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행복한 세상
송순자
구불구불한 S자 길이 많은 강원도 산길, 화천 길은 더욱 심한 곳인데 오늘 약속이 잡혔다. 오전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고 말한다. 남편의 근심으로 가지 않기로 하고 대여한 책을 가져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눈이 5 센티 정도 쌓인 길에 누구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길에 혼자서 발자국을 내면서 가는 것이 순백의 옷을 더럽히는 느낌이 들었다. 얼음으로 뒤덮인 빙판에 흰 곰 한 마리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랄까 어쩜 사람 흔적 하나 없단 말인가. 물론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는 자동차의 바퀴 자국으로 도로는 냇물 흐르듯이 도랑 져 흐르고 있었다.
마치 도서관은 ‘휴관일’이었다. 이틀간 대청소를 한다는 이유를 달아놓았다. 반납기에 책을 반납했다. 다른 이도 되돌아가고 나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 나왔다. 아들과 아버지인 것처럼 보이는데 쌓인 눈을 모아서 언덕을 만들고 눈 언덕 속을 파서 터널을 만들면서 아버지와 아이가 놀고 있었다. 거리에는 눈이 온다고 좋아라 하는 아이들도, 강아지도 없는데 두 사람만이 나와서 놀고 있다. 아버지도 아들도 단단히 추위에 대비해 옷을 입기는 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아이에게 “얘야 넌 참으로 행복한 아이구나.”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말없이 눈을 퍼서 조각을 만들기에 바쁜 모습이다. 아이아버지에게 “어릴 때 아버지가 이렇게 놀아주었나요?” 물으니 “아유 그럴 리가 있나요. 저 어릴 때 아버지는 일만 하셨고 저희들 하고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배운 대로 하거나 받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눈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에 아이아버지가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한다. 마치 자신의 집에 방문했던 사람이 돌아갈 때 하는 인사를 밖에서 한다. “네! 놀다 들어가세요.” 대답해주고 집으로 가는 길에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걸으며 집으로 갔다.
어린시절 부성애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 본인 자녀에게 놀아주는 아버지로 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참 멋진 아빠다. 아이는 눈이 오면 어린 시절 아빠하고 놀았던 것을 추억으로 떠올리며 행복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이 아픔 없이 성장하는 아이들의 성격이 유연하다고 말한다. 긍정적 사고와 행동으로 대인관계도 원만하여 사회생활에서도 탁월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간다는 이론도 있다. 당연한 결과일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티 없이 자라야 한다. 아이들이 미래의 꿈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눈이 많이 오지 않고 오더라도 금방 녹아 없어져 눈이 오면 아이들이 모두 집 밖에 나와서 눈을 모아서 작은 언덕을 만들어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놀기도 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놀다 보면 눈은 녹아 없어져 아이들 옷이 붉은 흙투성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없었다. 아이도 부모도 힘든 시절을 보냈던 시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름 어린 시절이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은 많지 않았지만, 친구들과의 놀이는 참 많았던 시절이었다. 고무줄놀이하면 남자아이들이 끊어먹고 달아나기 일쑤고 공기놀이하면 공기돌 하나 들고 달아나고 그것을 찾겠다고 잡으러 가는 일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달아나고 쫓아가며 넘어지고 다치고 피 흘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겁 없이 놀았던 시절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집에서 학원으로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모두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들과 다름이 없다. 친구가 없기 때문에 학원에 간다는 말도 한다. 이 어이없는 아이들의 세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경쟁과 시기심이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염려된다. 아빠와 아이만 나와서 눈을 쌓고 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아이들 세계인가 보다.
강원수필문학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