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와 같이 2004년 1회 교육공화국 세미나를 개최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주제 : 한국 사학재단의 문제와 교수 임용비리
시간 : 2004 1월 10(토) 오후 3시
장소 : 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인문학관 5108호)
세미나 자료 : 한국의 봉건적 대학 구조 (재단비리와 임용비리) 이 아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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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교육 출판 원고 일부 소개: 한국의 봉건적 대학 구조 (재단비리와 임용비리)
①대학교 소유권, 경영권 관계 비리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의 발전에 있어서 사립학교들이 많은 기여를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도 전국 고등교육기관의 약 85%가 민간인들이 소유, 운영하는 전문대학, 일반 대학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사립학교들의 비리 규명에 앞서서 우리는 그간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이 극히 미미했음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노력한 양심적인 사립학교들도 많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거의 매일 신문 지상에 소개되는 사학 관련 비리는 많은 사학들의 경영과 지배 구조에 큰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사학재단 비리는 사학의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의 교육-사회적 환경과 구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학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역사적-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다.
사립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사학 재단 문제, 구체적으로는 이사장 혹은 총장의 권위와 지배구조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사립 초ᆞ중ᆞ고등학교는 배제하고 사립대학의 재단비리에 한해서 논의를 하려한다.
특히 재단 이사장이나 이와 유사한 위치에 있는 제왕적 총장이 학교 운영을 독점하는 경우 부정입학, 공금횡령이나 교수 불법해고와 임용비리 등의 부당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현행의 불투명한 사학의 경영 방식과 회계 처리 관행은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학교법인을 남용하는 것을 조장한다.
이는 마치 한국의 사회 복지 재단들이 그 본래의 목적을 버리고 설립자나 원장의 사리사욕을 위해 운영되는 경우와 유사하다. [1]
많은 한국의 사학재단의 총수들은 학교를 설립하거나 재단을 형성하는데 아무런 개인적인 기여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떤 기회에 학교를 자기 것으로 가로채는 경우가 많았다. [2]
이들 불법 사학재단은 공공의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를 사유화하고 학문탐구나 교육 여건 조성보다는 학교를 개인의 착복의 수단으로 을 부실화시키고 말 안 듣는 교수들을 회유, 선동하고 필요할 경우 무단 해임하는 등의 야만적인 작태를 보인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총장님 한바꾸 더 돕시다!” 라는 교수 집단 구보 사건으로 유명한 87년 이전의 조선대학교 그리고 지난 96년 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대구의 계명대학교 총장 퇴진 운동이나 최근(2003.12) 6000명 학생 전원이 유급사태에 직면한 동덕 여대의 족벌재단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 운동 등이 이런 재단비리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필자는 1987년부터 2년간 조선대학교에서 강의했었는데 그 때는 전제적인 박철웅 총장이 방금 물러나고 재야의 거물 변호사였던 이돈명씨가 총장으로 취임해 학내 민주화를 다지면서 민족대학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가고 있었다. 현재 조선대는 관선 이사들이 학교 법인을 운영해 가고 있다.
ㄱ) 조선대학교의 경우 [3]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조선대
사진/ '사학 코미디' 시국선언을 막으려고 교수들을 아침 일찍 출근시켜 교정을 뛰게 했던 조선대 박철웅씨.(총장님! 한 바꾸 더 돕시다)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 뜻있는 인사들의 모금으로 설립되었다가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하여 온갖 사학비리의 온상이 되었던 학교로는, 지금은 정상화된 조선대학교를 들 수 있다. 조선대학교가 1947년 9월 미군정청으로부터 학교설립 인가를 받을 때의 설립주체는 조선대학교 설립동지회였다. 동지회에는 머슴에서 지주에 이르기까지 약 7만2천여명의 회원들이 망라돼 있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당시 4천여만명의 국민 중에서 모집한 주주가 6만1천여명이었음을 상기할 때, 전국인구가 1600만명이던 1947년에 호남을 중심으로 7만2천여명이 성금을 내어 도민대학으로 조선대학교를 건립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해방되자 호남에 민립대학을 세우자는 취지에서 작게는 나무 한짐, 쌀 한말, 콩 한말 등에서부터 많게는 수만원의 현금이나 수천평의 토지를 기부하여 학교설립에 필요한 재원과 토지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해방 이후 민립대학으로 설립된 조선대학교는 박철웅 일가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조선대학교의 설립 당시 지역 원로들이 젊은 사람들이 일선에 나서야 한다고 하여 전라남도 운수과장으로 있던 박철웅이 설립동지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학교설립 이후 자신이 학장, 총장에 취임한 이래 자신의 측근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자신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설립동지회 간부와 학교 이사진에서 배제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박철웅은 독재권력의 비호 아래 조선대학교를 자신의 왕국으로 바꾸어갔다. 박철웅은 196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학교의 공식행사에서 학교연혁을 소개할 때 설립동지회에 관한 사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설립자이며 총장이신 박철웅 선생의 혈루로써 설립되고 운영되어온” 조선대학교라고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조선대학교의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해온 박철웅은 그동안 학교에 보관돼온 설립동지회에 관한 자료를 소각하여 자료의 인멸을 꾀했다.
