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By
전윤선
-
2022년 4월 27일
0
▲동북공심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며 성벽 안쪽에 설치되어 있다.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간다. 기다려 주지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저 잘난 듯 기어코 제 갈 길만 가는 시간.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 깊이에의 아름다움이 축적된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볼 때마다 감탄사가 자동으로 발사된다. 팔달산을 병풍 삼고 들녘은 정원 삼아 아비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을 쟁여놓은 곳이 수원화성이다. 정조 이산의 시간도 아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속절없이 흘러갔다. 정조 이산은 뒤주 속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 이선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안문 ⓒ전윤선
성곽의 꽃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건축예술의 최고로 손꼽힌다. 수원화성은 조선 최초의 신도시이기도 하다. 여느 성곽과 다르게 성의 주 출입문은 북쪽에 있는 장안문이고 보물들로 가득하다. 정조대왕은 화성을 축성할 당시 인부들에게 높고 정확한 임금을 지불하고 겨울엔 양반들만 가지고 있던 털모자를 인부들 모두에게 하사했다. 당시 털모자는 정3품 이상의 관료들만 착용할 수 있는 신분 계급의 상징이었다. 성곽을 축성할 당시 인부들의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 썼고 안전사고 나면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지금의 산재보험 제도도 운영됐다. 신분제도를 넘어서는 정조대왕의 정성에 예상보다 훨씬 빠른 2년 9개월 만에 화성을 완성했다. 게다가 정교하고 튼튼한 화성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성곽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성 여행에서는 볼거리, 즐길 거리, 체험 거리가 가득하다. 성곽의 건축물을 살펴보면 성곽 안과 밖 모두 색다른 풍경이다. 수원화성은 북쪽의 장안문, 동쪽의 창룡문, 서쪽의 화서문, 남쪽에 팔달문까지 4개의 문이 있다.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여느 성곽 문과 달리 북쪽의 문을 정문으로 정하고 규모도 가장 크고 웅장하다. 장안 공원 쪽에서 둘러보면 제대로 된 장안문을 감상할 수 있다. 장안 공원은 화성어차가 지나가는 길이 있고 잔디밭과 쉼터가 조성돼 있다. 장안문 안과 밖 모두 평지여서 휠체어 사용인 등 보행 약자도 여유롭다. 장안문에서 성곽 밖을 따라 걷다 보면 용연과 만난다.
▲용연과 방화수류정 ⓒ전윤선
용연은 왕의 연못으로 정조가 성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 잠시 쉬던 곳이다. 용연(왕의 연못)에 비치는 방화수류정은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 정평이 나 있다. 봄에는 벚꽃이 연못의 운치를 더하고 벚꽃이 지고 나면 버드나무 잎이 연못까지 길게 늘어져 사극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 용연 가운데 작은 섬은 오리들이 터전을 삼아 살고 있다. 용연에서 방화수류정으로 바로 가는 길도 있지만 계단 몇 개가 휠체어 사용인을 빙 돌아가게 한다. 방화수류정으로 가는 길에는 화홍문을 백여 미터 지나 수원천을 건너서 다시 화홍문 올라와야 한다. 화홍문 접근성은 현저히 나아졌다. 휠체어 사용인도 화홍문 앞까지 접근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접근성 개선이 눈에 띈다.
▲무예24기 ⓒ전윤선
화성에서는 체험 거리도 가득하다. 주말이면 정조대왕 능 행차를 체험할 수 있고, 행궁 앞 광장에서는 조선의 무사들의 절도 있는 무술인 무예 24기 공연이 펼쳐진다. 성곽을 따라 걷기 여행도 늘어나고 있다. 성곽 걷기는 옛 선인들의 발걸음을 따라 역사 속으로 사부작사부작 들어가 볼 수 있는 여행이다. 연무대에서 창룡문까지, 창룡문에서 봉수대까지, 봉수대에서 동남각루까지 휠체어 사용인도 성곽 걷기가 가능하지만 성곽을 올라가는 길엔 경사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성곽걷기 ⓒ전윤선
화성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화성 어차와 자전거 택시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다. 화성 어차는 두 대가 운행 중이지만 한 대는 휠체어 사용자도 탑승 가능하다. 화성행궁에서 출발해 연무대까지 화성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정조 대왕이 빙의된 것 같아 기분 좋아진다. 자전거 택시는 화성탐방 코스와 전통시장 코스 구간으로 나눠지는 코스이다. 자전거 택시는 휠체어 사용자는 이용할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수원화성박물관 ⓒ전윤선
화성박물관은 화성 축성의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정조대왕의 화성 축성 당시 돌을 나르는 인부 70여만 명이 참여하고 돌덩이 18만 7천 6백개를 사용한 정황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당시 신기술로 만들어진 거중기와 록로, 유헝거 등 축성 과학기구의 사용과 성과급제도, 공사실명제까지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건설노동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어린이 체험실은 혜경궁 마마의 가마 타보기와 서장대와 행궁 입체카드 만들기, 와당 탁본액자 만들기까지 다양하다. 박물관은 뮤지엄, 승강기,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접근성이 좋다.
공방거리는 행궁 주차장과 호스텔 사이에 있는 골목이다. 카페, 공방, 식당 등 다양한 상점들이 모여 형성된 거리다. 이 길에는 작가들이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판매하고 전통찻집에 들러 생강차, 대추차 등 몸에 좋은 차를 마셔보는 것도 공방거리에 쏠쏠한 재미다.
수원에 유명 먹거리는 수원왕갈비 통닭이다. 팔달문 인근에 통닭거리가 형성돼 통닭의 명소가 됐다. 시도 때도 없이 긴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다. 맛있는 통닭을 맛보려 전국에서 몰려드는 맛객들의 즐거운 비명이 이어진다. 수원통닭의 양대 산맥은 융성통닭과 남문통닭이다. 두 곳 모두 문턱이 없고 입식 테이블이어서 휠체어 사용자도 접근 가능하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가느냐도 중요하다. 때를 맞춰 여행지를 찾아 마음속에 담아놓은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 추억을 기록한다. 오늘의 모든 얘길 기억하는 한 행복한 시간이 저장되기 때문이다. 오전엔 날씨가 흐리더니 활짝 갰다. 이런 날 무지개라도 뜨면 화성과 얼마나 잘 어울릴지 상상해본다.
_______________
가는 길: 수원역, 수원시청역에서 수원 장애인 콜택시(전화: 031-253-5525)
접근 가능한 식당: 융성통닭 031-242-8226/ 남문통닭 1522-8818
접근 가능한 화장실: 행궁옆, 장안공원 등 수원화성 곳곳
▲장애인화장실 ⓒ전윤선
[더인디고 THE 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