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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맺는 달☜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2)
행17:1-18:17절)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
우리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면서 믿지 않는 자가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복음을 전하면,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심 많은 제자 도마에게 요20:29절)...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도전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제 멋대로 살 것입니다. 즉 머리가 좋고 힘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 그곳의 중요한 몇몇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만난 그리스 사람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도시가 아테네와 고린도였습니다.
아테네는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지성(知性)의 도시였습니다. 즉 공부도 가장 많이 했고, 생각도 가장 많이 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테네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복음(福音)에 대하여 가장 차가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다른 도시 보다도 반응이 없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도 적었습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리스 문명이 망(亡)할 수박에 없었던 이유를 *바울의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새로운 것만 받아들이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이‘부활(復活)’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제대로 반응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곧 지식인들이 갖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즉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에 대해서는 반응하지만, 자기들의 영혼(靈魂)을 뒤엎어놓을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것은 모른 척 했고, 슬쩍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결국 아테네에는 바울이 복음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린도는 아테네와 그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 들어가면서, 고린도에서의 복음 전파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사람들은 가장 세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종교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들어가면서 고전2:3절)...내가 심히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종교성이나 지식이나 인종 같은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복음의 생명의 씨가 마음 밭에 떨어졌을 때, 어떤 사람은 잘 믿을 것 같은데, 완강히 거부하고, 오히려 끝까지 반대하면서 대적(對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은데, 놀랍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18장 앞부분까지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 몇몇 도시, 즉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도시마다 사람들의 특징과 반응이 모두 달랐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행18:9절)...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면서 10절)...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Ⅰ.가장 반대가 심했던 도시
사도 바울은 빌립보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는 그냥 지나가기만 하고, 그 도시에서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17:1절)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걸었던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로가 있습니다. 이 도로가 그 유명한 에그나시아가도로서 로마가 닦은 도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의 시대가 오기 전에 먼저 많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후, 전파될 복음을 위한 사전 작업을 모두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우선 바벨론 제국을 들어 예루살렘을 깨뜨림으로써 그 단단한 껍질을 벗겨놓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 내에 여러 곳에 회당을 만들었는데, 그 회당이 복음을 전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대와 파사의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켜서 성전을 짓게 하는데, 거기서부터 성령의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또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전 세계를 헬라어로 통일시켰는데, 복음이 헬라어로 전달되게 됩니다. 즉 로마 안의 모든 도시가 헬라어를 사용했으므로 헬라어에 능통했던 사도 바울이 언어의 어려움 없이 로마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로마는 세계를 통일해서 국경을 없애고, 그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도로를 닦아놓았는데, 사도 바울은 그 도로를 따라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다분히 전략적(戰略的)인 데가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복음 전하기보다는 그래도 준비된 사람들 중심으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좀 더 빠른 시간에,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넓은 지역에 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전략(戰略)을 충족시키고자, 어떤 대상보다도 가장 복음에 준비가 잘 된 공동체로 인식되었던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유대인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겨냥해서 복음 전파를 한 듯합니다.
