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그 날이 오면
심 훈 沈熏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출전 : ''그날이 오면''(1930.3 )
심 훈 沈熏 1901∼1936
나라와 언어를 잃은 설움과 광복에 대한 염원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
구차하고 굴절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피끓는 시인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