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유정입니다^^
이번에 저희 아들들 초등학교 방학이 석면공사로 인해 7월 19일~10월 6일 까지입니다. (여름 가을 방학이죠)
그래서 막막한 마음에 ㅎㅎ 예전에 썼던 수필 '방학'을 올려 봅니다.^^
방학
안유정
내가 어렸을 때 방학은 마냥 신나고 짧게만 느껴진 날들이었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힘들고 길게만 느껴지는 날이 됐다. 초등학교 겨울방학은 봄 방학까지 더해 두 달 정도이다. 나는 아이들의 겨울방학에 앞서 한의원부터 갔다. 유난히 습하고 더웠던 지난 여름방학 때 삼 남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몸이 축났기 때문이다. 이번엔 적어도 응급실에서 링거 맞는 신세는 피하고자 보약부터 지었다. 둘째마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방학은 체력 다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약으로 기력을 되찾아가며 방학 맞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방학엔 아침잠 좀 푹 자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개 맞춰 놨던 핸드폰 기상 알람도 모두 끄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귀를 찌르는듯한 소리에 베개를 구부려 양쪽 귀부터 막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꺼 놓은 알람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고성을 들었더니, 거실에서 TV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보고 싶은 방송을 보기 위해 티격태격 중이었다. 학기 중엔 깨워도 못 일어나더니 방학이 되니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나는 덜 깬 몸을 일으켜 싸움을 말리러 나갔다. 잠 좀 더 자라고 해도 이미 텔레비전 화면이 비치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반짝거리기만 했다.
그 후로도 나는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일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기상 알람을 대신했다. 삼 남매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점심 메뉴를 물었고, 점심을 먹으면서는 저녁에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요청했다. 먹는 즐거움에 사는 것 같았다. 세 아이의 먹성을 해결해 주다 보면 하루가 마치 명절 같이 지나갔다. 명절에 나는 시댁 현관에 들어서면서 두 팔을 걷고 주방부터 갔다. 쌓인 설거지를 하고 각각 다른 시간에 오는 친척들에게 밥상과 다과상을 차려줬다. 저녁 술상까지 차리고 나면 주방에서 맴돌다 하루가 저물었다. 그런데 방학도 마찬가지였다.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해 주다 보면 젖은 앞치마를 벗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방학처럼 예전엔 내게도 휴일이었던 날들이 결혼 후 그 의미가 바뀐 날들이 있다. 주말과 명절 그리고 방학이다. 미혼일 때의 주말은 늦잠을 자고 여가도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는 날이었다. 명절은 미리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방학은 온종일 놀아도 간섭하는 사람 없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자식이 있는 삶에서 휴일은 휴식이 아닌, 노동과 봉사의 날이 됐다. 주말에 놀자고 조르는 아이들의 성화에 눈을 떠야 했다. 또, 손주들 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양쪽 부모님 집에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했다. 그러면 한 달 중 내가 쉴 수 있는 주말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명절에 해외여행이라도 간다면 아마 개념 없는 며느리라는 딱지가 평생 붙어 다닐 것이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들리고, 며느리를 위한 가짜 깁스가 온라인 쇼핑몰에 판매되는 걸 보면 명절은 며느리들에게 피곤한 날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방학이었다. 주말과 명절의 무한반복 같았다. 초등학교 방학은 엄마들에게 재앙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집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궁금해 이웃에 물어봤다.
주변 아이들은 주중엔 영어학원 특강과 주말엔 스키 강습을 받느라 바쁘다고 했다. 영어학원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스키 강습은 아침 6시에 스키장 버스를 타고 가면 저녁 6시에나 집에 온다고 했다. 모두 점심 식사까지 제공된다고 했다. 그 아이의 엄마들은 방학에 더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방학엔 알게 모르게 쌓였던 학업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아이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고 있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라는 가사였다. 내게도 익숙한 옛날 노래를 어떻게 아는지 의아해서 물었더니, 친구가 알려줬다고 했다. 그럼, 그 노래 가사에 나온 놀이 중 아는 놀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술래잡기만 알고 다 모른다고 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날씨를 떠나서 어린이들은 밖에서 놀아야 하는데 집 앞 놀이터는 항상 텅 비어있었다. 다들 학원에 갔는지 바람이 미는 그네만 가끔 움직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 제목이 ‘보물’인 것처럼 어릴 적 뛰놀던 기억들은 보물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초등학교 방학일 때에는 그 노래 가사처럼 놀기만 해도 하루가 너무나 짧았다. 친구들의 부름에 낮부터 나가 놀다가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다시 집에 들어가면 하루가 다 갔다.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골목에는 항상 놀 친구들이 있었다. 말뚝박기, 고무줄놀이는 당연하고 꼼꼬미, 돈까스, 다방구 등 생각만 해도 즐거운 놀이를 매일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놀이보다 핸드폰 게임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학교 운동장에도 말뚝박기나 고무줄놀이하는 학생들을 본 적이 없다. 다들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노란 승합차에 타고 학원으로 이동하기 바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방학을 보낼 수 있게 해주려던 마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개학 후 학원에 다닌 친구들보다 성적이 뒤처질 걸 생각하니 불안해서 엄마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는 아이들을 억지로 앉혀 놓으려니, 내 성질만 사악해지고 자식과의 앙금만 쌓여갔다.
