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주일) -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왕국주일] -
새로운 나라 주님의 나라
( 요한복음 18:33~38 )
Ⅰ. 서론
* 천국 = 하늘나라, 신국 = 하나님나라. 나라 = kingdom = 왕이 다스리는 나라
天國이라는 말과 神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국은 하늘에 방점이 찍혀 있고, 신국은 하나님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풀어쓰면 하늘나라와 하나님나라입니다. 마태복음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살려면 이 세상의 삶이 끝나야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됩니다.
* kingdom of heaven & kingdom of God, kingdom은 같지만, 강조점은 다르다.
Ⅱ. 본론
*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이 땅으로 옮겨 오려 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건설하고자 하신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하늘나라일까요? 하나님나라일까요? “같은 거 아닌가요?”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자는 의미입니다. 주기도문에,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라는 내용으로 본다면, 이는 ‘하나님나라의 임하심’입니다.
* 주기도문을 보면, 주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 가르치셨다.
첫째, 세상에 속한 나라와 그 백성들(35)
* 니므롯이 세운 나라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벨탑을 쌓는 일을 했다.
사무엘 때에 이스라엘은 이방나라들처럼 “이스라엘에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삼상 8:5).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라 사람을 왕으로 세워 다스림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하신 말씀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삼상 8:7)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는 神國을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를 증오하면서도 “로마 권력을 통하여 예수를 제거하려” 합니다(35).
*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권력을 이용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고소했다.
둘째, 세상에 속하지 않은 주님의 나라(36)
* 빌라도는 정보기관을 통하여 제반 상황을 거의 다 파악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로마총독으로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에 처할만한 중범죄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제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습니다(33). 빌라도는 예수라는 인물이 로마정부를 반역하려 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 물은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36)고 대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그를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시민”입니다(빌 3:20).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는 땅에 살아도 하늘시민이다.
셋째, 진리에 속한 새로운 나라의 왕(37)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 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그 나라는 바로 “진리의 나라”입니다(37b). 이 세상은 거짓이 판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리만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계 21:8). 천국은 진리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 왕은 바로 예수님”입니다(37a).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합니다.
*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천국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
Ⅲ. 결론
* 빌라도 이름이 사도신경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비겁했기 때문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준 인물입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사도신경은 신자가 무엇을 믿는지를 고백하는 중요한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본디오 빌라도는 얼마나 귀가 아플까요.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38) 알고 있었지만, 빌라도는 정의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재판관은 죄가 없으면 석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법적 판단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 권력자가 그 권력을 정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책임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