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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amu.wiki/w/%EC%B9%B4%ED%86%A0%20%ED%86%A0%EB%AA%A8%ED%9E%88%EB%A1%9C
일본의 살인범.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생애
1982년 9월 28일에 아오모리현 고쇼가와라시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남동생은 둘째이며 1986년생이다.
인적 사항
1982년, 일본의 아오모리현 고쇼가와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들 카토 토모히로에게 엄격하고 강하게 공부를 시키면서 심하게 대했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못하면 매타작과 인격적인 모욕을 일삼았고,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집에서 맨발로 쫓아내는 등 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줬다고 한다.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말처럼 어머니도 그와 똑같이 유년기에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다르게 어머니는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굉장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흉악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카토 토모히로의 남동생 역시 똑같은 학대를 받았지만 극복해서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형의 범행 때문에 멀쩡하던 동생의 인생까지 망가졌다.
아무리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의 범행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가족
일본은 타인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메이와쿠 문화가 매우 강한 데다가 대한민국과 달리 헌법에 연좌제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어서 범죄 가해자의 가족이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강도가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일본 유명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2011년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등 이러한 범죄자 가족의 피폐해진 삶을 다룬 창작물도 있다.
그의 가족도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는데, 외할머니는 충격으로 사망했고, 남은 가족들은 두꺼운 커튼을 치고 전기불도 켜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이사를 하며 숨어 지냈다.
동생인 카토 유지(가명)도 회사 앞까지 기자들이 진을 치는 통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자, 지방으로 내려가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 퍼진 개인정보 탓에 금세 흉악범의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져 해고되거나, 동료들의 압박 및 싸늘한 시선을 견디다 못해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었으며, 고향이나 형제 관계 같은 평범한 질문에도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점차 사람들에게서 고립되어 갔다.
1년 후 어쩌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좋은 여자와 만나 연애를 했지만, 상대 가족의 완강한 반대로 결혼은 무산되었고, 여자 역시 계속되는 반대에 지친 나머지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사건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따뜻함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점차 사람들에게서 마음을 닫고 사회에서 고립되어 갔으며, 그 와중에도 계속 형을 면회하려고 50번이 넘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6년 가까이를 고통받던 그는 마지막으로 250장 가량의 수기를 작성해 한 잡지사에 보냈다.
그로부터 1주일 후인 2014년 4월 11일, 향년 28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동정론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언론의 기사 비슷한 사례로는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와 사세보 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자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자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던 것이 유명하다.
동생이 자살한 뒤에도 카토는 사형당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카토가 사망한 뒤 다시 한 번 가족의 근황이 알려졌는데, 그 사이에 부모는 이혼했고, 카토 토모히로를 그토록 학대했던 어머니는 정신질환자가 되어 폐쇄병동을 전전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신용금고에서 해고당한 데다 계속해서 걸려오는 비난 전화를 이기지 못하고 전화는 물론, 전기마저도 끊고 은둔 생활을 한다고 전해졌다.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당시 아키하바라는 휴일이었고 보행자 천국 이벤트(歩行者天国)[3]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운 휴일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12시 35분경, 츄오도리(中央通り 중앙거리)에서 2톤 트럭이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5명을 그대로 덮쳤다.
(이로 인해 후지노 카즈노리, 카와구치 타카히로,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심하게 다쳐 사망하였다.)
트럭 운전자는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로 돌진해서 부딪친 후, 차에서 내렸다.
경찰관과 행인들은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인 줄 알았고,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러 근처로 다가왔다.
이 때 범인은 준비해 둔 단검을 빼들어선 괴성을 마구 질러대며 눈 앞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코이와 카즈히로, 미야모토 나오키, 미츠이 미츠루는 이때 찔려서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사했다.)
테러범은 도주하였지만 출동한 경찰관 오기노 히사시(荻野 尚)에 의해 사토무센 본점(サトームセン本店) 앞에서 붙잡혔다.
