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와 소원을 외면하시면 그보다 무서운 공포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14장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예루살렘이 치유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려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선 1~10에서는 참혹한 가뭄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가 나옵니다. 귀인들도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지만 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들의 암사슴도 새끼를 낳아봐야 풀이 없자 새끼를 버립니다. 들 나귀들도 헐떡이면서 물이 없자 눈이 흐려지는 고통을 겪습니다. 총체적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7~9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탄식하며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들이 당하고 있는 가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한 일로 찾아온 심판이요 징계입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며 타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들이 범죄했다고 자복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슨 기도를 더 드릴 수 있습니까?
그래도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부르짖습니다. 7절에서는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라고 했고, 9절하에서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를 고백하면서 시인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이 백성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8절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당한 때의 구원자”라고 합니다. 9절중에서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나름대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소망이시고 구원자이심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로 자기들에게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같은 자요 구원치 못하는 용사와 같은 모습이실 뿐입니다. 그들의 소망이 되시고 구원이신 하나님이 참혹한 가뭄의 현실 속에서 방관자가 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절망은 이런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무서운 것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날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