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자갈 깔린 비포장도로, 털털대며 느리게 지나가는 도락구(일본말), 길가에 줄지어 선 키큰 코스모스, 쓰러져가는 초가집 담벼락에 퇴색한 벽화처럼 서있던 맨드라미 그리고 빼꼼 열린 양철 대문으로 보이던 마루 밑 까만 고무신들... 이런 기억들을 갑자기 일제히 소환시키셨어요, 지우당님께서.
저하고 나이 차이가 십년이 넘는것 되는것 같은데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니 놀랍고 반갑네요 ㅎ 꾀죄죄한 동네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냈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것 같아요 ㅎ 원시적인 관계를 많이 나눈 사람들이 정이 깊다는데 단칸방에서 복닥거리며 자란 동생들과 우애도 깊었지요.
첫댓글 자갈 깔린 비포장도로, 털털대며 느리게 지나가는 도락구(일본말), 길가에 줄지어 선 키큰 코스모스, 쓰러져가는 초가집 담벼락에 퇴색한 벽화처럼 서있던 맨드라미 그리고 빼꼼 열린 양철 대문으로 보이던 마루 밑 까만 고무신들...
이런 기억들을 갑자기 일제히 소환시키셨어요, 지우당님께서.
원문을 능가하는 해석에 심쿵이네요.
시인의 상상력은 이렇게 디테일하군요.
너나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엔 가족애로 끈끈하게 뭉쳐있었는데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위해 모인 명절날 풍경을 생각하면
좀 씁쓸하고 안타깝고 그래요. 우리집만 그런지 몰라도 ㅎ
그런 시절 있었지요
저 어린시절엔 열 식구가 기본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삼촌, 저희 형제 일곱
들락거린 식구들 빼면 거의 두 손가락 다 꼽아야 셀 수 있는 가족이 방 두 칸에 살았으니까요 ㅎㅎ
이불 하나에 온 식구 발 넣고 자던 시절이 있었지요.
저희 아버지는 농사가 싫어 도시(?)로 도망나오셨다는데
먼지 나는 신작로 단칸방에 지내기도 했어요.
담장 아래 핀 맨드라미가 그때 우리 식구들 같아 얼마나 반가웠는지 ㅎ
초록치마 빨강저고리
맨드라미 자매들
추석빔하고
큰집에
인사가려나 봅니다 ^^
화려한 원예종에 밀려 외면받는 맨드라미
저 촌스러운 꽃이 왜 그리도 정다운지.
맨드라미 잎으로 화전을 부치던 막내고모도 생각나고요 ^^*
단칸방
호롱불
문풍지 바람소리
시끌시끌 목소리들
시커멓게 탄 아랫목
이불속 뚜껑덮은 밥사발등이 문득 생각나네요
아버지 오실 때까지 아랫목을 차지했던 밥사발
정작 아버지는 술 취해서 그 밥을 못 드시기도 했죠.
어린 우리들은 아버지가 못드신 그 하얀 쌀밥을
한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기도 했고요 ㅎ
@지우당(강옥) 그리운 어릴적 지난 날들이 실루엣으로 그림이 그려집니다~^^
예쁘게 우리를 키워주신 엄마가 아프니 그때 그시절이 더 그리워요 엄마 옆에서 그생하시는 아버지 보니 더더 그리워요 맨드라미가 어릴때 우리 여섯 자매 같아요
여섯자매 두신 어머니는 행복하실 겁니다. 아들 많은 집보다 훨씬.
살아보니 딸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
박시인처럼 살가운 딸 있음 노후가 얼마나 든든할까.....
2차선 도로 옆 낡은 집
흙먼지 뒤집어쓰고 살아도
우린 함께여서 행복했다.
딱 제 이야기네요~^^
저하고 나이 차이가 십년이 넘는것 되는것 같은데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니 놀랍고 반갑네요 ㅎ
꾀죄죄한 동네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냈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것 같아요 ㅎ
원시적인 관계를 많이 나눈 사람들이 정이 깊다는데
단칸방에서 복닥거리며 자란 동생들과 우애도 깊었지요.
명절이 오는 지금 다시 생각하게 하는 디카시네요
고성 어느 지방도로를 지나다 포착한 장면.
이 사진과 저 사진을 두고 살짝 고민도.... ㅎ
맨드라미꽃을 보면 늘 꽃밭을 가꾸던 고향집이 생각납니다.
제주에는 문주란이 더 많지 않아요?
문 앞에, 담벼락에 문주란을 많이들 심었던 기억이.....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함께 라는 말이 귀해졌죠.
도란도란 모여앉은 맨드라미 가족이 어린시절 우리집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