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의 제2이동통신 포기권 소식이 알려진 1992년 8월 24일 이동통신 사업을 추진해 온 서울 서초동 서광빌딩 9층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에는 포기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6공 최대의 이권사업으로 갖가지 시비와 논란 속에 관심을 끌었던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 사업권이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에 돌아갔다.
체신부는 20일 선경, 코오롱, 포철 등 3개 그룹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 신청자에 대한 2차 심사결과를 발표, 선경이 지배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이 최고점수를 획득해 사업자로 최종선정됐다고 밝혔다.
무선호출 부문 신규사업자로는 수도권의 서울이동통신(지배주주 단암산업)과 나래이동통신(삼보컴퓨터)을 비롯, 전국 9개 사업권역별로 모두 10개 법인이 선정됐다.
체신부는 특정지역(서울)의 통신망 건설능력과 전기통신 발전을 위한 계획을 주로 평가한 2차 심사 결과 선경이 1만점 만점중 8천3백88점을 받았으며, 포철이 7천4백96점, 코오롱이 7천99점을 각각 얻었다고 밝혔다.
모두 36개 항목에 걸친 최종심사에서 선경의 대한텔레콤은 외국 참여업체와의 기술협력 계획 분야에서만 코오롱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뿐 나머지 35개 항목에서는 모두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8월 27일 선경그룹은 논란을 빚어온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이동전화 주사업자로 선정된 대한텔레콤의 손길승 사장(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 겸임)은 선경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통신 사업권 포기를 선언한데 이어 체신부에 대한텔레콤 명의로 이동전화사업 추진포기 통고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20일 체신부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이후 야기된 여론 악화와 여권 내 분열 등 사태가 대한텔레콤의 사업권 포기로 완전히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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