게다가 추운 날씨는 우리를 집에서 더 바글거리게 했다. 매일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싸우고 먹고를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니 땅이 꺼지게 한숨만 나왔다. 그렇다고 영하의 날씨에 장롱면허인 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야외 활동을 시켜준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겁이 났다. 그나마 하루에 한두 개 다니는 학원에 형제를 보냈을 때는 숨통이 트이며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온전히 쉴 수는 없었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막내딸과 놀아주면 형제의 학원 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시 삼 남매가 뭉치면 앞다퉈 또 엄마를 찾아댔다. 사방에서 꽂히는 “엄마, 엄마” 소리에 누구의 질문에 먼저 답해줘야 할지 번호표 기계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방학이 반쯤 지났을 때였다. 식탁에 앉아 탁상달력을 들춰봤다. 동그라미 처져 있는 3월 2일에 ‘개학’이라고 적혀있었다.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의 마음이 이럴까. 나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아이들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어느덧 삼일절이었다. 국기게양을 위해 태극기를 꺼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봉을 잡고 나도 모르게 태극기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었다. 나는 울분이 터진 듯 “대한독립 만세! 내일 개학이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고, 나는 멋쩍은 기분으로, 흔들던 태극기를 멈추고 베란다 거치대에 꽂았다. 태극기는 내 마음처럼 신나게 펄럭였다.
드디어 개학 날이었다. 십분 간격으로 울리는 기상 알람에 잠에서 깼다. 한바탕 등교 전쟁을 치르고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낸 뒤, 막내딸까지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냈다. 다시 돌아온 집은 폭풍이 지난 뒤 바다처럼 고요했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다시 찾은 평온을 만끽했다. 식탁 위에는 방학의 흔적들이 놓여있었다. 그동안 회초리로 썼던 튀김용 나무젓가락 한 짝과 소음으로부터 내 귀를 보호해 준 소음방지 귀마개 한 쌍이었다. 모두 집어 제자리 서랍장에 넣었다. 그리고 방학 동안 곤두세웠던 내 예민한 신경도 함께 접어 넣었다. 아이들의 개학은 곧 나의 방학이었다. 내 마음에 다시 여유가 찾아오니, 뱀 허물같이 벗어 놓고 간 아이들의 잠옷도 다시금 사랑스러워 보였다.
첫댓글 여름방학 시절 기억이 떠오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대한독립 만세! 내일 개학이다!''
ㅋㅋㅋ 충분히 이해됩니다.
재미 있게 잘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방학이란 그런 것이죠
아이들은 신나는 것이고, 엄마는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힘들고
특히 삼남매가 있으니 수고 많습니다.
화이팅!
어린 시절 즐거웠던 방학이
어른이 되고 나면 고난의 시간이라고 하는 요즘이지요.ㅎㅎ
옛 시절 생각도 나고 친구들도 그리워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시절이 그리워진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훗날 세 자녀로 인해서 즐거운 일이 더 많으리라 믿어요.
건강 잘 챙기시고 파이팅 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날이 오겠지요?ㅎㅎㅎ
전쟁이군요.
참고로 큰아들 집안 교육 잘 시키면 부모 몫 절반합니다.
아이들 모아 놓고 큰아들 권위 세워주면 동생들이 잘 따를 거예요.
옛날 얘긴가? ^^
아~ 예 명심하겠습니댜!!
나의 방학
아버지로서의 자식 방학
엄마로서의 자식 방학
엄마의 방학은 이렇구나
최소 요즘 시대는...
나는
시골에서 방학을 맞이해서 그런지
방학이면 일만 하던 계절.
당시
엄마는 일손을 종일 얻는 계절.
아무튼
안 작가님의 방학!
잘 들여다 보았습니다.
삼남매의 방학이 안작가에게
또다른 재미를 줄 것이고, 더 좋은 글을 쓰게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힘내세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집집마다 사정과 양육 방식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 아이
셋을 두달씩 함께 하려면 여간 힘든게 아닐꺼란 생각이 듭니다.
사랑스런 아이들과 늘 즐거운 가정 꾸려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