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7.土. 비
물푸레나무 옆에 차를 세우다.
차를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 주차장 한쪽에 대고 나서 차에서 내려 보니 바로 옆에 울창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나무 둥치에 철사로 매달아놓은 설명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라.
‘물푸레나무
가지를 물속에 넣으면 가지가 물을 푸르게 만든다하여 물푸레나무라고 한다.’
키 큰 물푸레나무의 무성한 잎사귀가 머금고 있는 빗방울들이 바람이 힐끗 스쳐지나가자 내 어깨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저 빗방울들 덕택에 내 어깨도, 내 가슴도 푸르게 물들지 않을까 하고 기대에 찬 얼굴로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온 세상의 물푸레나무들을 모조리 뽑아 허공을 향해 던져도 결코 푸르게 물들지 않을 듯한 두텁고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있다. 하늘에서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짙고 옅은 회색들이 섞이고 흩어지며 그저 바람과 비를 만들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어제 저녁 중부지방에 장맛비가 엄청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자마자 비를 맞으며 걷고 싶었던 산길 하나를 생각해냈다. 하지만 그 뉴스를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내를 잘 설득하고 집을 나선 때는 자정을 삼십분 가량 넘긴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88도로를 타고 가다 강일I.C에서 중부고속국도로, 또 호법I.C에서 영동고속국도로 길을 바꿔가면서 빗줄기 뿌려대는 호젓한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자정을 넘긴 밤은 어두웠지만 오렌지색 가로등 불에 반짝거리는 빗방울들은 차창을 통해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조등의 불빛이 닿는 곳까지 뚫린 대통처럼 텅 비어 있는 차선들 위로 은침 같은 빗줄기들이 끊임없이 내려 꽂히고 있었다. 오렌지 색 은침들은 길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한낱 상傷한 물방울로 바뀌어 제 부서진 몸을 검은 도로에 여기저기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여주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하고, 주유注油를 하고, 체조를 한 뒤 다시 검은 고속도로 길 위로 나섰다. 그 때가 새벽3시쯤 되었을까, 늦은 식사 후의 반응이겠지만 졸음이 왔다. 바쁠 것 없는지라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횡성 휴게소로 들어가 큰 화물차들 사이에 차를 주차시켰다. 등받이를 뒤로 밀치고, 문 잠금장치를 누르고, 하품을 떡 하니 한 번 한 뒤에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부옇게 밝아오는 이른 새벽이었다.
횡성 휴게소에서 오대산 상원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정里程이었다. 나는 상원사 주차장 안에 있는 물푸레나무 옆에 차를 세웠다.
하늘에는 세상의 모든 회색들이 섞여 흐르고, 땅에는 세상의 모든 초록들이 모여 사는 그 길을 4시간 동안 나 혼자 돌아다녔다. 비가 오면 두 어깨로 맞고, 바람이 불면 두 팔을 흔들어주었다. 발끝에는 풀과 잔돌들이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그곳에 가면서는 그 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생활의 고통은 다 잊으랴 했지만 그저 세상 일이 그렇듯이 다 내 뜻 같지는 않아서 틈틈이 몇 개의 고민은 들고 다녀야 했다. 두로령頭老嶺까지 갔다 내려오는 길에는 내 심장心臟만한 돌을 하나 주어 들고 내려왔다. 빗물에 넘쳐흐르는 계곡 수에 깨끗이 씻어 차 뒷좌석에 싣고 와서 책상 맡에 놓아두었더니 영락없는 내 염통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의기가 통하면 저 둥근 돌덩이가 내 심장 박동 수 만큼씩 울려대기 시작하겠지.
(- 물푸레나무 옆에 차를 세우다 -)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중 그 호젓한 산길을 또 다른 하나의 심장을 찾으러 다니셨습니까^^*
어디엔가 나와 닮은 그 무엇이 존재 한다는것???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그 호젓한 산길이 그립숩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살아계셨오???아직도 바쁜거요???? 8월은 그렇고, 9월 답사에는 목소리라도 들어봅시다. ^^
차가 파랗게 물들었을 듯...^^*
긴울림님은 작가이신가요? 함께 감상에 젖어봅니다...
어쩜 이리 아름다운 장면들을 눈에 보이듯 그려 내실까~~~
부산하고도, 광안리, 해운대, 동래(친정) 밖에 모르며 삽니다. 기껏해야 다섯개도 넘지 않는 생활터를 돌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가 재작년에 오대산을 다녀 왔다는
월정사 , 상원사, 전나무숲....이런 단어만 나오면 내가슴은 방망이질을 합니다. 그곳에다 삶터를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들이 이제는 둠벙같은 추억이 되어 멈추었다가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