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14-27절 아이 속에 들어간 귀신을 내쫓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능력은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때로는 인간의 질병을 고치시는데서 나타나고 때로는 자연만물을 다스리시는데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귀신들을 내쫓으심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놀라운 능력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능력만 있어도 그것을 통해 자신을 크게 보아길 원하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가운데 자기애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능력도 나이를 먹으면 점점 더 줄어들어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인간 세상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능력은 다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영원하신 능력이라고 증거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들에게 보이던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통해 보여지고 증거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교회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세 제자와 함께 내려오셔서 나머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서 보니까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제자들의 잘못된 점으로 보이는 어떤 것을 지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에게 뜰린 귀신을 제자들이 내쫓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희는 왜 내쫓을 능력도 없으면서 내쫓는다고 큰 소리쳤느냐?”고 했을 것이고 제자들은 나름대로 변명했을 것입니다.
누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와 서로 너희는 왜 못 쫓아내느냐를 변론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사에 흔한 일들입니다. 정치나 학문이나 도덕이나 종교나 철학 외에도 각양 각 분야에서도 이런 일들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변론하는 사람은 많지만 해결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말하는 능력은 있지만 해결하는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류역사가 말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론들로 가득차 있지만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주는 명확한 답변이 제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보이는 이론을 어떤 사람이 주장하면 얼마 안있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람들은 그 이론에 열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수많은 가르침들이 엎치락 뒤치락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안에서 열심히 달리면 조금 위로 올라가는 것같다가 다음에는 뒤로 그 만큼 올라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멈추면 다시 제자리인 것처럼 인류의 수많은 이론들과 다르침들이 능력없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과 서기관들의 변론을 보고 있다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달려와 예수님께 문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면서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무리중 하나가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가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제자들만 보여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으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귀신은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한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믿음이 없는 세대여”
누가 믿음없는 세대일까요? 예수님은 누구를 보고 이런 말씀을 하시고 계신가요 제자들과 거기 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기도해야 하는데 그들은 스스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능력은 행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아이 속에 들어있는 귀신을 내쫓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귀신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파송하셨을 때 온 동네를 다니면서 귀신들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쳐보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자 아이안에 있던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곧 그 아이로 하여금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땅에 엎드러져서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합니다. 우리 2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면서 말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믿는 다고 하면서 믿음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하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가 달려와 모아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 말씀을 들은 귀신은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아이가 귀신으로부터 놓임받게 된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들이 기도했는데 그 상황은 더 최악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황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나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 그 능력이 한이 없이 크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곤고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믿음으로 구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께 구하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냥 구하면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할 때 구하면 응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구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