바울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는 그냥 지나쳐 간 이유도 이곳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인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복음을 전할 대상자로는 경건한 이방인들이었으며, 그 다음 지식인들, 그리고 나머지 가장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대상으로 술이나 퍼 마시고, 돈이나 좋아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난 반응은 그가 생각한 갓과는 전혀 딴 판이었습니다. 복음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경건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이들이야말로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복음을 잘 빨아들였던 집단은 전혀 복음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던 세상적인 사람들 즉 술이나 퍼 마시고, 음란하게 살던 고린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거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당의 유대인들은 오히려 복음의 원수(怨讐)가 되어 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못 하도록 그 도시에서 쫓아내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적으로 가깝거나 혹 성경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후, 처음 복음을 전한 도시는 데살로니가 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아의 수도이며,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은 곳이었습니다.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한 것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 비유(比喩)한다면, 난산(難産)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유대인들의 극한 반대와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 간지, 3주 만에,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어렵게 겨우 복음 전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후에는 아주 튼튼한 교회로 성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보낸 두 개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을 예(預)로 들어 설명하자면, 어떤 집에서 아이를 낳을 때, 만삭(滿朔)되지 못해서 조산(早産)을 하게 되었다면, 처음은 이 아이가 몸무게도 미달이고, 모든 부분이 미약해서 도무지 살 것 같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고 나니까 아주 머리도 좋고, 똑똑하고, 훌륭한 청년이 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겨우 3주 정도, 그것도 안식일에만 말씀을 전했으므로 복음을 전한 기간은 겨우 3일 정도 였습니다. 급기야는 밤에 보따리를 싸서 도망 나왔는데, 바울이 도망 나온 후에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과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당시 경제권(經濟權)은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잘못보이면, 장사를 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아주 신실하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사도 바울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한 진리의 말씀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갖는 위력입니다.
17:2-3절)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여기서‘성경(聖經)’이란 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아마 히브리 성경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 안식일 동안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대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즉 성경에 예언한 메시야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정치적(政治的)영웅을 기대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대했는데, 성경이 말씀하신 메시야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받는 메시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메시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틀림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모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나라에 따라서는 안전한 나라도 있고, 불안전한 나라도 있겠지만 사실 모든 인간들은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입니다.즉 인간들은 모두 죄로 인하여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길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조하는데 전문가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일단은 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오래 계속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씀을 들은 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이제부터 무조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만 듣고 살아가자는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17:4-5절)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가장 뜨겁게 이 복음을 받을 것 같은 유대인들은 시기심과 분노가 가득 해서 복음을 맹렬하게 대적했고, 잘 믿을 것 같지 않던 헬라인과 귀부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믿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욕을 보는 사람은 야손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이끌려 읍장(面長)에게 가서 고발을 당하였는데, 결국 야손은 ‘보석금(保釋金)’을 내고 풀려나게 됩니다.아마 바울을 야손의 집이나 아니면. 그 읍(面)에서 내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내는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결국 데살로니가에서 야반도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번에 우상(偶像)을 모두 다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고, 아무리 유대인들이 반대하고, 핍박을 해도 이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이렇게 복음을 미워하고 반대했을까?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공로(功勞)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앙을 자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努力)하고, 공로(功勞)를 많이 세웠습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공로(功勞)가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헬라인들과 자신(유대인)들이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불쾌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들이 믿고 난 후, 더 기뻐하고,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즉 이런 성령의 역사는 자기들에게만 나타나야 하는데, 자기들은 맨숭맨숭한데,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이방인들은 울고, 소리를 지르고,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기적이 일어나니까 도저히 그 신앙을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상(高尙)하고, 수준 높은 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낮은 자리로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갖고 있는 교만(驕慢)의 옷을 찢어버리고, 무식하고 가난한 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면, 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교만(驕慢)한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해야만 은혜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Ⅱ.가장 신사적인 도시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빠져나와 간 곳은 베뢰아 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뵈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또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신사적(紳士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7:11-12절)뵈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뵈뢰아 사람들은 아마 성품 자체가 과격하거나, 변덕스럽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이들은 순한 사람들이었고, 마음 밭이 돌 짝이나 길가 같이 딱딱하지 않았습니다. 이들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순순하게 잘 받아 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베뢰아사람들과 오래 동안 말씀의 교제를 나누고 싶어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탄(詐誕)의 방해는 바울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알고는 쫓아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싸인(sign)입니다. 예수님은 *한 도시에서 복음을 반대하면, 자기가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다른 도시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굳이 한 도시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Ⅲ.가장 지적 수준이 높은 도시