오기노는 맨 처음엔 진압봉으로 대응하다가 범인의 칼에 찔렸지만 방검복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았고 이후 권총을 뽑아서 겨누자 범인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단검을 버리며 투항했다.
이는 불과 10여 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초 피해자 무토 마이는 교통사고라고 생각해서 도와주러 갔다가 카토가 휘두른 칼에 배를 찔려 살해당했고 거리에서 메이드 복장으로 아르바이트 중이던 여성, 핸드폰 가판대 아르바이트 등 근처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도 변을 당했다.
범인은 당시 25세였던 아오모리현 출신 카토 토모히로(加藤智大)로, 기후현의 단기대학을 졸업한 후 경비원·자동차 공장, 주택자재회사의 비정규직 직원, 트럭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던 사람이었으며, 당시에도 하청업체 공장 비정규직으로 재직하던 중 정리해고를 당하고 도요타의 하청 공장인 간토자동차공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의 렌트카 업체에서 렌트한 트럭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은 서바이벌 나이프 외 5개의 나이프와 삼단봉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사건 이틀 전 밀리터리 수입잡화점에서 구입한 걸로 밝혀졌다.
사건 자체는 2005년 센다이에서 일어난 트럭 폭주 사건에서 범행에 트럭이 이용된 점, 그리고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카나가와 마사히로가 츠치우라 연속살상사건(土浦連続 殺傷事件)을 저지르면서 트럭과 나이프를 이용한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범인은 2ch(현 5ch)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게 되자, 결국 6월 8일 새벽 5시 21분에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일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차로 사람들을 치고, 차를 쓸 수 없게 되면 나이프를 사용할 겁니다. 모두 안녕"이라는 내용이었다.
범인이 작성한 스레드와 그와 관련된 2ch 스레드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당시 다른 2ch 유저들은 범인을 향해 '낚시하지 마라', '할 용기도 없으면서',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자극했다.
(훗날 2015년 미국에서 일어난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범인이 4chan에 예고글을 올리자, 게시판 스레드에 있던 다른 이들이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2010년 1월 8일, 1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 과정이 길고 긴 걸로 유명한 일본 법정의 관례로 봐선 이 사건의 재판도 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례적으로 5년 만에 끝났다.
범인은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2011년 3월 24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으로 미뤄 보아 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항소해서 2심 재판이 이어졌다.
국선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당연히 인정되지 않았고, 2012년 9월 12일 도쿄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죄질이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그대로 사형 판결을 유지했다.
동년 9월 25일 변호인이 상고했으나, 2015년 2월 2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3심까지 간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재판 개시로부터 5년, 사건 발생으로부터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사형이 확정됐다.
사실, 이보다 피살자가 더 적은 사건이라도 사형이 쉽게 내려지는 판이니 예상된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법부는 정상참작의 사유가 없으면서 2명 이상을 살해한 자는 예외 없이 사형 판결을 내려왔다.
범인의 죄목인 대량살인이 워낙 흉악하며 범인이 자신의 죄만 인정하지 반성하지도 않는 흉악범이라서 그가 사형을 선고받은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가야마 기준)
결국, 범인 카토 토모히로는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지 14년 만인 2022년 7월 26일 오전 사형이 집행되어 향년 39세로 사망했다.
