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가족 25-2, 할머니의 무
전성훈 씨와 차에 오른다.
내비게이션에 ‘봉전마을회관’을 입력한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는 어느 마을회관을 찾아가면 된다고 들었는데,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고 한참 헤맸던 기억이 있다.
이제 최근 검색한 장소가 나열된 목록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물론 ‘봉전’도 기억할 수 있다.
1.
“할머니!”
“아이고, 훈이 왔나? 그래, 그래. 선생님도 왔네. 들어와요.”
“네에. 네에.”
며칠 전 통화하며 약속한 점심때에 맞추어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마당에 들어선 손자를 보고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여느 때와 같은 풍경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이 걸어간 자리 옆이며 마을 곳곳에 내려앉은 하얀 눈이 운치를 더한다.
동행할 때마다 관념상의 ‘할머니 댁’이 있다면 꼭 이곳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훈이 잘 지냈나? 할머니 보고 싶었나?”
“네에.”
“뭐라고? 할머니 보고 싶었다고?”
“네에. 할머니 주세요. 할머니.”
“보고 싶었다카네. 그런 생각이 있는 가비라.”
할머니가 동행한 사회사업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손자의 대답이 흡족하신 눈치다.
이번에는 사회사업가를 보며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이 오니까 좋아.”
“저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
“그라모. 아는 선생님이 오니까 좋아.”
“아, 그렇죠. 작년에 성훈 씨 지원하던 선생님도 오래 함께하고 싶었을 텐데, 바뀌면서 같이 인사드리러 왔었죠.
그 앞에 오래 지원하던 선생님도 그랬을 겁니다.”
“선생님들이 다 좋은데, 그래도 처음 만나면 나도 좀 어색하고 그런 게 있지.
올해는 아는 얼굴이 오니까 좋네. 우리 훈이 잘 좀 부탁해요.”
“그럼요, 할머니. 저도 계속해서 성훈 씨 도울 수 있으니 좋습니다.
할머니랑 고모님, 동생 아름 씨가 어떤 일이든 마음 써서 함께해 주시니 걱정할 게 없네요.
매번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야 뭘…. 선생님 고생이 많지. 어짜든지 훈이가 알아서 해야 될 긴데.
훈이 알았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해야 된다. 할머니 말 알았나?”
“알겠어요. 알겠어요.”
전성훈 씨가 자기 손바닥으로 할머니 눈을 가리며 대답한다.
좋을 때 자주 이렇게 표현한다.
거듭 이야기하면서도 돌아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손자의 대답에 할머니가 놀란다.
할머니 웃음 속에 담긴 대견한 마음을 읽는다.
2.
함양으로 오는 길에 손자가 생각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할머니 댁에 올 때 자주 외식했던 동네 중국집이다.
할머니는 무엇이든 좋다고 하시는데, 손자와 다른 메뉴로 주문하면 맛보라고 당신 드실 것까지 다 덜어 주신다.
이번에도 무엇이든 좋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가 많이 잡수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손자와 같은 메뉴를 권한다.
자장면 셋, 탕수육 하나, 콜라 두 캔을 주문했다.
“우리 훈이 덕분에 할머니가 이런 데를 다 와 보네. 크다.”
식사를 마치고 미리 봐 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할머니 동네에서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다 보니 읍내까지 와 버렸다.
드라이브 삼기로 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와 손자가 드문드문 말을 주고받는다.
“세근(시근)이 좀 있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노.”
“성훈 씨 곁에서 보니까 잘하시더라고요.
출근하면 무슨 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하는데, 점점 편한 방법을 찾더라고요.”,
“할머니, 성훈 씨랑 마트 가면 제가 따로 할 일이 없습니다.
카트 하나 들고 성훈 씨가 다니면서 필요한 것 담는데, 저는 뒤에 따라가기만 해요.
근데 또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열심히 따라가느라 힘듭니다.”
다시 할머니가 웃는다.
손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염려 대신 대견한 마음이 깃든다.
“그래, 우리 훈이 착하다. 잘한다. 앞으로도 딱 알아서 해라, 알겠제?”
“그래요.”
“아이? ‘그래요’라고 하네, 훈이가.”
오늘따라 전성훈 씨 대답이 빠르다.
할머니 걱정을 덜어 드리려는 뜻으로 이해했다.
할머니께 드린 말씀에 진실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으니 흡족하기 그지없다.
“아름이 애기 얼마나 컸더노?”, “응? 아름이 애기, 조카 얼마나 컸더노?”
“축하해 주세요. 축하해 주세요.”
“조카 이만치 컸더나?”
“축하해 주세요.”
점심 식사 후 카페에서 주고받은
할머니와 전성훈 씨의 대화 영상
지난해를 돌아보며 동생 전아름 씨와 함께한 일을 이야기한다.
구미 동생 집에서 아버지 제사를 함께 준비한 일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할머니는 궁금해진 증손자 소식을 손자에게 묻는다.
