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문 ( 임성실 작가 )
적어도 일 년에 한번쯤, 우리는 숙명적인 고민에 빠지곤 한다.. 태양이 더운 입김을 뿜기 시작하고 불청객 열대야로 뒤척거리게 되는 한여름 밤, 산이냐, 바다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보다도 절박한 표정으로 완벽한 피서를 꿈꾸는 우리는, 매번 거창하게 세웠던 계획보다 반쯤은 짧고 소박한 여행을, 때로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장소로, 떠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또다시 100% 완벽한 피서를 꿈꾸는 그대에게 구시포에서 찍은 자그마한 사진 한 장을 띄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눈부신 여름바다를 포기 할 수 없는 당신이라면.. 육중한 아이스박스도, 커다란 파라솔도 필요 없다! 열심히 고민한 당신, 떠나라~ 구시포로!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길이 약 1.7km, 폭 2m의 백사장.. 언젠가 수첩에 적어놓은 이러한 수치 따위는 까마득히 잊게 만드는, 가슴 벅찬 수평선, 은은한 파스텔 톤의 고운 모래밭, 눈앞에 외로이 떠있는 이름 모를 섬, 은어 떼처럼 반짝이는 물빛이 구시포의 첫인상이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첫인상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연인처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심지어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 바로 구시포 해수욕장. 고운 모래밭을 따라 찬찬히 걷다보면 바닷물이 빠지면서 폭신한 모래밭은 축구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운동장으로 변신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깔깔 웃으며 뛰어다니는 꼬마둥이들의 움직임은 가히 한편의 평화로운 홈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또 바닷가를 아늑하게 둘러선 소나무 숲은 어떤가.. 더운 햇살은 나무들 아래로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소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여름 바람은 상쾌함 그 자체! 그림 같은 바다를 보며 소나무 그늘 아래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위에 지친 마음은 잠시 꺼두어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잠시의 휴식 뒤 약간의 무료함이 느껴질 즈음이면 무인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가까이 보이는 섬 가막도와 점점이 박힌 섬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백사장 남쪽 기슭에 천연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정유재란 때 주민 수십 명과 비둘기 수 백 마리가 반년동안 피난을 했다나? 그 신비롭고도 아늑한 동굴 앞에 서서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장난삼아 한마디 외쳐보고 싶은 묘한 기분.. 되돌아오는 메아리에서 잊었던 동심을 되찾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스타는 마지막에 등장한다.. 뭐니 뭐니 해도 놓칠 수 없는 구시포 최고의 장관은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황홀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오묘한 빛깔의 바다, 그리고 물끄러미 앉아 함께 물들어 가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잊지 못할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