다. 내 안에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들이 무성하여, 시적 화자는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면의 상흔과 맞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상흔은 신체 기관 중 귀의 외형과 연관된다. 귀는 눈이나 코와 입과 달리 칼처럼 뾰족하고 외부로 향해 있다. 곧 나의 귀는 타자를 향해 날이 서 있던 내면의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의 구체적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귀가 순해진다는 의미는 밖으로 향하던 칼날이 내 안으로 과녁을 새롭게 조준하는 내면의 고투이다. 내면으로 향하는 과녁의 변경은 “이순(耳順)”이 전제조건이며, 이를 통해 경청의 힘이 타자를 내면에 들이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칼끝을 나에게 겨누는 것은 곧 세계와의 대결에서 지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격전장을 나의 내면으로 옮겨 타자와의 관계 설정을 재배치하고, 자폐화 한 내면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면 공간의 확장과 과녁의 변경은 곧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타자를 내면으로 들이는 공존의식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에서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라는 진술은 독특하다. 시적 화자는 타자와의 공존의 자각에서 획득한 유순함과 현명함을 자폐적인 공간에 설정하고, 뒤이어 귀를 자르고 싶다고 욕망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와의 통로 차단은 “순백의 어느 한 날을”과 같은 순수함의 원형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의지이다. 시의 첫 행인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 된다”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관계회복의 결연함은 곧 원형적 순수함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한결같이 여성스럽다
여자스럽다
다소곳 오래된 연분홍
먼 하늘에 자욱하던 오동꽃
치자 빛은 참 귀하게 만난다
지난봄에 산 팬티는 자잘한 들꽃 무늬였다
꽃 핀 들판 하나를 온통 꿰입고 풀꽃처럼 잠시 순진무구했다
남자를 아주 모르는 여자처럼
아직도 내가 면 팬티를 고집하는 이유는
삶아 빨 수 있기 때문인데
폭폭 삶아
내가 껴입었던 여자의 흔적을 왜, 굳이, 지우려 하는지
황제를 호리기 위한 후궁처럼 팬티 속에 예쁜 여우 한 마리
숨긴 것도 아닌데
평생 흰 팬티만 입으시던 어머니도 오래오래
죄 없는 흰색을 삶고 또 삶았다
독한 양잿물까지 넣어 지워야 했던 어머니의 여자, 여자들
흰색은 삶아도 흰색이었다
수만 번 삶아도 어머니는 아직도 내 어머니이듯
나는 딸이 없으니 이 대물림도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연분홍도 오동꽃도 자잘한 풀꽃들도 훌훌 팬티를 벗어 던지고
내미치마로 거리를 활보할까
시방(十方)에 여자의 달근한 생 향기 가득하겠다
-이화은, 「팬티를 삶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계간 《포지션》 2018년 겨울호
이화은 시인은 1991년 등단 이후 4권의 시집『이 시대의 이별법』『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미간』을 상재하였다. 그의 시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 세계의 특징은 여성성에 관한 사유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대지신과 같은 모성의 몸이다.
「팬티를 삶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라는 도발적인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화은 여성의 몸을 시의 중심 모티브로 삼고 있다. “나”가 면 꽃무늬가 자잘한 면 팬티를 고집하고, 속옷을 삶기를 고수하는 이유는 고인이 된 어머니의 습성과 연결되어 있다. 나의 속옷 삶기는 “평생 흰 팬티만 입으시던 어머니도 오래오래/ 죄 없는 흰색을 삶고 또 삶”아 왔기 때문이다. 곧 속옷 삶기는 집안에서 세대를 거스르며 대물림되어 온 관례이다. “독한 양잿물까지 넣어”, “어머니의 여자, 여자들”을 지우던 “속옷 삶기”는 “여자” 혹은 여성성을 은폐하는 행위인 동시에, 위생 관념이란 명목으로 여성의 정숙함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문화의 폐해이다.
“수만 번 삶아도 어머니는 아직도 내 어머니이듯”, 나의 속옷을 삶아도 나의 육체에 기록 된 어머니의 혈흔을 표백할 수는 없을 터. 나는 속옷을 삶으며 가부장적 규율권력이 관장하는 세계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창밖” 세계로의 일탈을 욕망하고 있다.
시에서 시적 화자의 태도는 당연시하였던 속옷 삶기에 행위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여성에게 정숙함과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는 능동적 주체로 나아간다. 시적 화자는 이에 멈추지 않고, 시의 후반부에서 속옷을 벗어버리고 “내미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화은 시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몸은 규율에 지배되는 몸이 아닌, “시방(十方)에 여자의 달근한 생 향기 가득”한 전우주적인 시방(十方)의 몸으로 확장된다. 이화은의 시 세계는 어머니의 자궁으로의 회귀 본능을 통해 여성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여성의 몸으로 치는 시 세계를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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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徐安那) /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시 신인상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발달사』,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정의홍전집 1․2』, 『전숙희 수필선집』엮음,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 <서쪽> 동인. 한양대 외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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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시가 강인한 선생님의 좋은시 방에 첨 올라왔을 때 누가 전화로 그러더군요. 이화은 팬티가 강인한 선생 방에 걸려있다고. 그래서 한 참 웃었는데 또 그러네요. 제 팬티가 그 방에 두 번이나 걸려있다구요. 제가 어쩌다 보니 패미니스트 시인이 된것 같아요. 전혀 의식 안했는데 주변에서 자꾸들 그러네요.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여기서 느낀 모습을 시에서 만나네요ㅎ
전사같으시고ㅎㅎ
대물림이 끝나셔서 좋으시겠어요^^
여자는 어쨋든 까다롭고 어렵고 복잡한
거 같아요 딸이라는 이유로 밀려났던 것들이 시의 토양이 되고있는 것 같아
울다가 웃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