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을 그냥 뜻도 모르고 읽으면서 공부했다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는게 공부한다고 할 수 있나요?
공부한다의 범위는 어디서 어디까지인가요?
예를 들면 일상생활의 경계에서도 공부를 한다라고 표현하는데..
공부? 학창시절때의 예습 복습 그리고 시험~ 합격~이런 의미만 아는 저로서는 공부한다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여하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如如 같을 여자 두번 맞지요? 마음이 여여해지다..
무심(無心)하다는 뜻인가요?
경계는 또 무엇인가요? 경계에 들다라는 표현 쓰지 않나요~시비나 선악에서 불안을 느끼는 중생의 마음인가요?
제가 무심결에 가끔 사용하는 단어인데도 바보처럼 헷갈리네요..
우문현답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공부는..포괄적인데요..불교는..수행(독경..참선..염불..기도..사경..사불...절..마당쓰는것..설겆이..울력..우리가살아가는것)대체로..공부한다라고말합니다..경계라는것은..나의육근이..육경에대해..반응하여..분별을일으키는것을..경계에~부딪였다합니다..알아차리는거죠..여여는..그대로다...분별심을버린상태..무심보다는..중도심..이라고하죠..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뜻도 모르고 읽는게 공부는 공부죠. 다만 죽을힘으로 공부해 1년이면 될것 10년 20년 걸린다는게 문제죠. 공부한다는 것은 포괄적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깨어있음' 입니다. 불교에선 '공부'라 함은 주로 마음공부를 말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게 마음공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깨달아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공부지요. 예를 들자면 내가 다리를 달달달달 떠는 버릇이 있다면, 어느 순간 다리를 달달달 떨고있을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겁니다. 이것도 공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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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하면 한 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 없이 쉬운게 마음공부인것 같습니다. 공부의 범위는 無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 물건에서 미립자 전자 양자 불성 에까지, 마음에서 사대까지, 불법에 어긋남이 한치도 없으니 공부아니라 할 것이 없습니다. 범위를 굳이 따지자면 우주전체요, 범위 아닌것을 따지자면 無 인것 같습니다. 여여하다 = 상주불변하다 란 말과 같습니다. 저는 번뇌를 여의지 못하고 끄달리는 상태 또는 자리를 경계라 표현하고 번뇌를 여의어 삼매에 든 이후부터는 경지라 표현했는데.. 경계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싶네요. 성불하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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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인습에 의하여 의식된 자기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기 생각이 실체가 없습니다. 저도 공부라고 하면은 학교에서 교과서 공부하는 것 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행에 있어서 공부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혼란스러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공부라 하게 됩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알고 익히 테두리의 인식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길, 그 길을 한번 찾아보세요.
경계에 착" 하면 중생이고, 착" 하지 않으면 부처입니다. 그리고 "여여"라 하고 해탈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불립문자" 라 입으로 말하면 거짓이 되니 무어라 한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있다해도 틀리고 없다해도 틀리는 것이니 언어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진 스승을 찾으시어 불자님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아시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나서 근기에 따라 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는 것이 진짜입니다.
여여는 무념이고 무상이고 무주 입니다 육조단경에 상세히 나와있어니 공부해보시고 경계가 나타나면 의문이 생기면 물어보는것도 또한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