손뼉 치듯 손 모으며 ‘축하해 주세요’라는 전성훈 씨를 보며
얼른 둘째 조카 돌잔치를 기억하며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두 분 대화를 가로채고 싶지 않아 한참 기다렸다가
전성훈 씨 말이 그런 의미인 것 같다고 짐작한 바를 할머니와 나눈다.
“할머니,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아름 씨 부부와 성훈 씨가 식사했거든요.”
“같이 만났어요? 아이고, 잘했네.”
“네, 할머니. 밥 먹을 일이 있어서 잠깐 구미 다녀왔습니다.
그때 아름 씨가 할머니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구미로 한번 모시고 싶다고요.”
“아름이가?”
“네, 모시고 싶은데 아이들이 어려서 다니기가 쉽지 않아 아쉽다고요.
언제 오빠가 할머니 모시고 와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성훈 씨는 좋다고 했고요.”
“나는 뭐, 맨날 집에서 노는데 좋지. 훈이랑 선생님이랑?”
“성훈 씨가 할머니 모시고 다녀온다면 저는 얼마든지 도울 수 있지요.
할머니 뵈면 여쭤보겠다고 했거든요. 아름 씨랑 한번 의논해 보겠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나는 좋지. 맨날 노는데, 고맙지.”
3.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댁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차를 세운다.
전성훈 씨 혼자 걸었던 길, 돌아갈 때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함께 걷는다.
일부러 몇 발짝 떨어진 채로 뒤따른다.
처음 감상처럼 이 모습이 어느 이야기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요. 추운데 들어와. 얼른.”
댁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려 했는데, 할머니 권유에 집으로 들어선다.
바쁜 일도 없겠다 싶어 할머니 말씀대로 따라도 촉박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훈이, 할머니 집에 또 올 거가?”
“네에. 네에.”
“설날에 할머니 집 올래?”
“네에. 네에.”
“그래, 착하다. 할머니 집 와서 자고 갈 거가?”
“네에, 알았어요.”
따뜻한 바닥에 몸이 녹는 것 같다.
어느새 전성훈 씨는 자리를 잡고 누웠다.
곁에 앉은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손자 이마며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손길이 따스하다.
전성훈 씨 눈이 스르르 감긴다.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만 같다.
“무 좀 가지고 갈래요? 내가 농사지은 건데 크지도 않아. 요만한 거라.
그래도 먹기는 괜찮을 건데. 좀 싸 줄게요. 잠깐만 있어 봐. 어디다 담아야 좋을꼬.”
추운 겨울이 올 때까지 할머니가 정성 들여 심고 수확한 것일 텐데, 잘 먹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 ‘같이 나눠 먹으라’는 말씀에 마음을 놓는다.
잘 모르지만 이렇게 자식이며 손자 나누어 주시는 게 어른들 기쁨이라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감사히 챙겨 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달 말에 설이 있으니 곧 뵙고 인사드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할머니 댁을 나선다.
기다리는 날이 오래 남지 않았으니 돌아서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전성훈 씨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성훈 씨 손에 할머니가 챙겨 주신 무가 들려 있고,
저 멀리 마루에서 이쪽을 내다보는 할머니 쪽으로 크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전성훈 씨 할머니가 텃밭에서 농사지은 무 챙겨 주셨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월평식사> 밴드에 공유한 글
‘귀한 무네요. 고맙습니다.’ 임우석
‘할머님, 감사합니다.’ 신아름
2025년 1월 9일 목요일, 정진호
성훈 씨가 철없는 손자였다가 든든한 손자였다가 합니다. 입가에 미소가 생깁니다. 옆에서 지원하는 직원도 말을 참 예쁘게 하네요. 고맙습니다. 신아름
할머니 댁에 다녀오셨군요. 오늘따라 할머니께서 손자의 대답을 흡족하게 기쁘게 여기시는 것 같고, 성훈 씨의 대답도 아주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대견해 하시고 기뻐하시니 감사합니다. 성훈 씨와 할머니, 가족·친척이 자주 소식하고 왕래하며 가깝게 지내시니 감사합니다. 시설이, 사회사업가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월평
전성훈, 가족 25-1, 고모의 마음
전성훈 씨 온라인 사례집
『월평빌라 이야기 2025』 온라인 사례집 ㉔
『월평빌라 이야기 2024』 온라인 사례집 ㉔ 매일 나갈 수 있는 직장
『월평빌라 이야기 2023』 온라인 사례집 ㉙ 아직 할머니는 부엌에 계신다
첫댓글 오늘도 할머니 댁 가는 길은 성훈 씨가 앞서서 걷네요. 언젠가 성훈 씨의 할머니 댁에 처음 동행하던 날도 그랬어요. 앞장서서 걸으며 찾아갔었어요. 할머니 집 앞 마당 풍경도 할머니도 정겨운 그때 그대로인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 사이 성훈 씨는 든든한 손자로 든든한 오빠로 자기 자리를 잘 가꾸어가셨네요. 성훈 씨와 할머니, 두 분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수시로 함양 할머니 댁 오가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정진호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