워낙 죄가 흉악한 터라 그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 일본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망자 명단 및 사인
트럭 뺑소니
나카무라 카츠히코(中なか村むら勝かつ彦ひこ)
74세 남성, 도쿄도 스기나미구, 치과 의사 은퇴
사인: 둔상에 의한 흉부대동맥 파열, 전신에 걸친 다발성 외상
후지노 카즈노리(藤ふじ野の和かず倫のり)
19세 남성, 사이타마현 쿠마가야시, 도쿄전기대 2학년
사인: 외상성 뇌손상, 전신에 걸친 다발성 외상
카와구치 타카히로(川かわ口ぐち隆たか裕ひろ)
19세 남성, 치바현 나가레야마시, 도쿄정보대 2학년
사인: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손상
칼
미야모토 나오키(宮みや本もと直なお樹き)
31세 남성, 사이타마현 와라비시, 회사원
사인: 폐 관통상으로 인한 과다출혈, 흉부 자상
코이와 카즈히로(小こ岩いわ和かず弘ひろ)
47세 남성, 도쿄도 이타바시구, 무직
사인: 유족의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음
마츠이 미츠루(松まつ井い 満みつる)
33세 남성, 가나가와현 아츠기시, 요리사
사인: 동맥 손상으로 인한 실혈사, 복부 자상
무토 마이(武む藤とう 舞まい)
21세 여성, 도쿄도 키타구, 도쿄예대 4학년
사인: 대정맥 외 다수 장기손상으로 인한 실혈사, 복부 자상
사건 이후
사건은 이후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비정규직 출신의 범행'이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찰이 있었는가 하면, 인터넷상에서는 심화되는 일본의 빈부격차, 양극화와 관련해서 극단적 커뮤니티 5ch(사건 당시에는 2ch)를 중심으로 그를 "격차사회의 영웅"으로 떠받들기도 했다.
당장 일본 웹에서 카토 토모히로의 이름과 영웅이라는 한자를 같이 검색해 보면 일본 정부를 마구 비난하면서 일반인들이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으니 신이라느니, 일요일에 아키하바라를 거니는 "인생의 승리자"인 젊은 놈들을 응징함으로써 인생의 패배자들의 한을 널리 알렸다느니 따위 등의 스레드들이 내걸렸던 것을 볼 수 있으며출처, 2ch에서는 메이드가 메이도(冥土, 명토)로 갔다느니 하는 고인드립 및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과 대치하는 사진을 스타워즈 제다이 검술대결로 합성한 고인드립성 합성사진까지 돌아다녔다.
아예 일부는 이 사건을 누명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인이 갖고 있던 동인지에 동방 프로젝트 동인지도 포함되어 있었고, 범인이 사건 당일 자기 친구에게 해당 흉기인 나이프를 보여주면서 "이게 동방에서 사용되었던 나이프다." 라는 발언을 했음이 드러나면서 아무 잘못도 없는 동방 프로젝트까지 언론에서 비난받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키하바라와 동방의 이미지는 꽤나 안 좋아졌다.
이 사건 이후, 나이프에 대한 단속도 철저해져서 나이프 휴대는 상상도 못 하고 심지어 빅토리녹스(통칭 맥가이버칼)조차도 휴대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약 6개월 전인 2007년 12월에 일어난 사세보 스포츠센터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총기규제 강화가 논의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런 상황에서 이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총기뿐만 아니라 나이프를 포함한 도검류 규제까지도 포함된 총기 및 도검류 규제에 관한 개정 법안이 제출, 통과되어 시행되었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불온한 키워드(살인, 자살, 로리 등)를 감시, 수집하는 예고IN도 이 사건 때문에 제작되었다.
카토 토모히로는 2017년에 사형수들의 그림 전시회에 답답할 울(鬱)자를 A4용지 81장에 빼곡히 써서 아이돌 마스터 극장판 포스터를 만들어 출품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7년 전 같은 날인 2001년 6월 8일에 이케다 초등학교 무차별 살상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매년 6월 8일이면 두 사건이 동시에 언급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범인이 이 사건도 의식했다는 설도 나왔다.
사건 10년차를 맞아 추모 행렬이 있었다.
첫댓글 공부를 조금이라도 못하면 개맞았는데 어케 지방전문대를 들어갔지
ㅋㅋㅋㅋㅋㅈㄴ맞고 걍지방대갓나봐
사형때린거 속시원하다 한국이라면 아직 감옥이겠지
동생 불쌍하다 에휴
이런 거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22 생각이 많아지네
그러게....
어우 애비는 끝까지 회피형이네
동생이 죽었다고 소식전해들을수있나? 뭔 감정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