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는 매력이다 한정혜(매너 카운셀러)저서 중에서
호주의 가정집에 걸린 부모의 초상화를 보고 무척 부러웠다. 우리네
아이들은 자기들 결혼사진, 약혼사진, 아이들 사진만 벽 가득 걸어 놓고 사는데
다음 대회의 회장직을 맡아 책임을 느낀 나는 만사를 제끼고 로터리
세계 대회가 열리는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시드니는 그렇지
않아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적도의 반대편에 가본다는 호기심도 있었고 그곳의 생활 환경이 궁굼하기도 했다.
로터리 세계 대회는 예정대로 잘 치러졌다. 로터리인으로서의 책임과
긍지를 느낄만 했다. 로터리 세계 대회에서는 신청하는 사람에 한해
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가정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도 신청을 했는데 막상 시드니에 가보니 금년에는 불경기라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면 나는 꼭 초대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호텔로 돌아왔을 때 기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6시 모시러 가겠으니 기다려달라는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가기로 하고 들뜬 마음으로 어서 그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중년 남자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이둠이 내리는 시간에 우리는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기쁜 마음도
잠시뿐, 차가 중심가를 벗어나서 한적한 길을 달릴 때는 슬그머니 겁도나고 해서 친구와 함께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넓은 들에 불이 훤히 켜져 있는 벗드러진 집 앞에 도착했다. 검은 스웨터에 진주 목걸이를 한 아주 매력적인 부인이 마중을 나왔다. 우리는
곧 실내로 안내되어 잘 정돈된 소파에 앉았다.
집안을 이리 저리 둘러보니. 벽에는 그림과 부모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부인은 내 눈길이 그림 위에 멈춘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는데. 아마추어 솜씨에 불과했지만 그 부인은 몹시 자랑 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 모습 속에는,
마치 우리는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자손이라는 자랑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부부 뿐만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뿌리있는 집안 사람이라는 긍지을 갖고 있는듯했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의 아이들도 부모의 사진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있는지. 말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지......대부분의 집들이 자기들의 결혼 사진과 약혼 사진 그리고 아이들 사진 사진만 잔뜩 걸려 있어서, 부모가 어떤 분들인지는 물어보기 전까지 알 길이 없다. 흔히 서양 사람들은 우리보다 개인주의의 뿌리가 깊다고 하지만
좋은 집안을 방문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집안의 전통이 소중하게 간직되고 있었고 가족들 사이의 애정도 매우 깊어 보였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옆방이 부엌이라 여자들끼리 이야기도 나눌 겸해서 들어가 돕겠다고 했다.그런데 오븐에서 메인 요리인 로스트 포크(제육 안심 구이)를 드러내고 보니 새까맣게 타서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이 일을 어쩌나.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그 부인은 너무나 놀라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날은 요리 연구가를 초청했기 때문에 특별히 하니 소스 까지 발랐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큰 덩어리이까 까맣게 탄 부분만 벗겨보자고했다. 칼로 긁어 냈더니 과연 속에서 타지 않은 고기가 나왔다. 그날 숯을 긁어내고 먹었던 고기 맛은 그 집에 걸려 있던 부모님 사진과 시드니의 아름다운 불빛과 함께 아주 흐뭇한 추억으로 내내 남아있다.