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라일락
나혜경
이른 봄 서쪽 마당에 심은 키 작은 미스김라일락
하필 세월호가 진도앞바다에 침몰했을 즈음 자잘자잘 꽃을 피운다
출근할 때마다 퇴근할 때마다 속죄하듯
심해 깊숙이 얼굴을 묻고 녀석들의 향기를 흠흠 맡는다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구조 좀, 깔깔깔, 애들아 살아서 만나자, 깔깔깔, 엄마 아빠 사랑해, 깔깔깔
슬프거나 말거나 세상일 따위 아랑곳없이
수면 위로 진하게 분내를 조잘조잘 밀어 올리는 목소리
천지가 꽃철인데 울컥울컥 앞마당까지 만조다
제자리에 있으라 제·자·리
찾은 고통과 못 찾은 고통에 갇혀 나도 제자리, 한 발 나아가지 못하겠다.
/ 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문예한국』으로 등단했다. 시집 『 무궁화, 너는 좋겠다』, 『담쟁이덩굴의 독법』, 『미스김라일락』가 있음.
4월의 고통과 슬픔
정석교
「미스김라일락」은 나혜경 시인의 시집 『미스김라일락』에 등재된 시다. 「미스김라일락」은 수수꽃다리에 속하는 식물로써 원래 우리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던 작은 라일락의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해서 ‘미스김라일락’이라는 품종을 만들었다. 당시 타이피스트 미스김의 성을 따서 붙인 ‘미스김라일락’은 여학교 화단이나 벤치 옆 공터에 많이 심어져 여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씨와 함께 자라왔다. 매혹적인 향을 지닌 ‘미스김라일락’.
봄은 생명을 태동시키는 희망의 계절이다. 그 희망이라 불리는 봄은 이태 전부터 봄이지 않고 춥다. 천지가 꽃철인데도 여전히 냉랭하다. 이젠 잊혀질 법도 한데 그때만 되면 바다도 춥고 땅도 차갑고 하늘은 비를 뿌린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나간다. 아직도 칠흑, 저 바다 밑에 두고 온 이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우리는 늘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 언제 찬란한 봄빛을 가득 지펴줄지 모른다.
시인이 보는 그날처럼 봄은 참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처절하기도 하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해마다 덧나는 봄, 4월은 시인에게 있어 제자리에 맴도는 고통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자잘한 꽃송이들이 아이들 웃음처럼 돋아나 꽃송이에 얼굴 묻고 향기를 맡는 시인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있다.
보고픈 얼굴들이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미스김라일락’처럼 말이다. 처절한 기억과 상흔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교정에서 만개한 라일락꽃은 남아있는 그들에게 더욱 아파오고 그리워지는 4월이다.
/ 삼척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시집 『꽃비 오시는 날 가슴에 꽃잎 띄우고』, 『바다의 길은 곡선이다』 등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