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6: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출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출 6:3]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4]가나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출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제 - 히브리어 '아타'는 곧 '장'이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큰 격려의 뜻이 들어 있다. 즉 모세의 불평은 하나님께서 약속 이행을 지체하신다는 점을 골자로 하였거니와, 이에 대해 하나님 즉시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시겠다는 결의를 표하신 것이다. 강한 손을 더하므로 - 여기서 '강한 손'이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신인 동형동성론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크게 나타내시겠다는 뜻이다.
한편 이처럼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대상과 연결시켜 간결하고 평이하게 표현하는 것은 히브리 문학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동일한 말('강한 손을 더하므로')을 중첩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명확성과 불변함을 나타내는 강조법적 기교이다. 보내리과(솰라흐) - '포기하다', '내던지다'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가게 내버려둔다는 뜻이다. 쫓아내리라(가라쉬) - '축출하다', '추방하다' 로서 전술(前述)한 '솰라흐'보다 훨씬 강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말은 자의로 추방한다는 의미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이는 여호와의 이적적 징벌로 말미암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도리어 쫓아내듯 황급하게 내어보내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임을 예시한 말이다. 여호와(예호와) - 이 이름은 이중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1)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절대자란 뜻이다. (2) 선민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키시는 구속주란 뜻이다.
본문에서는 특히 (2)의 의미가 강하게 표출되어있다. 낙담 중 탄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신 이유는 출애굽 사건이 당신의 언약과 성취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모세에게 주지시키기 위함이었다. 전능의 하나님(엘 솨다이) - '솨다이'는 '공략 불가능한'이란 뜻의 '사다드'에서 온 말로 '전능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엘'은 '힘' 혹은 '힘센 자'란 의미의 '아일'에서 유래한 말로 '사다이'와 비슷하게 '강하고 능력있는 자'란 뜻이다. 여호와로는...알리지 아니하였고 - 여기서 '알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의 기본 개념은 '확실히 깨닫게 하다', '체험하게 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전혀 계시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칭호가 '언약의 주'로서의 의의를 지닌 것으로 확연히 알려진 것은, 구속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출애굽을 전후한 때라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 - 좁게는 요단 동편에 위치한 가사에서 시돈 사이의 땅을. 넓게는 역시 요단 동편의 애굽 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창15:18). 우거하는(구르) - (손님으로서)'체류하다', ' 숙박하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부분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그저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따라서 훗날 여호수아의 인솔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것은 결코 자연적 기득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인적 은총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언약하였더니(쿰 에트-베리트) - '쿰'은 '설립(제정)하다', '선포하다'의 뜻이고, '베리트'는 '자르다'의 뜻인 '바라'에서 온 말로 곧 '언약'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언약은 상호간의 협의에 의해 이뤄진 언약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는 언약이다.
한편 하나님과 족장들간에 체결된 언약에 대해서는 기록된 바,이들 언약에서는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이 한결같이 등장한다. 신음(네아카) - 이 말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신음하다'란 뜻의 '나아크'에서 온 말로 2:24에서는 '고통 소리'로 번역되었다. 이렇듯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통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럼에도 본절에 이 말씀이 반복된 것은 (1) 당신의 약속을 다시 한번 강하게 확신시키며 (2) 아울러 모세의 탄원에 대한 응답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기억하노라(자카르) - 본래 의미는 (알아 볼 수 있도록)'표시하다'이다. 그리고 여기서 '회상하다'란 뜻이 파생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과거에 잊고 있다가 돌연 생각났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언약을 성취할 때가 비로소 도래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경륜을 따라 역사를 운행해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