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16)양은 지난해 직장에 다니는 '아는 오빠'와 잠자리를 함께 한 뒤 생리가 끊어진 것을 알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피임에 실패했어요. 인공유산을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 시기를 놓쳐 버렸고…. 그 오빠하고는 이미 헤어진 뒤였어요."
아무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집에 놀러 온 고모가 기겁을 했다. "너, 그 배…!" 임신 6개월째였다. 부모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박양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 다니던 실업계 고교에 자퇴서를 냈다.
"꼭 학교에 다니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사회적으로 무시를 당하지 않을 것 같아요." 현재 한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박양은 "미혼모를 위한 대안(代案)학교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구가톨릭대 제석봉 교수 연구팀에 의뢰해 3일 공개한 '학생미혼모 실태조사 연구'에 실린 사례다. 전국 35개 미혼모 시설에서 생활하는 학생 미혼모 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 중 85%가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34.2%는 전문계고, 17.8%는 중학교, 13.7%는 인문계고를 중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명은 학교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하려는 의욕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58.9%가 '중단된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미혼모가 학업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기적으로는 미혼모 시설에 교사를 파견하는 튜터링 제도, 지역거점 교육복지시설을 활용한 대안교육 등을 들었고 ▲중·장기적으로는 미혼모 관련 교육·복지·상담 서비스를 일원화하는 단일법령 제정과 재가(在家) 미혼모를 위한 홈스쿨링 학력 인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권에 불이익을 받는 학생생활 지도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