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猶不及 과유불급
[지날 과/같을 유/아니 불/미칠 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중용(中庸)의 도(道)를 지킨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도리, 진정한 삶의 중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 자세를 중용(中庸)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개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사욕(私慾)이 배제될 수 있는 상황이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창한 철학적인 정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의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고사에서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라는 평범한 구절 속에 우리가 어렵게 지키려고 하는 중용의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유불급"의 출전은 《논어(論語)》〈선진편(先進篇)〉에 공자(孔子)와 제자 자공(子貢)간의 문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다른 제자인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師:자장의 이름)와 상(商:자하의 이름)은 누가 어집니까?"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하니, 다시 자공이 반문하기를 "그럼 사가 낫다는 말씀입니까?"하니, 공자는 다시 답하기를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O 子貢 問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 過 商也 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
논어(論語) 전편을 통해 볼 때, 자장과 자하는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공자는 활달한 기상과 진보적 사고를 지닌 자장(子張)과 만사에 신중하고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자하(子夏) 모두를 중용(中庸)의 도가 부족한 인물로 평가한 것입니다.
過猶不及. 곧 중용의 도를 이야기할 때 잘못 오해하고 곡해(曲解)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색의 논리이고 양비(兩非), 양시(兩是)의 논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학(儒學)에서 이야기하는 "수시처중(隨時處中)"의 논리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수시처중은 "때에 따라서 중도(中道)에 처한다."는 아주 진솔한 논리입니다. 곧 고정불변(固定不變)의 진리란 없습니다. 변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정도(正道)로 올바로 대처하는 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도(道)인 것입니다.
'예(禮)'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 예를 지켜나가는 일은 중요한 것이지만 고루한 형식주의(形式主義)나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빠져 그릇된 가치를 고집하는 일은 과유불급, 중용의 도를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결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또한 "무욕(無慾)"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양의 철학 사상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가(儒家)를 비롯하여 불가(佛家), 도가(道家) 역시 '욕심을 갖지 말라'는 무욕(無慾)의 의미를 사상의 기저(基底)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한자(漢字)의 활용(活用) |
한자 |
독음 |
한 자 어(漢字語) 예 시(例示) |
過 |
(과) |
1) 지나치다 - 過信(과신), 過飮(과음), 2) 지나다 - 過去(과거), 過渡期(과도기), 3) 허물 - 過誤(과오) |
猶 |
(유) |
1) 같다 - 相猶(상유), 2) 망설이다 - 猶豫(유예), 3) 오히려, 4) 원숭이 |
不 |
(불) |
아니다 - 可不(가부), 不當(부당), 不貞(부정), 不恥下問(불치하문) |
及 |
(급) |
1) 미치다 - 及逮(급체), 及第(급제), 及門(급문), 2) 및, 3) 더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