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상박(龍虎相搏)
매년 이맘때가 되면 프랑스 롤랑가로스에서 테니스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는 영국의 윔블던 대회와 더불어 세계 4대 그랜드슬램의 하나로 유일한 클레이코트이다. 세계 100위 권의 남녀 선수와 예선전을 거친 선수들이 참가하며 토너먼트로 치러진다.
실력이 상위권에 있는 선수는 시드 배정을 받으며 하위권에 있는 선수는 1회전부터 시드 배정을 받은 상위권의 선수들과 겨루어야 하므로 1회전 통과부터 난공불락의 고초를 겪는다. 대개는 상위권의 선수가 올라가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가끔 이변이 일어나는 경기도 있다.
1회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맞붙은 선수는 세계 2위의 메드베데프(27세 러시아)와 예선전을 거쳐 올라온 무명의 세이보스 와일드(23세 브라질 174위)의 격돌이었다. 예상 밖의 경기가 펼쳐졌다. 객관적으로 추측하면 메드베데프가 쉽게 이길 것으로 여겼지만 흐름은 진퇴양난의 용호상박이었다.
경기 내내 가슴을 조이게 했다. 풀 세트 경기(다섯 경기)를 치렀으며 무려 4시간을 넘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첫 게임과 둘째 경기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면서 1승씩 주고받았다. 셋째와 넷째 경기는 서로 가볍게 1승씩 주고받았다. 세트 스코어 2대 2 박빙의 경기로 예측불허의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녁 8시 넘어 시작한 경기가 자정을 넘겨 마지막 승부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야심한 밤에 선수도 아니면서 뛰는 선수처럼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곤 했다. 서로 주고받던 경기가 5대 4로 세이보스가 앞서 나갔다. 결국에 메르베데프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6대 4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로 승부를 떠나 멋지게 연출한 한편의 스릴 넘치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짜릿한 명승부였다.
나는 이 경기를 보면서 영원한 우위는 없다는 것을 느꼈으며 경전의 말씀이 떠올랐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 무명의 선수가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겠는가. 그 값진 노력이 오늘의 영광을 안았으며 이 대회를 통해 우뚝 서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처럼 노력 여하에 따라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어른 같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이 같은 어른도 있으니 말이다. 또 ‘학교의 우등생이 반드시 사회의 우등생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이는 학교에서의 배움이 끝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해서 게으른 능력보다 성실한 노력이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