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지적(知的)으로 수준이 높은 도시는 단연 아테네였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세계는 정복했지만, 지적(知的)으로는 아테네에 오히려 정복을 당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베뢰아에서 배를 타고, 남쪽에 있는 아테네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때,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겨두고, 바울 혼자 가게 되는데, 아마 이곳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전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바울의 아테네 전도는 그야말로 기독교와 헬라 철학의 대격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아테네 전도는 기대한 것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즉 아테네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아테네의 실패’ 라고 평가했습니다. 사실 아테네 사람들은 아예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곧 지성인(知性人)들의 위선(僞善)입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아테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상(偶像)들을 보고, 마음속에 분노(忿怒)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17:16-18절)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피쿠르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아테네 사람들은 신(神)을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올림포스 산에는 많은 신(神)들이 사는데. 그들은 인간들처럼 사랑하고, 시기하고, 싸우면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아테네 시(市)에는 많은 신상(神像)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아테네에서 효과적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첫째는 회당에서는 유대인 중심으로, 둘째는 거리에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리고 셋째는 아레오바고라는 언덕에서는 연설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분위기는 냉랭하여 마치 바울을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구경하는 분위기였습니다.아테네는 이런 학문적(學問的)인 교만(驕慢)으로 가득 차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만(驕慢)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사탄(詐誕)이었습니다. 즉 아테네는 지식(智識)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곳이었지만, 영적(靈的)으로는 가장 어두운 흑암의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리스철학의 그 유명한 두 학파가 나옵니다. 즉 에피쿠르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입니다.에피쿠로스학파는 인간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禁慾主義)를 지향하는 학파였습니다.
그리스의 이 두 학파 철학자들이 드디어 가장 뛰어난 이론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말쟁이라면서 *이방신을 전한다는 식으로 진지하게 듣지를 않았습니다.
17:21절)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지식(智識)을 찾아 아데네에 왔고, 매일 새로운 것만 들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의 복음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세상적 지식(智識)들이 그들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는 신(神)을 23절)...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상’을 만들어 세워놓았습니다. 즉 그들은 신(神)을 많은 상상력(想像力)을 발휘해서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신상(神像)이나, 부처를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놓고 절을 하고, 공(公)을 드릴까?
그것이 돌이나 쇠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향한 자신들의 정성과 종교적인 감정만은 순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성경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장 반발하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이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시고, 우리보고는 믿기만 하라고 하시니, 결국 인간들은 로봇이냐? 는 것입니다.이때 바울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분도 아니시고, 그래서 집에 거하시는 분도 아니라고 했습니다.오히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우리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라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내버려 두셨지만, 이제는 모두 다‘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과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審判)에 대하여 증거 했습니다. 그러나 아데네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Ⅳ.가장 세속적인 도시
가장 세속적(世俗的)인 도시는 고린도였습니다. 원래 바닷가 항구는 술집도 많고, 퇴폐적(頹廢的)인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양쪽에 항구가 있습니다. 즉 고린도는 항구 두 개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가 얼마나 타락(墮落)한 곳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고린도 인(人)’하면 옛날에는‘음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될 정도로 음란(淫亂)한 도시 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神殿)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창녀(娼女)천명이 신전(神殿)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지성적(知性的)인 도시인 아테네에서 별 부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환락(歡樂)의 도시를 보았을 때, 과연 이 도시가 예수 믿을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2:3절)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놀라운 확신을 주셨습니다. 18:10절)...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놀라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인 카페에 저정된 *진리의 복음*을 원근 각처와 열방에 전하므로
믿음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으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오늘의 묵상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6:4)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創立member] (마28:18-20/롬8:28)
하나님의 은혜의 빚진 38개 셀(cell)공동체는 매일 죄와 허물로 열방의 죽어가는 소중한
생명을 멸망에서 구령(救靈)할 사명이 있습니다. 씨뿌리고. 잃은영혼찾고. 성례전과 수련회하기에 적합한 동탄 황금어장(漁場)에 교갱원 설립할 創立member를 찾습니다.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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