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스 4 - 고린도에서 바울의 비마를 보고 바울교회를 거쳐 점심을 먹다!
2024년 4월 30일 크레타섬 헤라클레이온(이리클리온)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공항 에 내려
X93 버스를 타고 키피소스(Kigissos 터미널 A) 에 도착해 9.3 유로 코린토스행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남쪽으로 달려서 펠레폰네소스 반도 북쪽에 자리한 코린토스에 도착합니다.
우여곡적 끝에 예약한 숙소가 아닌 다른 아파트(연립주택)를 소개 받아 체크인을 하고는, 여행가이드북에
코린토스 Korinthos 버스터미널에 Local Bus 는 20분을 달려 8km 거리 고린도 Ancient Korinthos
에 도착한다고는 했지만.... 버스가 자주 없는지라 센트럴 이라 불리는 프레토리아 광장에서 택시를 탑니다.
택시는 시내를 빠져나와 10여분을 달려서 외곽으로 나가서는 언덕을 올라가니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 10.5 유로를 내고 내려 8유로 하는 표를 끊어
안으로 들어가 먼저 박물관부터 보는데 도자기 들이 수도 많고 모양도 참 아름답습니다.
고린도(코린트) Korinthos 는 BC 5세기에 그리스 3대 도시 국가 중에 하나로 성장해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해 전쟁에 참가했다는데, 세월이 흘러 BC 146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다가 그후 줄리어스 시저가 재건했으며 현재 신고린토스의 인구는 3만명이라고 합니다.
여기 유적지에는 피레네 우물 Fountain of Peirene 이라고 있으니.... 헤로데스 아티쿠스
가 AD 2세기에 지은 식수원인 고대 물 저장고로 현재도 자연수가 솟아난다고 합니다.
강의 신 아소푸스의 딸 피레네는 포세이돈과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잘못 날아온 원반에 맞아 숨지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매일 눈물로 지새다가 결국 그 눈물에 몸이 녹아 그 자리에 샘이 생겼다고 한다나요?
문득 오래 전에 메데이아와 함께 이 도시 코린토스로 도망쳐 왔다는 이아손이 떠오르는
데.... 옛날 터키 남부 지중해에 항구 도시 시데 Side 를 여행할 때도 비슷한
이름인 "시데로 Sidero" 를 생각하면서 이아손이 도망쳤다는 고린도를 생각 했었습니다.
"시데로 Sidero"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살모네의 왕 살모네우스 의 아내 로 전처 의 딸 티로 를 몹시 미워
하였다는데 티로 는 자신의 애인인 강의 신 에니페오스로 변장한 포세이돈에 속아 관계해 펠리아스
와 넬레우스 라는 쌍둥이를 갖자 계모 시데로는 티로를 학대해서는... 결국 아이들을 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티로 는 이올코스의 왕 크레테우스와 결혼해 세아들 아이손, 페레스, 아미타온을
낳는데 버린 자식인 저 펠리아스가 적자인 아이손을 내쫃고 이올코스의
왕위에 올라서는 아낙시비아와 결혼해 아들 아카스토스와 딸 페이시디케를 낳습니다.
펠리아스는 이올코스왕 이 되자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증오 끝에 원인이 시데로 에게 있음
을 알게되니 시데로 는 보복이 두려워 헤라의 신전 으로 숨었지만 버린 자식 펠리아스
에게 목숨을 잃는데 자신의 신전을 더럽힌데 분노한 헤라는 이아손을 시켜 펠리아스를 죽입니다.
아이손 은 펠리아스에 의해 쫃겨나 유배 생활 중에 필라코스 왕의 딸 알키메데와 결혼하여 아들
이아손 을 낳으니 청년이 된 이아손은 이올코스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노파로 변신한 헤라를 등에 업고 시냇물을 건네주다가 샌들 한짝 을 잃어버렸는데
신탁에 따르면 펠리아스는 한쪽 발에만 샌들을 신은 자에게 목숨을 잃게 될것이라 했습니다.
펠리아스왕은 이아손 을 불러 왕에게 음모를 꾸미는 자가 있다면 어떤 벌을 내리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고
이아손은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는 콜키스의 황금양털 을 가져오라고 하겠다고 대답하니 펠리아스는
그대로 할것을 명하자 이아손은 영웅들 을 모아서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 양털을 빼앗으러 원정을 떠납니다.
펠리아스왕은 아르고호가 침몰하여 이아손이 죽었다는 거짓소식을 전하니 아이손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독을 마셨고 알키메데는 펠리아스에게 저주를 퍼붓고 목을 메는데
얼마 뒤 황금양털 을 가지고 돌아온 이아손은 부모의 죽음을 전해 듣고 복수 를 다짐합니다.
이아손의 복수는 그의 아내가 된 마녀 메데이아 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니 메데이아는 홀로 이올코스 궁전
을 찾아가 펠리아스를 다시 젊게 만들수 있다며 왕의 딸들을 설득했으니.... 늙은 숫양을 죽
잘게 썬뒤 끓는 물에 마법의 약초들과 함께 넣고 삶은후 솥뚜껑을 열자 팔팔한 어린 양이 뛰쳐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펠리아스의 딸들은 메데이아가 가르쳐준 대로 아버지를 솥에 넣고 삶았지만 펠리아스는 다시
살아나지 않자 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경악하여 아르카디아로 달아났고 이아손 은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의 보복이 두려워 왕권을 양보 하고는..... 메데이아와 함께 코린토스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는 바오르가 코린트(코린토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2개의 서간이 있으니 고린도전서
와 후서이니.... 기독교 단체는 바오르가 세운 코린트 교회를 보려고 성지순례 여행을
오는데 당시는 교회 건물이 선게 아니라 신앙공동체 였으므로 그 유적을 찾을수는 없습니다.