이후 박철웅의 행각은 그야말로 온갖 사학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했다. 부정입학, 교수 해임, 교수 및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 공금 횡령 등에서부터 급기야 자신의 처남을 용공조작해 간첩으로 모는 데 이르기까지 박철웅의 개인왕국으로 전락한 조선대학교에서 벌어진 비리의 목록은 끝이 없다. 박철웅 왕국 조선대학교의 역사에서, 아니 크고 작은 개인왕국 천지인 한국의 사립학교 역사에서 최대의 희극이라 하기에는 너무 서글프고, 그렇다고 최대의 비극이라 하기에는 참으로 기막힌 일은 교수들의 아침조회 및 집단구보사건이었다.
1986년 전국의 대학가가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들끓고 있을 때였다. 박철웅은 조선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방지하려고 매일 아침 7시에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운동장으로 출근시켜 출석을 부르고 노교수, 여교수 할 것 없이 운동장을 두 바퀴씩 구보하게 한 다음 총장님께 올리는 충성서약을 하게 하고 30여분간 훈시를 했다. 일제강점기 도쿄도 학무국 관리였다는 박철웅의 훈화 한 구절. “시국이 혼란스러울수록 나서는 놈만 손해야. 일제 때 독립운동한다고 나대던 놈들 보라고. 이 박 총장처럼 잘된 놈 있어?” 운동장 한켠에는 지각한 교수들이 벌받듯 서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부 교수의 한마디.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ㄴ) 대구 계명대의 경우 – 1996. 7. 10.에 작성된 계명대학교 교수협의회 내부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O. 계명대 사태 요약: 계명대학교의 학내분규는 신일희 일가의 영구 사유화 기도에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계명대학교는 대구 경북의 모든 시민과 기독교인의 대학입니다
1. 계명대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와 대구 경북교회의 헌금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따라서 신일희 부자는 계명대학교의 설립자가 아닙니다.
2. 초대 학장(Campbell)과 제2대 학장(Adams)은 계명대학교의 경영권을 민주적으로 이양했습니다.
둘째, 제3대 학장 신태식(신일희씨의 父)씨는 계명대학교를 사유화했습니다
1. 신태식씨는 계명대학교 경영권을 61년부터 78년까지 18년 간 독점하면서,
2. 계명대학교 건학 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저버리고, 법인이사회를 사조직화하는 등 족벌체제를 구축한 뒤, 학교 경영권을 자기 아들(신일희씨)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셋째, 신일희씨는 대학을 부자 세습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없습니다
1. 신일희씨는 최초의 직선총장이면서도 '단임' 약속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2. 요식적인 단 두 차례(4월 18일과 4월 26일)의 총장후보추천위원회 회의와 사조직화된 이사회에 의해 총장으로 재임명됨(5월 9일)으로써,
3. 12년(1978-1981; 1988-현재) 장기 집권에서 영구 집권으로 가고 있습니다.
4. 대학 발전을 위해 1987년에 결성된 교수협의회 사무실을 강제 폐쇄하였고,
1) 승진 재임용 등을 담보로 교수협의회의 평의원을 협박하였으며,
2) 교수협의회의 재정을 탄압(협의회비 은행 무단 인출 사태 연루 의혹)하고,
3) 교수협의회의 의장단을 감봉 등으로 징계하였으며, 대학 사유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는 징계의 전 단계인 경고장을 발부하였고, 일부 교수 연구실의 교외전화선을 무단 폐쇄하는 등, 반도덕적 반지성적 행태를 일삼고 있습니다.
