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온 살 빠지는 속옷 구경할래?" 땀을 흘리며 운동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고, 살은 빼고 싶어하는 내게 친구가 귓속말을 한다. 어머니가 거금을 주고 산 속옷인데 몰래 한번 입고 왔으니 구경이라도 시켜준다는 말이었다.
당시 나는 취업 준비를 위해 정장 한 벌을 마련하려고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브랜드에서는 사이즈가 죄다 44사이즈와 55사이즈만 나온단다.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싶으면 살을 빼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몸에 맞지 않아 사지도 못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내내 그 옷이 눈에 아른거렸던 내게 친구의 말은 광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세상에 그냥 입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속옷이라니!
일명 `살 빠지는 속옷`이란 지금의 보정속옷을 말한다. 보정속옷은 군살 부분을 눌러줘 날씬하게 보여주는 체형 보정 기능을 갖고 있다. 또 조일 부분은 조여줘 굴곡있는 몸매로 보이게 한다. 얼굴을 작게 보이도록 해주는 체형 보정 속옷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남성들도 몸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배나 옆구리에 군살이 붙거나 처진 엉덩이를 보정해주는 남성용 속옷도 선보이고 있다.
처음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보정속옷은 과장된 효능과 방문 판매라는 독특한 유통망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보정속옷이 살을 빼주는 건 아니다. 다만 입는 순간 일시적인 사이즈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보정속옷을 입으면 안 들어가던 겉옷이 마술처럼 몸에 맞는다.
보정속옷이 현재처럼 대중화되기까지는 홈쇼핑이 기여한 바가 크다. 1990년대 후반 피부 마사지 기구와 함께 보정속옷을 36개월 할부로 구입했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지금은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다. 그래도 당시에는 없어서 못 팔았다고 하니, 그 인기는 가히 대단했다. 보정속옷의 인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물량이 부족해서 더 하고 싶어도 홈쇼핑 방송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정속옷의 기능도 진화했다. 브래지어를 하고 올인원을 입고, 롱거들을 입은 후, 거기에 니퍼까지 착용해야 했던, 너무 답답하고 더워서 입고 나갈까, 벗을까를 몇 번이나 망설이고 입고 나간 후에도 화장실에서 벗기를 여러 번 했었던 보정속옷이 최근에는 올인원, 브라, 니퍼 기능을 하나로 해결하는 바디쉐이퍼로 발전했다.
소재 면에서도 얇고 기능은 강해진 파워넷과 샤틴 소재로 발전한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신축성을 주는 폴리우레탄 소재에 면을 감싼 신소재로 만들어 흡수성까지 보완한 보정속옷이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보정속옷을 얇고 가볍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소재의 직조 방법도 발전했다. 양말을 직조하듯 봉제 라인을 없애고 패턴의 변화를 주어 보정력은 유지시키는 심리스 보정속옷의 등장은 불편한 착용감의 고민을 한결 덜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보정 속옷은 땀흘리는 것을 싫어해 운동으로 살을 뺄 수는 없지만 날씬해 보이고 싶고, 사이즈가 작은 이쁜 옷은 입고 싶은 게으른 필자 같은 여성들에게 기쁨을 주는 기특한 아이템임에는 틀림없다.
홈쇼핑에서 보정 속옷을 잇따라 론칭하면서 지켜보는 이러한 보정속옷의 진화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하지만 보정속옷의 무한한 진화가 기대되는 것은 필자가 속옷MD임을 떠나서, 보다 예뻐지고 싶은 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