비마 Bema 는 여기 아고라 광장 중앙에 있는 돌을 말하는데.... 갈리오가 총독으로 있을때 데살로니키
에서 처럼 코린토스의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신성 모독죄로 고발해 재판을 받은 곳이라고 합니다.
돌에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르게 함이니”
라는 고린도후서가 새겨져 있으니... 독실한 크리스챤인 마눌은 그 앞에서 한참 돌을 어루만집니다?
그러고는 유적지를 나와 마을을 구경하면서 반대편으로 걸어서 새로 지은 현대적인 바울
교회로 들어가는데..... 이는 옛날 이스라엘을 전국 일주할때 갈릴리 호수
북쪽 가버남움에 예수의 산상수훈을 기려 팔복교회가 세워진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엣날 이 도시를 찾아 재판까지 받고 박해당했던 바을을 기념해 지은 교회인데 교회 뒷 마당
에는 글씨가 적혀있으니..... 이른바 고린도후서 5장 17절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가 봅니다.
"그런즉 누구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으며,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죄와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거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번 그리스와 몰타 및 로마를 보는 지중해 여행에서 우린 바울의 유적지 서너곳을
보게 되는데.... 첫 번째가 여기 코린토스이고 두 번째는 저 북쪽 테살로니키
서쪽에 작은 도시 베뢰아 Berea(Beroea) 의 강단(바울 계단) 인 비마 Bhema 입니다.
세 번째는 몰타섬에 도착해 섬 북동쪽에 자리한 산파울일바하르 San Pawl il-Baħar - 이니 이 도시 해변에는
로마로 가는 배가 풍랑을 맞아 섬에 표착한 바울이 모닥불을 피운 자리 St. Paui's Bonfire Church 입니다.
도시 이름은 로마로 가던 사도 파울로스(버울) 일행이 타고 있던 선박이 난파된 산파울섬에서 유래된
것이며, 모닥불을 피울 때 바울이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원주민들이 그를
신으로 여겼다는 말이 있으니 전도가 성공하게 되는데 이후 로마도 베드로와 바울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위의 고린도전서는 신약에서 사도 바울로가 쓴 서신 중 2번째로 배치된 서신으로 개신교에서는 '고린도전서'
라고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또는 '코린토 1서' 라고 부릅니다.
발신인은 사도 바울로이며, 기록 장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였던 에페소인데, 16장 8절에서 "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이곳 에페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라고 기록 장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고 또한
16장 19절에도 아퀼라와 브리스카가 거주 하던 곳이 에페소라고 사도행전 18:24-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기록연대는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바울로가 코린도 교회의 어려움을 당시 코린토 교회
의 대표자들을 통하여 듣고 서신을 적은 것을 고려할 때, 기록 연대는 A.D. 55년 전후로 보입니다.
바울로는 본 서신을 과거와 현재의 교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썼으니....
글로에의 집에서 바울로는 당시 고린토 교회에서 발생한 신학적, 실제적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주려 하였고, 이 편지에는 당시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에 보여준 사랑이 나타나 있다.
고린토 교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것이 첫번째 목적인데 고린도 교회 안의 내분,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들, 법정에서 다른 성도들과의 다투는 비그리스도교적 행위 등을 다루고 있다.
사역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분열된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바울로는, 고린토 교인들에게 한 마음
으로 연합할 것을 권면한다. 고린토 교인들 중에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에 오지 못할 것이라며
교만해진 사람들이 있는데, 바울로는 그 사람들의 능력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기회가
되면 고린토 교회로 갈 것이고, 자신이 고린토 교회로 갈 때 매를 가지고 가지 않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위의 '고린도후서' 는 개신교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천주교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이라고 하는데 첫번째 편지를 보낸후 코린토인들에게 좋지 못한 소식을 듣자
바울로는 티토를 시켜 다시 편지를 보내지만 감감무소식이자 직접 마케도니아로
가서 티토를 만나 고린토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나는 근심 가운데에서 고린토 교회에 방문하지 않으려고, 고린토 교회로 먼저 가려던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것은 내가 육신을 따라 행한 일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고린토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행한
일이다. 내가 고린토 교회에게 쓴 편지 는, 내가 장차 고린토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근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고린토 교회 교인들에게 교회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 환난 가운데에서 눈물로 쓴 편지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고, 우리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된
현재의 고린토 교인들이 곧 육체의 마음판에 성령으로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이것을 보증한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성령은 살리는 것인데, 율법으로 된 언약의 직분에도 큰 영광이 있었다면,
성령의 직분에는 그것보다 더욱 큰 영광이 있고, 이전의 영광은 더 이상 영광스럽지 못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 교회 교인들은 극심한 가난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자진하여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헌금을 풍성히
모았다. 이들의 열성을 본받아, 여러분도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해왔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
모으는 일을 잘 마무리해 여러분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고 형편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하라.
그러고는 바울 교회를 나와서는 마을로 들어가 몇군데 레스토랑을 둘러보고는
그 중에 한 곳으로 들어 가서는 오징어 구이와 문어 구이등을
주문하고 맥주를 시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요금은 모두 21유로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