넷째, 장기 집권은 부정 부패와 비리의 온상입니다
1. 재단 소유였던 계성목재소를 사유화하고(현재 신일희 형제 소유), 학교자금으로 구입한 성주 목장부지(13만 5천평)를 당시 재무담당 교수와 직원의 차명으로 편취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2. 측근교수의 추천에 의해 신임교수를 채용하는 등, 철저한 연고주의에 의해 교수를 채용함으로써 학력이나 연구능력이 탁월한 지원자를 빈번히 탈락시켰고,
3. 신임교수회의, 중진교수회의, 소집단별 호텔 저녁모임 등 수많은 모임을 통해 학내 파벌을 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장기 집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몰두하였으며,
4. 교육개혁, 학교 장기발전계획조차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며 학내에 위협적 강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대학과 지역 및 국가사회 전체의 건전한 발전에 암적 요소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8월 13일 대구전교조 사무실에서 발표된 <계명대학교와 계명문화대학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 원문이다.
<계명대학교와 계명문화대학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
50년에 이르는 계명대의 역사 가운데 40년 이상을 신태식-신일희 부자가 학장과 총장을 세습하면서 지배해 오고 있다. 당초 미국 선교회와 지역 기독교계에 의하여 설립된 대학을 이들 부자가 온갖 부당한 방법과 술수로 사유화하였다는 사실은 대법원까지 거친 확정판결을 통하여 이미 분명하게 밝혀진 바 있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하여 학교를 갈취한 이들에게 대학의 발전은 구실에 불과하였다. 거의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여 건물을 늘리고 정원을 가꾸는 등 자신들의 재산 불리기와 지배권 유지에만 골몰할 뿐 진정한 의미의 대학발전은 처음부터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신일희씨의 총장직 연임회수가 늘어나면서 학내 외의 저항압력도 그만큼 높아지자 이제는 오로지 체제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상식으로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탄압체제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 직원을 막론하고 모든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와 언로는 완전히 무시되고 차단되었다. 소위 대학의 주인이라고 둘러대는 법인이사회도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거수기로 전략한지 이미 오래이다. 오로지 총장 1인의 독선적 지시만이 대학운영을 전횡하고 있다.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독선에 대한 지적이나 학교발전을 위한 제안의 목소리는 학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학내 외를 막론하고 신일희총장과 계명대학이 같이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느 쪽이건 한쪽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자탄의 한숨소리만이 대학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이래 학내가 잠잠한 것은 학교가 조금이라도 안정을 찾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대학이 질식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죽은 대학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통제되지 아니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선과 전횡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온갖 종류의 부정과 비리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쳐서 구축해 온 이들의 비호세력들이 방패역할을 계속하고 있어 모든 것이 호도 되고 있다. 새로운 부정과 비리를 들추기는커녕 이미 밝혀진 사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씨 일가의 도를 크게 넘는 탐욕과 부정, 비리는 비단 계명대와 그 관련 기관만을 질식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사학 전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와 나라 전체의 투명한 민주적 발전에도 결정적인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하나같은 지난 정부들의 부정과 비리를 지켜보면서 투명한 민주사회로의 조속한 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차제에 대구지역사회도 침체와 우울의 탈을 벗고 새로운 활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 대학의 문을 두드릴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식과 위선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더 이상 기다릴 수도 방치할 수도 없다. 계명대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는 독소의 원천을 조속한 시일 내에 완전히 뿌리뽑고 새로운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차제에 계명대의 정상화 없이는 우리나라 사학 발전과 지역사회 회생도 있을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아래와 같이 우리의 입장을 천명하는 바이다.
- 아 래 -
1. 우리는 계명대에 대한 신씨 일가의 지배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일만이 계명대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1. 우리는 지역의 각계 각층 인사들과 언론기관은 물론이고 뜻 있는 시민들도 계명대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최대한 동참하고 협력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1. 우리는 교육부를 위시한 관계당국이 계명대에 대해 임시이사의 파송을 포함한 모든 응분의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확실하게 취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 한다.
2003. 8. 13.
