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의 「정지의 힘」 감상 / 김경복, 채상우
정지의 힘
백무산 (1955~)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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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가치는 생명을 파괴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데에 있다. 그러려면 힘은 관계의 파괴에 능할 것이 아니라 대상과 자신의 균형을 맞춰 공존하게끔 만드는 데에 있어야 할 것이다. 직진과 돌파보다 원만과 조화로 만물을 기운생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이러한 힘은 일면적 인식을 벗어난다. ‘기차를 세우는 힘’으로 ‘기차는 달릴’ 수 있다고 했을 때 이는 인식의 전환, 즉 역설적 사유를 의미한다. 생각을 입체적으로 하고 시선을 전(全)방위에 둔다는 뜻이다. 그럴 때 ‘멈추는 힘’이 ‘달리는 힘’이 된다. 멈출 수 있는 힘이 곧 생성의 힘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이를 ‘씨앗’에서 발견하고 있다. 씨앗이 가진 정지의 힘은 확산의 힘으로 나타나는 줄기, 꽃, 열매 등의 한 세계를 창조한다. 그렇게 보면 부조리함을 정지시키고자 하는 민중의 힘이야말로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생성의 힘이다. 김경복 (문학평론가) 흔히 사람들은 계속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안심한다. 그래야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어쩌면 성공할 수도 비로소 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약간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내처 달리고 달린다. 기차가 달리듯이 버스가 달리듯이 자전거가 달리듯이 달리고 달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리듯이 씻고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또 일한다. 일하고 나서 회식을 달린다. 회식을 달리고 나면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달려가서 러닝머신 위를 한참 달리고 달리듯이 양치질을 하고 잠을 청한다. 잠도 칙칙폭폭 잘도 달린다. 그래야 내일 다시 일어나서 일을 할 테니까,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어제처럼 일어나 다시 달려야 하니까. 이유도 모르고 갈 바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어쩌면 이유가 생길 때까지 갈 데가 생길 때까지 어딘가로 휭하니 갈 수 있는 여유가 마련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저 달리는 기계다. 저 시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시간 위를 달리는 기계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프랑스혁명 때 시민들이 가장 먼저 부순 건 시계탑이었다고 한다. 채상우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