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응험기라는 기록에서 "무광왕께서 지모밀지로 천도하시어 새로이 정사를 경영했다"는 대충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록을 근거로 익산 천도설을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수도에 준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있어도 익산이 수도였다는 점에는 좀 부정적입니다.
첫번째로 수부명 기와입니다.
수부에 대한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분들(이도학 선생님 등)은 이 기와를 근거로 익산 천도설을 주장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수부명 기와가 뜻하는 게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해석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수도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수도에 준하는 곳"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로 문헌 사료의 미비입니다.
관세음응험기와 김정호의 대동지지의 구절 이외엔 문헌기록이 미미합니다.
그리고 관세음응험기는 외국에서 쓰여진 기록이라 약간 신뢰도가 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는 귀족세력의 대두입니다.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에는 사탁적덕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탁적덕의 딸은 무려 무왕의 왕후입니다.
즉,이때도 귀족세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왕이 만약 천도를 한다고 할 때 걸림돌이 될게 뻔합니다. 즉,저는 익산 왕궁리 유적은 별궁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도를 해서 만든 궁이라기엔 좀 비약이 있는 듯 해서요.....
첫댓글 익산이 수도라면 삼국사기에 안 나올리는 없는데, 아무래도 관세음응험기만으로 수도라고 하는 것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익산은 별궁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백제 마지막 수도가 사비성이라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비성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도로 보는 것은 무리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소장님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익산에 궁이 있었다고 해서 익산을 수도로까지 치켜세우는 지자체와 또한 논문을 한번 보니 이도학 선생님 같은 학자분들의 경우에도 수도급으로 올리는 듯 해서 좀 역사 관련 학과 대학생으로써 좀 우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익산에 흥미가 있고 최근에 사적으로 답사를 다녀왔지만 좀 백제의 수도가 사비(충남 부여)라는 본질이 호도되는 것 같네요...
@천손태왕 역사학자라면 할수없는 지역주의 탓이다.
돈 되면 뭐든 가지려하는 지자체이기주의에 역사학자까지 협업하여 진실을 망쳐놓고 있다.
아직도 불확실한 어설픈 내용으로 부안 위금암성을 주류성 이라 확정적 주장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익산이 정식 수도로 보기에 미흡하다 해도 제2의 부수도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고려시대에 서경을 제2의 수도로 두었듯이 백제시대의 익산도 고려시대의 서경과 비슷한 부수도 성격이 있지 않을까요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나 왕궁리 유적 같은 대형 건물터 유적들이 서울 공주 부여 다음으로 발견된 현황을 고려하면 부수도급 도시에 속할 가능성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