계명대학교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신득렬·이말남·한철순, 계명문화대학 교수협의회 의장 김진규,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최용석, 계명대학교 총민주동문회 회장 백현국, 계명대 정상화를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 배한동 외
이런 계명대의 경우는 학생들이 수업거부까지 가지 못함으로써 재단 – 교수 갈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경우 문제의 해결은 장기적인 과제가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재단비리가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 교육부가 개입하게 되고 그 후 관선이사가 파견될 경우 문제는 한동안 사라지게 된다.
② 교수 임용 비리
교수임용 비리는 재단차원의 경우와 학과 차원의 경우의 2가지가 있다. 예전에는 주로 재단 차원에서 신임교수를 채용할 때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거나 학교발전을 위한 기부를 강요하거나 했다.
요즘도 지방의 작은 대학에서는 이런 종류의 임용비리가 발생한다.
그러나 수도권의 큰 대학들에서는 이런 유형의 교육임용비리는 요즘 보기 힘들다. 요즘은 교수채용은 공개로 한다는 규정 때문에 예전처럼 황당한 사람이 연줄로 낙하산을 타고 대학 강단에 진입하거나 돈으로 교수직을 사고 파는 매관매직의 경우는 많이 줄었다고 할 것이다.
요즘의 교수 임용비리는 주로 해당 학과 교수들이 신임자를 선출할 때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심사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돈을 주고 받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학교 출신자를 선호하거나 자기와 가까운 후배를 밀어주는 등의 정실인사(nepotism)를 말한다.
이런 종류의 인사 부정은 사립대학교 뿐만 아니라 국공립대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이런 임용비리는 위에서 서술한 “봉건 영주”의 전횡과 비교될 수 있다.
이런 봉건적인의 교수 임용 비리는 기본적으로 재단이나 이사장 혹은 총장의 권한이 약하고 교수들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큰 학교, 이른바 “주인 없는 학교”에서 왕왕 발생한다. 필자가 아는 서울 Y 대 철학과의 경우 신규 교원 임용시 처절한 당파 싸움을 벌인다고 한다.
교수들 간의 파벌 싸움 때문에 신규 교수 임용이 해당 연도에 이루어 지지 않고 연기되거나 아니면 아주 뽑지 못하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연구업적이나 강의 능력 등 교수임용의 객관적 기준을 무시하고 친한 사람이나 편한 사람 그리고 학연, 지연 혹은 편의 위주로 교수를 뽑을 때, 뒤의 한국 외국어 대학의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실력있는 교수 후보자들은 도태되고 학문과 교육의 발전은 멀어진다. 이런 교수 임용의 비리가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주범임에 틀림없다. 이는 또한 경쟁을 기피하는 한국의 고등교육의 근본적인 모순과 직결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4]
위에서 필자는 교수 임용의 편의주의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실은 이것이 대학 사회의 나태성과 무사안일주의를 상징하는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가령 실력이 훌륭한 신참자가 신규교수로 발령이 나면 기존의 무능하고 게으른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외면 당하거나 인기가 떨어지며 따라서 학교나 학과 내에서 영향력이 줄어든다. [5]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실력이 출중한 박사나 강사보다는 좀 부족한 사람을 선호한다. 이는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고질병에 속한다. 한국 사회는 튀는 사람보다는 어중간한 사람을 선호한다. 특히 공직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뚜렸하다. 한국 사회는 순응주의자를 요구한다. 필자가 만난 일이 있는 부천의 모 대학 학장님은 “너무 똑똑한 사람은 교수가 될 수 없어요”라고 교수 임용의 비리 관행을 증거했다, 좀 똑똑한 강사들은 거의 임용되지 못하고 강의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이 한국 대학가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경우를 필자는 주위에서 여러 번 경험했다 :
부산지역에서 시간 강의를 하는 이00씨의 경우, 그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철학박사이다. 그는 대학 교수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 점수가 4000%, 즉 40편에 달한다. 이는 대학 채용 시장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점수이다. [6] 그리고 귀국후 꾸준히 모교에서 강의하고 저서도 몇 권 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대학 교원으로 채용될 수 없었고, 급기야는 모교에서 시간 강의도 빼앗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래 실린 한국 외국어 대학 통역 번역 대학원 교수 임용과정 소송과 관련하여 필자의 모교인 한국 외국어 대학의 문제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외대가 원래의 명성에 비해 현재 발전이 부진하고 소위 “대학 랭킹”도 점점 하향조정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대학 교수사회의 봉건주의 습성 때문이다, 이들 학과 교수들은 학생 교육이나 학교발전보다는 오직 개인적-이기적인 관점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사람을 채용하는 타성에 젖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외대 옆의 경희대는 제왕적 총장의 권위적인 경영 덕분에 점차 학교가 좋아지고 있다. 최고 경영자가 희미한 기업이나 대학은 중세 봉건주의적인 몰락을 걷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외국어 대학 이란어과 강사인 신00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이란어 학계의 제 1인자이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이란어를 공부했고 페르시아 문학과 언어에 정통한 학자이다. 그는 유학 갔다 온 후 모교에서 시간 강의를 하면서 오직 전공 과목 교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학과와 교수들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10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작년에 시행된 이란어과 교수 채용에서 그보다 한참 실력과 업적이 모자라는 후배에게 교수자리를 빼앗기는 고통을 맛보았다. 이제 그는 영원히 모교에서 교수가 될 수 없다. 그 후 그는 실의에 빠져 모교 시간강사 마저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불공정한 교수 임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하면 학과 교수들로부터 다음에 반드시 불이익을 당하게 됨으로 해서 이들 무력한 박사들은 천추의 한을 품고 대학을 떠나든지 아니면 조용히 분을 삭히면서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교수 채용 시장에는 “교수 임용은 사전에 내정(內定)되어 있다, 공개 채용은 없다”라는 소문이 정설화되어 있다. 이렇게 내정(內定)되어 있는 사람을 이기려면 노벨상을 타 와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의 대학에서 이런 교수 임용의 불공정성과 정실인사(nepotism)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와 관계되는 몇 가지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알리고자 한다.
인터넷 언론 매체인 오마이뉴스의 2003년 9월 1일 입력된 기사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부제: 임용 성적표 공개 요구한 이단강사 3인의 승리)”는 다음과 같다 :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
[取중眞담] 임용성적표 공개 요구한 '이단 강사' 3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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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원(pswcomm) 기자
▲ 성종환·최문정·전혜진씨(왼쪽 부터)는 외대를 상대로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임용 과정 공개를 요구하며 1년6개월 동안 싸웠다. 이들 소송에서 이겼지만,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
ⓒ2003 오마이뉴스 박수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만큼의 고통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은 '희망과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갈을 남겼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 반기 든 '버릇없는 강사' 3인
성종환(44)·전혜진(39)·최문정(36). 이 세 사람은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노과 강사였다. 그러나 9월 새 학기부터 이들은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
관련기사
[첫 보도 : 2002년 3월 12일] 한 통역대학원의 '이상한' 교수 임용
이들이 강의를 빼앗기게 된 원인은 실력이 없다거나, 뭔가 결격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순전히 학교에 '반기'를 든 '버릇 없는 강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7월 31일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는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노과 강사인 원고 '성종환·전혜진·최문정', 3명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피고인 한국외국어대는 임용 최종심사결과표를 공개하라'고 밝혔다.
벌써 1년6개월이 지난 일이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신임교수 임용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3명의 박사가 교수 채용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대학과 법인에 결과 공개와 재심을 요구한 것은 2002년 3월이었다.
2001년 10월 한국외국어대는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전임교수 채용공고를 냈고, 당시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4명이 지원했다. 심사 결과 학교는 예상과는 달리 방아무개씨를 최종 임용대상자로 결정했다. 나머지 3명의 지원자와 통역번역대학원 내에서는 '뜻밖의 결과'라는 반응이었다.
지원자 4명은 모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해왔던 선·후배 사이로 서로의 경력과 연구실적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이들 3명은 고심 끝에 학교를 상대로 임용과정 공개를 요구했다.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기초심사, 외부심사, 공개강의 등 평가 과정에서 불공정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평가 과정에서 번역실적이나 공개강의, 외부심사 등에서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정된 교육공무원임용령 제4조 3항⑥(2002년 1월 1일부터 대학교원의 신규채용에 지원한 자가 신규채용에 관한 심사기준 및 지원자별 심사경과 등에 관한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에 따라 이들 3명은 심사 결과 공개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끝까지 이를 거부해 결국 법의 힘을 빌 수밖에 없었다.
2002년 5월 13일 심사기준 및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모두 이들 3명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결국 2심까지 판결까지 왔다.
한국외국어대는 2심 결과에 대해 상당히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대법원까지 가봐야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 교무과 관계자는 '학교에서 여러가지로 심사숙고하고 있다'면서 '아직 대법원까지 갈지 말지 최종적인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3인 대담기사 낸 <외대학보> 전량 강제수거
어쨌든 학교는 소송이 계속 진행되자 이들 3명에게 인사권을 행사했다. 소송을 시작한 이후 강의를 절반 이하로 줄이더니, 2003년 2학기부터는 아예 강의를 주지 않았다.
학교측의 '상식 이하'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3년 4월 16일 <외대학보>는 창간특집호로 '성종환·전혜진·최문정' 3명을 주인공으로 1면에 '선생님들, 힘내세요!'라는 화보와 함께 대담기사를 내보냈다. 신문이 배포된지 하루만에 학교는 이 신문의 전량 수거에 나섰다. 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낸 3명의 주인공이 <외대학보> 1면에 실리는 것을 학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통역대학원 원장님은 지금이라도 마음을 달리 먹으면 강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려고 했다면 아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성종환씨의 말이다. 이들 3명은 무엇보다 새 학기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전혜진씨의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학생들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자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한 학생들인데…. 짐을 정리하러 학교에 한번 들러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요. 예상했던 일이지만 왠지 현실이 되니 서글프네요.'
성종환·전혜진·최문정, 이들 3명은 새 학기부터 지방에 있는 한 통역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강의를 하기 위해 왕복 4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에 뿌려야 한다. 그러나 '강의'는 그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일이다. 최문정씨는 말했다.
'학교를 상대로 싸우는 우리를 보고 '이제 그만 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용기를 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 분들이 참 큰 힘이 됐습니다. 학생들을 볼 수 없게 돼서 아쉽지만, 옳은 것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4만 '보따리 장사'의 희망
소위 '보따리 장사'라는 강사들은 모두 '공정한 임용제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한 임용제도를 만들기 위해 선뜻 행동에 나서는 강사들은 드물다. 대학 당국에 찍히면 영영 '이단아'로 남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 4년제 대학의 강사는 약 4만명에 이른다.
성종환·전혜진·최문정. 이들 3명은 길이 없던 땅에 길을 만들어 강사들에게 '희망'이란 선물을 안겼다.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 [7]
[1]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발생(1987)
부랑아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복지원측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수사결과 복지원측은 원생들을 강제노역시키고 원생들을 때려 숨지게 해 암매장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복지원 원장 박인근씨는 개인소유의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중노동을 시킨 것으로 밝혀졌다.복지원 원장과 직원 5명이 구속된 이 사건은 낙후된 국내 복리수준을 보여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 한겨레 21 제 373호 2001.8.22 기사 “학교가 원래 니거였니?”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라기보다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 민법 규정에 따르더라도 사학 이사진은 사학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사학재단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분규가 발생한 사학의 경우 현재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설립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거액의 사유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분규사학에서 원설립자문제, 소유권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규가 발생한 모든 사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분규사학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숭고한 뜻을 갖고 출발하여 공공의 재산으로 출발한 사립학교가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하여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4] 뒤에서 다시 하겠지만 이런 중세 봉건적인 대학 구조는 a. 미국식의 대학 민영화 혹은 b. 독일식의 대학 공영화 둘 중의 하나로 바뀌어야 한다 (양자 택일의 논리). 그런데 필자는 후자를 선호한다.
[5] 흔히 학생들이 불평하는 이야기는 지난학기와 이번 학기 강의가 연속극 재방송처럼 똑같고 강의 노트가 1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는 것이다.
[6] 어떤 사람들은 박사학위도 받기 전에 교수로 초빙되기도 한다. 그러니 연구업적(학술논문)으로 교수 채용 자격을 심사한다는 원칙은 허울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학과 교수들은 교수 지원자의 자질에 관련 없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반드시 뽑는다. 필자 역시 이런 대학의 관행을 알았기에 교수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교육개혁 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7] 오마이뉴스 2002년 3월 12일자 기사 “한 통역 대학원의 ‘이상한’ 교수 임용”이란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교수 임용 심사결과 공개 왜 안됩니까.'
기존 관행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신임교수 임용에 지원한 성아무개 ·전아무개·최아무개 씨. 교수 임용에 탈락한 이들 3명은 대학에 심사결과 공개를 요구해 '문제아'로 찍힌 장본인들이다.
뭔가 임용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입을 다무는 것이 '다음' 기회를 위해 더 지혜로운 일이라는 게 학계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3명이 왜 무모한 작업을 시작한 것일까.
문제아 3명
이들 3명은 지난 2월 15일 '심사기준이 공정치 못하고 심사과정이 객관적이지 않아 교수 선발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빚어졌다'며 대학과 법인에 심사결과 공개와 재심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한국외국어대는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전임교수를 채용하기 위해 2001년 10월 공고를 냈다. 그 결과 통역번역대학원 BK21 계약교수1명을 포함해 한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총 4명이 지원했다. 당시 심사위원에는 표상용(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주임 교수)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학부 노어과 현직 교수와 통역번역대학원 교학부장 등 모두 5명이 참여해 연구실적, 통역번역실적, 강의경력, 전공 적합도를 근거로 기초심사와 공개강의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이외에 대표 논문심사는 외부 심사위원 3인이 맡았다.
그러나 학교는 12월 예상과는 달리 방아무개 씨를 최종 임용대상자로 결정했다. 최종 임용대상자로 결정된 방 씨는 2001년 8월 4명 가운데 가장 늦게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연구업적과 통역번역 실적 역시 상대적으로 다른 지원자에 비해 뒤처졌던 것이 사실.
특히 지원자 4명은 모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해왔던 선·후배로 임용 심사를 위한 자료 제출과 공개강의를 위한 준비에서도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서로의 경력과 연구실적을 훤하게 잘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이 때문에 지원자 3명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기초심사, 외부심사, 공개 강의 등 모든 평가 과정에서 불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졌다'며 심사결과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지원자 3명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3명의 지원자들은 기초심사 부분에서 심사되는 연구실적, 강의경력, 통역번역 실적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임용자 방 씨가 가장 적다는 점을 문제로 꼽고 있다. 연구실적의 경우 방 씨가 가장 적고, 강의경력에 있어서도 방 씨가 5학기인데 비해 함께 지원한 성씨나 전 씨는 13학기로 2배 이상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이들은 통역번역실적을 평가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된 가장 중요한 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이들 3명은 '통역실적은 통상 건수가 아닌 일수로 계산하도록 돼 있는데 돌려 받은 임용심사 서류를 살펴보면 일수가 아닌 건수로 계산한 흔적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제출한 번역물 전체에 대해 고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 씨가 제출한 영상번역만을 높이 평가했다'며 '심사기준이 특정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짜여졌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영상번역물의 경우 지원자 최 씨도 공동작업을 했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점수에 반영되지 않았다.
두 번째, 외부 심사에 대한 부분이다. 외부논문심사의 경우 채용의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외부 심사위원 3인을 교무처가 위촉해 비공개 심사를 진행하도록 규정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지원자들은 '확인 결과 학과 심사위원이 이미 외부 심사위원을 통해 특정 지원자에게 높은 평가를 주라는 압력을 행사했다'며 '비공개 심사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공개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다. 이들 3명은 '공개강의가 끝난 후 심사위원인 교수에게 공개강의는 내용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공개강의를 지켜본 외국인 교수와 대학원 학생들의 평가와는 달리 심사위원들은 임용 예정자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장 표상용 교수는 '연구실적이나 경력에서는 비슷한 점수를 받았지만 공개강의와 번역실적에서 점수 차이가 있었다'며 지원자들의 주장 일부를 뒷받침해줬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지원자 3명은 심사결과 공개와 재심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정일용 교무처장은 '평가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다'라면서 '절차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하자가 없는 임용이었기 때문에 심사결과를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 처장은 또한 '공정한 임용절차에 대해 불공정하다면서 계속 학교 명예를 실추할 경우 여기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사건에 대해 조재영 통역번역대학원장도 '이미 5명 교수가 심사를 거쳐 공정하게 처리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자가 있을 수 없다'며 '모든 절차가 끝난 상황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